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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Oct 06. 2022

가을밤의 아다지오

바흐의 아다지오가 생각나는 밤입니다. 후회 없는 삶을 살기 바랐지만, 그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인 것일까요? 최선을 다하고자 했지만, 미련이 너무 많이 남기 때문일까요?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소망했지만, 나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은 점점 줄어들기만 합니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것은 단지 나의 욕심 때문인지는 모르나, 가을이 깊어갈수록 한계를 느끼게 되곤 합니다. 


  수많은 가을을 지나왔지만 깊은 가을의 밤을 올해처럼 느끼는 것은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저에게 주어진 삶이 더욱 소중해지는 것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유한은 무한의 반대가 아닌 듯합니다. 있음은 없음의 반대도 아니며, 끝이 시작의 반대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은 시간이라는 연속선상에서 다만 변해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어지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것만 하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잘할 수 없으니 나에게 가까운 사람에게 잘할까 합니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으니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을밤이 깊어질수록 살아있음은 기쁨이고 행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떠한 조건이라 할지라도, 어떤 일이 나에게 닥친다고 하더라도, 감당하지 못할 일이 주어질지라도, 나의 바람과 반대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삶을 부정하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억지로 할 수 없어서 해야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그것을 하려고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하더라도 아무 말 없이 그저 감당하려고 합니다. 나에게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를 미워할 시간이 저에겐 낭비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아마 가을이기에 더욱 그런가 봅니다. 최선을 다했지만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름대로 성의를 다했는데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것에 대해 따지거나 불평할 시간도 저에겐 아까울 뿐입니다. 


  바흐의 아다지오를 들으며 삶의 깊이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삶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선을 다했으나 이루지 못하더라도, 이제는 미련을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더라고 실망하거나 절망에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거창한 일이 나에게 생기지 않더라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가을밤이 이제는 더 이상 아쉽지 않도록 마음을 조금씩 더 내려놓으려 합니다. 욕심은 나에게 이제 그리 의미가 없으니 조금씩 더 버리려 합니다. 아쉽고 후회되는 일이 있더라도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어떠한 삶을 살았더라도 후회되지 않는 삶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미련을 가질 시간도 이제는 아까울 따름입니다. 


  오늘 밤을 이제 접고자 합니다. 나름대로 오늘을 살았으니 내일을 기대하며 바흐를 한 번 더 듣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내일의 태양이 어둠 저 너머에서 솟아오르기를 지금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내일은 새벽에 일어나 달리기하는 것으로 힘차게 하루를 시작하겠습니다.            


     


https://youtu.be/-ywL_zokE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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