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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Aug 23. 2022

힘겨운 현실과의 싸움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 일뿐이다. 현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지도 않지만,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아 가기도 한다. 힘겨운 현실과의 싸움에서 우리는 어디까지 버티어 낼 수 있는 것일까? 


  김애란의 <물속 골리앗>은 홍수 때 엄청난 물의 힘이 모든 것을 앗아가듯,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이 내일 같고 어제가 그제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아침이 저녁 같고 새벽이 저물녘 같은 하루가 반복됐다. 오랫동안 한곳에 고립돼 있다 보니 날짜 감각이 무뎌지는 것 같았다. 세상은 낮에도 어둡고 밤에도 어두웠다. 해를 본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무덤을 걱정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고 계셨다. 외부와 연락이 끊기자, 어머니는 하루종일 먼 산을 바라봤다. 그게 망자에게 무슨 도움이라도 되는 양, 물안개에 싸인 산자락을 줄기차게 응시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 얘길 전혀 하지 않으셨다.”


  비가 계속해서 내렸다. 장마철이라 비 오는 것이 당연하기는 하지만, 유달리 비가 계속해서 오는 때가 있다. 둑은 폭우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지고, 끊임없이 오는 비에 홍수가 날 수밖에 없다. 그 엄청난 양의 홍수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어느 정도 버티고 있지만, 언제 무너질지는 알 수가 없다. 


  “얼마 후, 어머니는 힘이 풀렸는지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입을 벌려 통곡하기 시작했다. 참으로 길고 큰 울음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뒤에서 계속 안고 있었다. 어머니는 몸속에 든 물을 전부 빼내려는 듯 몸부림쳤다. 방안의 봉지들은 탄력을 잃고 점점 쪼그라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가 울음을 그쳤을 때 정체 모를 고요가 찾아왔다. 그러자 잊고 있던 빗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새벽에 뚝 그치기라도 하면, 그 고요함에 놀라 모두 눈을 번쩍 뜰 만큼 시끄러운 소리였다. 우리는 잠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문득, 어머니가 고른 숨을 뱉는 게 느껴졌다. 갓 잠든 아이의 호흡처럼 피로하고 달콤한 날숨이었다.”


  버티다 무너지기 시작하자 속수무책이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이 그렇게 사라져 버린다. 어떠한 자비도 없이 우리에게 소중했던 것들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없어져 버린다. 버티던 내면의 세계는 완전히 터져버리고 더 이상 감당할 수가 없었다. 


  “눈과 입속으로 흙탕물이 계속 들어왔다. 숨이 차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어머니를 쫓아갔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나무는 다가오다, 물러서다, 다시 가까워졌다. 그러곤 결국 빠른 속도로 내 곁에서 멀어져갔다. 나는 울음을 터뜨리며 ‘엄마, 엄마!’를 외쳤다. 시뻘게진 뺨 위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물살을 따라 애드벌룬처럼 둥실둥실 먼 곳으로 흘러갔다. 녹색 테이프로 둘둘 감긴 얼굴이 이쪽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정자나무는 걱정 말라는 듯, 마치 여러 개의 팔을 가진 신처럼 단단한 뿌리로 어머니를 감싸 안은 채 저 끝으로 사라졌다.”


  그래도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몸부림을 친다. 이것마저 잃을 수는 없기에, 사력을 다해 나의 모든 것을 바친다. 하지만 현실은 나의 피와 같은 노력마저 외면하고 만다. 가장 사랑했던 것들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그 엄청난 힘에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다. 


  “타워크레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이내 훌쩍훌쩍 울었다. 그가 사라졌다는 사실보다 다시 혼자 남겨졌다는 게 무섭고 서러웠다. 주위는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되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이곳이 내가 갈 수 있는 세계의 끝인지도 몰랐다. 여기구나. 여기까지구나. 쓰러지듯 철판에 몸을 던졌다. 그동안의 피로가 순식간에 밀려오며 온몸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나는 한참 동안 멍하니 누워 있었다. 그리고 계속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여기서 내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숨이 멎을 땐 어떤 기분이 들까. 죽은 뒤 내 몸은 어떻게 될까. 물에 불은 얼굴을 사람들이 알아볼 수나 있을까. 그전에 발견되기는 할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모든 것은 끝나버리고, 더 이상 설 자리도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할 수 있는 것이 있을는지,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치열하게 살아왔던 시간들이 허무해지고,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현실이 그렇게 무겁다면 주어질 미래는 어떤 모습인 것일까? 그렇게 애쓴 것이 한순간 사라져 버리듯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어쩔 수 없는 것은 그러한 것이 현실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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