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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Sep 19. 2022

멀지만 아름다운 동네

양귀자의 <원미동 사람들>은 평범한 소시민들의 엄연한 현실을 따뜻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원미동이라는 이름은 글자 그대로 ‘멀지만 아름다운 동네’란 뜻이다. 이곳은 비록 조그마한 동네일지 모르나 그 안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세계는 결코 작다고 볼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의 모든 삶이 그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원미동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비록 지금은 차가운 현실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결코 놓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명료하다. 그것은 나의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나와 인연이 있었던 사람들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나 자신이 희망을 잃으면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의 희망마저 사라질 수 있기에 그들은 결코 그러한 길을 가지 않는다. 비록 나의 삶은 힘들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은 더욱 나아지기를 소망하여 그들은 힘든 오늘을 살아내고 있다. 


  물론 원미동에는 다른 동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살아가는 어려움과 고통 또한 존재한다. 희망이 있지만, 절망도 있고, 소외와 폭력도 있으며, 무시와 질시도 존재한다. 이해도 있지만, 갈등도 있으며 배려도 있지만 이기심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간절히 소망한다. 그래서 나중에는 지금 받는 그 어려움이 없는 그러한 시절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 믿고 있다.


  그들은 부스러진 그들의 삶의 파편을 스스로 주워 담고,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 가슴 졸이며, 하루하루를 간신히 살아가는 듯 보이지만, 그러한 하루가 모여 밝은 새로운 날이 열릴 수 있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원미동 사람들>은 연작소설로 여러 종류의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그 첫 번째는 ‘멀고 아름다운 동네’ 편으로 서울살이를 버티지 못하고 결국 서울을 떠나 부천의 원미동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얼어붙은 강을 보자 새삼스레 추위가 덮쳐왔다. 아내는 조금 춥다고 말했지만 그로서도 이미 상당한 추위를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가 담요 속으로 손을 넣어 차디찬 발을 비비기 시작했다. 밑바닥에 깐 방석도 그들의 체온만으로는 좀체 더워 오지 않았고 두 다리를 감싼 냉기가 서서히 오한으로 번져올 조짐이었다. 가까이 와. 그는 아내를 바짝 끌어당겨 어깨를 감싸 안았다. 움직일 때마다 미끄러져 내리는 옷가지를 끌어올리면서 아내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멀었죠? 어떡해요. 벌써 추우니...”


  서울에서 살던 조그만 집에서마저 쫓겨나와 아무리 해도 서울에서 살아갈 집을 구할 수 없어, 추운 겨울날 그들은 짐을 싸야 했다. 


  조그만 트럭에 모든 살림을 실어 넣고, 운전사 옆에는 어머니와 아이들을 태우고, 자신과 아내는 뒤 화물칸에 앉아 부천을 향해 가야 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트럭의 화물칸에 들어올 때마다 남편은 애써 아내를 위로한다. 


  “근무 시간에도 잠깐 빠져나와 방을 구하러 쏘다니면서 그는 금방이라도 아내에게서 진통이 시작되지나 않을까 우려하였다. 집에서 전화가 걸려 오기만 해도 가슴부터 덜컥 내려앉았다. 마음이 급하고 집은 좀체 나서지 않았다. 집과 돈과 이사 날짜가 제대로 맞아떨어지는 경우를 찾아내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다. 어지간한 전세는 놀랄 만큼 비쌌고 돈이 맞으면 집이 말할 수 없이 비좁고 불편했다. 이만하면 됐다 싶은 집이 나서는 수도 있기는 하였다. 그러나 날짜를 맞추어보면 또 어긋나기 일쑤였다. 만삭의 아내도 뒤뚱뒤뚱 집을 보러 다녔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은 온 가족이 나서서 집값 싼 동네로 전세 구하기 원정을 떠나야 했다.”


 수많은 집들이 있지만, 그들 한 가족의 명패를 붙일 집은 없었다.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시작한 인생살이에서 집 한 채 마련한다는 것이 그들에게 꿈에 가까웠다. 현실은 그들의 꿈마저 지워버릴 정도로 너무나 매몰차고 인정 없었다.


  “그 넓은 서울특별시의 어디에도 붙박여 있지 못한 자신의 삶을 되씹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전세 계약 기간이 6개월이었던 때부터 어머니와 둘이서 전세방을 떠돌기 시작했었다. 대학 졸업반이 되자 어머니는 지방의 누님네에서 올라와 그의 자취방에 합세했다. 결혼을 하면서 방은 불가불 두 개가 필요했고 이때까지 두 개의 방과 마루를 얻기 위해 악전고투하며 살아왔다는 느낌이었다. 방이 그들을 내쫓는 때도 있고 그들이 방을 버리고 떠난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방이 그들을 내몰았다. 그렇게 수도 없이 이사를 다니며 얻은 결론은 한 가지, 집이 없으면 희망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희망이란, 특히 서울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희망이란 집과 같은 뜻이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수없이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그 삶은 집이 곧 희망이라는 인식으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언제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을 소유할 수 있을 것인지, 그날이 올 수는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내 집이라는 희망은 포기할래야 포기할 수 없었다.


  “마침내 트럭은 멈추었다. 노모와 어린 딸과, 만삭의 아내를 이끌고 그는 이렇게 하여 멀고 아름다운 동네, 원미동의 한 주민이 되었다. 트럭이 멈추자 맨 처음 고개를 내민 것은 강남 부동산의 주인 영감이었고 이어서 어디선가 꼬마가 서넛 튀어나와 트럭을 에워쌌다. 미장원 집 여자는 퍼머를 말다 말고 흘낏 문을 열어 보았다. 지물포 집 사내도 도배일을 하다가 트럭이 멈춘 것을 보았다. 연립주택의 이층 창문으로 나타난 퀭한 눈의 한 청년도 트럭이 짐을 푸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수없이 이사를 하고 이제 서울마저 떠나 부천의 원미동에 자리 잡은 그들에게 어떠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비록 그곳에서도 팍팍한 삶이 이어질 것은 뻔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은 더 인간적이며, 이성적인 그러한 삶이 그들에게 주어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삶은 현실이 어떨지라도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이 있기에 살아볼 만한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과거나 지금보다 나은 시간이 우리를 위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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