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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Sep 18. 2022

폴은 왜 로제에게 돌아왔을까?


프랑수아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여주인공 폴은 오래도록 사귀어온 로제와 멋지고 젊은 연하 시몽과의 사이에서 방황을 합니다.


  사실 폴은 로제를 사랑했지만, 점점 로제에 대한 자신의 한계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로제는 폴과 동거하면서도 다른 여자를 만나는 자유분방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로제의 마음속에는 항상 폴이 있었습니다. 폴 역시 로제의 그러함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로제가 도착하면 그에게 설명하리라, 설명하려 애쓰리라. 자신이 지쳤다는 것, 그들 두 사람 사이에 하나의 규율처럼 자리 잡은 이 자유를 이제 자신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 자유는 로제만 이용하고 있고, 그녀에게는 자유가 고독을 의미할 뿐이 아니던가. 문득 그녀는 아무도 없는 자신의 아파트가 무섭고 쓸모없게 여겨졌다. 그가 그녀를 혼자 자게 내버려 두는 일이 점점 더 잦아지고 있었다. 아파트는 텅 비어 있었다.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오늘 밤도 혼자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 역시 그녀에게는, 사람이 잔 흔적이 없는 침대 속에서, 오랜 병이라도 앓은 것처럼 무기력한 평온 속에서 보내야 하는 외로운 밤들의 긴 연속처럼 여겨졌다.”


  지쳐가는 폴에게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연하의 멋지고 젊은 남자 시몽이었습니다. 시몽은 폴을 처음 본 순간 한눈에 그녀에게 반하고, 브람스 음악회를 같이 가자고 합니다. 브람스는 자신보다 14살 연상인 로버트 슈만의 아내 클라라 슈만을 평생 마음에 품은 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시몽은 자신보다 연상인 폴을 보면서 브람스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시몽의 데이트 신청을 받은 폴은 많은 생각을 합니다. 갑자기 다가온 젊은 시몽이 싫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오랫동안 같이 지냈던 로제가 있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폴은 로제와 함께했던 시간을 회상하며 생각에 잠깁니다.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가 아직도 갖고 있기는 할까? 물론 그녀는 스탕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고, 실제로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저 하는 말이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녀는 로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뿐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폴은 로제와 헤어진 후 시몽과 동거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엔 로제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식당에 간 폴과 시몽은 다른 여인과 함께 온 로제를 만나게 됩니다. 식사를 하고 폴은 시몽과 그리고 로제는 다른 여인과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저녁 식사 후 그들은 춤을 추었다. 로제는 그 여자 앞에서 언제나처럼 어색하게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시몽이 일어났다. 그의 춤은 능숙했다. 두 눈을 감춘 채 그는 유연하고 날렵하게 춤을 추면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녀는 시몽에게 몸을 내맡겼다. 어느 순간 그녀의 드러난 팔이 가무잡잡한 여자의 등에 두르고 있던 로제의 손을 스쳤다. 그녀는 눈을 떴다. 로제와 폴, 그들 두 사람은 상대의 어깨너머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움직임도, 리듬도 없는 느린 춤곡이 흐르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미소조차 보이지 않은 채, 서로 알은체도 하지 않은 채 십 센티미터 거리에서 서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로제는 여자의 등에서 손을 떼어 폴의 팔을 향해 뻗었다. 그의 손가락 끝이 그녀의 팔에 와닿았다. 순간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어찌나 간절했던지 그녀는 눈을 감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윽고 시몽은 몸을 돌렸고, 로제와 폴은 더 이상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폴과 로제의 손가락이 닿는 순간 폴은 로제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폴은 시몽과 이별을 고하고 로제와 다시 합칩니다. 폴과 로제는 다시 동거를 시작했지만, 로제는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폴도 이러한 것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폴은 어째서 시몽을 떠나 바람둥이인 로제에게 돌아온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시몽이 현재 폴을 사랑하기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가 자신을 언젠간 버릴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로제가 비록 바람둥이이고 자신을 외롭게 만들고 분노를 일으키게도 하지만 로제는 자신을 어떤 경우에도 버리지는 않을 것이라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폴은 처음 만났을 때 실내복 차림으로 경쾌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던 시몽을 떠올리고는 그를 원래의 그 자신에게로 돌려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를 영원히 보내 버림으로써 잠시 슬픔에 잠기게 했다가, 예상컨대 앞으로 다가올 훨씬 멋진 수많은 아가씨들에게 넘겨주고 싶었다. 그에게 인생이라는 걸 가르치는 데에는 시간이 자신보다 더 유능하겠지만, 그러려면 훨씬 오래 걸리리라. 그녀의 손안에 놓인 그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손가락에서 맥박이 파닥이는 것을 느끼자 그녀는 갑자기 눈에 눈물이 고였는데, 그 눈물을 너무도 친절한 이 청년을 위해 흘려야 할지, 아니면 조금 슬픈 그녀 자신의 삶을 위해 흘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시몽이 폴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폴 또한 잘 알고 있었고, 폴도 시몽이 싫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자신은 나이가 먹을 것이고 먼 미래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영원히 버림을 받는 것이 폴은 두려웠을 것입니다. 폴은 로제의 자유분방함을 참아내기가 힘은 들지만, 로제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폴을 버리지는 않을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두려움이 폴로 하여금 바람둥이 로제의 곁으로 다시 돌아가게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만약 시몽에게서 그러한 것을 느꼈다면 아마 폴은 로제에게 돌아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를 버릴 수 있는 자의 곁에는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는 자가 떠나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그를 사랑하는 만큼 그 버림의 아픔을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비록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 있을지라도 자신의 곁에 오래도록 함께 해줄 수 있을 사람에게서는 그러한 커다란 아픔을 경험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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