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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Dec 05. 2019

남자와 여자는 개와 고양이만큼 다르다

개와 남자의 공통점, 고양이와 여자의 공통점

여전히 남편은 내게 미지수 엑스다


개와 남자의 공통점에 대해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들이 있다. ‘털이 많고 먹이를 일일이 챙겨줘야 하며 복잡한 말은 알아듣지 못하고 시간 내서 놀아줘야 한다. 그리고 버릇을 잘못 들이면 평생 고생한다’ 등이다. 고양이와 여자의 공통점도 있다. ‘세수를 잘하고 배고프면 혼자서 챙겨 먹는다. 낮보다 밤을 더 좋아하고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삐친다. 열 받으면 할퀴고 변덕이 죽 끓듯 한다’라는 것이다. 언제 들어도 ‘풋’ 하고 웃음이 나는 건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결혼생활 이력이 만만치 않은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남편은 내게 미지수 엑스다. 물론 남편에게도 나는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일 테니 오십 보 백보라고 해야 하나.    


이십 년 이상을 생판 남으로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부부가 되어 한 이불속에서 살게 되었다. 처음이라 애틋했고 사랑했기에 영원히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결혼은 ‘사랑’만으로 유지되는 환상이 아니었고 ‘생활’이라는 복병 앞에서 매번 처참하게 깨졌다. 깨진 자리에는 상처가 훈장처럼 남았다. 어떤 상처는 가늘고 희미한 자국만 남겼지만 어떤 상처는 굵고 진한 흔적을 새겨놓았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나이를 먹을수록 상처의 동심원도 하나씩 늘어갔다.    


직장에서 속상한 일이 생겼을 때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다. 남편은 ‘남의 편’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내 편’이라고 믿고 있는 순진한 나는 남편에게 가장 먼저 속내를 털어놓는다. 묵묵히 듣고 있던 남편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훈계, 잔소리, 충고의 3종 세트를 들이 밀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꼼꼼히 알려주었으며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 즉 ‘슬기로운 직장생활’에 대해서도 완벽하게 브리핑해 주었다. 나아가 ‘원래 직장은 다 그래’라는 보편성으로 깔끔하게 정리까지 해 주었다. 듣고 보니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가슴은 체한 것처럼 답답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말을 꺼내기 전보다 기분이 나아져야 하는데 오히려 더 나빠졌고 가슴은 체한 것처럼 답답했다. 뭐가 잘못된 거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어. 그런 행동도 적절하지 않았어. 역시 나는 사회성이 부족해. 이번에도 내가 잘못했네!’ 내 잘못으로 간단하게 정리하고 말았지만 더부룩한 속은 좀체 나아지지 않았다. 주방에서 냉수 한 사발을 들이키며 속을 달랬다.   

 

한겨울의 어느 날 퇴근길, 갑자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이동하다 보니 눈은 낭만의 상징에서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겨울이면 아침마다 창 밖으로 목을 빼고 날씨를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될 정도로 눈은 반갑지 않은 불청객이다. 그 날은 오후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저녁 무렵에는 폭설로 변했다. 곳곳에서 차가 미끄러지는 접촉사고가 속출했다. 바로 내 옆에서 멀쩡히 달리던 차가 갑자기 한 바퀴 휙 도는가 하면 아예 운전을 포기한 차량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긴장으로 어깨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고 목은 거북이처럼 오그라 들었다. 느릿느릿 겨우 움직이고 있었다. 집에 가까워졌을 무렵 늘 오던 사거리에 도착했다. 그런데 재수 없게 신호대기에 딱 걸렸다. 얌전하게 정차하고 있어야 할 차가 뒤에서 누가 밀기라도 한 것처럼 제 멋대로, 슬금슬금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조금만 더 가면 앞차를 들이 박을 기세였다.     



우려했던 상상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사거리를 접하고 있는 이 도로는 살짝 내리막이었지만 평소에는 내리막이라고 여기지도 않을 정도로 경사가 심하지 않은 도로였다. 하지만 눈이 오니 상황은 급변했다. 약간의 경사는 모두 위험지역으로 분류되었고 우려했던 대로 상상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당시는 운전이 미숙할 때라 자동 변속 차량은 후진 외에는 기어 변속이 안 된다고 믿었다. 평소에는 특별히 기어 변속할 일이 없었고 자동으로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러울 경우 기어 변속을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도 몰랐다. 경력만 오래되었지 위급 상황에는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운전 무식자'였다.    


통제불능 상태가 되었을 때 인간이 느끼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그 순간 절감했다. ‘공포’와 ‘무기력’이라는 원초적이면서 강렬한 감정이 엄습했다. ‘인간의 뇌’인 '전두엽'은 기능을 상실하고 ‘파충류의 뇌’인 '뇌간'만이 과도하게 활성화된 덕분이었다. 공포로 우왕좌왕할 뿐 대책은 떠오르지 않은 채 시간은 흘렀고 머릿속은 석고처럼 하얗게 굳어갔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가장 떠오르는 사람은 이번에도 남편이었다. 핸드폰을 열고 남편을 호출했다. 자초지종을 채 설명도 못 한 상태에서 차는 계속 미끄러졌고 “어떻게! 어떻게!” 만 연발했다. 남편은 영문을 몰라 무슨 일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겨우 상황 설명을 하고 나니 기어를 변속하고 어쩌고 하는 말이 핸드폰 저 편에서 아련하게 들려왔다. 그러는 사이 하느님이 보우하사 신호가 바뀌었고 앞차와의 충돌은 간신히 면했다. 하지만 은총은 딱 거기까지였다. 차는 좌회전을 하자마자 통제력을 잃어버렸고 도로 옆 가벽을 그대로 들이박고 말았다. 다행히 거북이 속도 덕분에 충격은 거의 없었지만 울음보가 터지기 일보직전의 상황이 되었다.     



결국 사고가 났다


결국 사고가 났다는 말을 전했고 남편은 다치지 않았냐고 물었다. 괜찮다고 했더니 침착하고 건조한 어조로 보험회사에 연락하라고 했다. 곧이어 바쁘니까 나중에 얘기하자면서 전화를 끊자고 했다. 순간 화가 나고 설움이 북받쳤다. ‘사람이 왜 그렇게 매정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아내가 이 정도 멘붕 상황이면 적어도 걱정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남편은 이번에도 역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럼 내가 어쩌라고?’라는 크고 당당한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왔다. 황당함을 넘어 슬픔이 밀려왔다. ‘나 보고 어쩌라고?라고? 그럼 나는 어쩌라고?’ 남편의 반응에 화가 폭발해서 ‘그럼 그렇지. 당신은 내 생각은 발톱 밑의 때만큼도 안 하지?’라는 말을 포함한 다소 과격한 언어를 남발하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가슴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처럼 활활 타올랐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일은 서운하다. 집으로 돌아와 부부싸움 2탄이 시작되었고 남편은 ‘당장 뛰어갈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 무슨 말을 하겠어?’라는 이해 불가의 말만 반복했다.


남자는 ‘해결 지향적’이고 여자는 ‘관계 지향적’이라는 걸 머리로는 잘 알고 있었음에도 실전에서는 매번 적응이 안 된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해결방법이 머릿속에서 먼저 돌아가는 사람은 남자다. 묘안이 떠오르면 바로 해결을 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남자는 당황하게 된다. 그래서 마음과 달리 화를 내거나 딴 소리를 한다.


여자는 좀 다르다.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 고민을 나누고 싶어 한다. 누군가가 내 말을 귀담아듣고 공감해 주기를 원한다. ‘내가 이렇게 힘드니 위로해 달라’는 것이 먼저다. 답이나 해결은 결국 내 몫이라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해결책부터 들이밀면 마음이 상한다. 공감받고 위로받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감정의 파고가 가라앉고 차분하게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여자다.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순간 변화는 일어난다.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겪었던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지만 냉랭하기 그지없는 남편의 사무적인 말투에 상처 받은 나, 당장 문제 해결을 도와줄 수 없었던 당황스러움이 무미건조한 말로 표출된 남편, 우리 부부의 소통불능의 원인이었다. 이 사건 외에도 우리가 부부싸움을 하는 이유의 근원에는 언제나 이 같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상대 성(性)에 대한 이해를 위해 노력하면서 싸움의 횟수는 현저히 줄었다. 하지만 남편도, 나도 근본적으로 변한 건 없었다. 예전에는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다면 이제는 그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물며 오랜 진화의 산물인 생물학적인 특성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결국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서로 다른 종이 소통하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아이러니하게도 상대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순간 변화는 일어난다. 심리학자 로저스의 말이다.     


개와 고양이는 종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지붕 아래서 아름답게 공존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남자와 여자도 마찬가지다. 금성과 화성에서 온 서로 다른 종이지만 행복한 공존은 언제든 가능하다고 믿는다.



인스타: https://www.instagram.com/young_geul.1016/

블로그: https://blog.naver.com/mndstar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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