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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Oct 14. 2022

익숙한 것을 버린다는 것

동쪽에서 오는 바람을 맞고 있었습니다. 동쪽에 있는 햇살을 마주하며 그 바람에 익숙해져 갔습니다. 얼굴을 스쳐 가는 그 바람이 왠지 기분을 좋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서쪽에서 바람이 불었습니다. 반대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갑자기 당혹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햇살을 받던 동쪽을 향해 있던 제 방향을 반대로 돌리기가 아쉬웠습니다. 그냥 그대로 동쪽을 향하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도록 살아오던 익숙한 것을 버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또 다른 애를 써야 하는 것이기에 더욱 힘이 드는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펄 벅의 소설 <동풍 서풍>에서는 주인공 궤이란이 중국 여성으로서 오래도록 익숙했던 전족(纏足)을 버립니다. 전족은 그녀에게 자신의 신념처럼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궤이란은 왜 전족을 버린 것일까요?


  “신기하게도 내 외적인 아름다움은 남편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건만, 내 고통은 그의 마음을 움직였어요. 그는 나를 어린아이 달래듯 위로하려고 했어요. 나는 고통에 못 이겨 그가 누구인지, 그의 직업이 뭔지도 잊어버린 채 종종 그에게 매달렸어요.

‘궤이란, 우리는 이 고통을 함께 견뎌 낼 것이오.’

남편은 이렇게 말했주었어요.

‘그토록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차마 보기 힘들었지만, 이건 단지 우리 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걸 생각해 보오. 사악한 구습에 대항한다고 말이오.’

‘싫어요.’

나는 흐느끼며 말했어요.

‘나는 당신을 위해 참는 거예요. 당신을 위해 신식 여성이 될 거예요.’

남편은 웃음을 터뜨렸어요. 그러자 그 얼굴도 류 부인에게 이야기를 건넬 때처럼 약간 밝아졌어요. 그것이야말로 바로 내 고통에 대한 보상이었어요. 또 이후로는 이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 같았죠.”


  궤이란의 남편은 서양의학을 공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남편이 자신이 신여성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어릴 때부터 해왔던 전족을 버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전 중국에선 전족이 여성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라고 생각해 왔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여성들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전족을 위해 그 아픈 고통을 참아왔습니다. 궤이란은 철저하게 동풍에 익숙했던 여성이었습니다. 아무리 남편이 원한다고 하더라도 갑자기 서풍을 맞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쉬운 선택이 아닐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꾼다는 것과 같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궤이란은 과감하게 동풍을 버리고 서풍을 택합니다. 그 이유는 그녀가 남편을 그만큼 사랑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바꾸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 요구하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버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궤이란은 그녀의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자신이 그토록 익숙해 왔던 전족을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궤이란의 남편은 궤이란을 얼마나 사랑했던 것일까요? 물론 일반적인 입장에서 보면 전족이란 것은 극히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아내를 위해 전족을 버리라고 한 그녀의 남편의 생각에도 일리는 있을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전족은 여성의 인권을 무시한 고쳐져야 할 악습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이 궤이란을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궤이란에게 있어 전족이 의미하는 바를 잘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궤이란에게 전족을 버리라고 이야기하기 전에 그냥 궤이란의 선택에 맡겨 두었으면 어떠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 내가 원하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로 인해 어쩌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나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원하기보다는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결코 그 사람의 노예가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언젠가 잃어버렸던 자유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궤이란의 남편은 서풍에 너무 익숙해서 동풍의 존재마저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것이 바로 불행의 시작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동풍에 익숙했던 사람은 서풍으로 바꾸었지만, 서풍에 익숙했던 사람은 동풍으로 바꾸지 않았기에 후에 바람의 충돌로 폭풍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풍이 서풍으로 바뀌면 서풍도 동풍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 순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굳이 익숙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버리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을 지키고 상대를 인정해 주는 것, 그것이 익숙함을 버리는 사랑보다 더 나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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