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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Feb 27. 2018

익숙한 것과의 결별, 또 다른 시작

- 여행이 남긴 것 -

        

첫 해외여행은 내 목숨을 담보로 지급받은 보험금 덕분이었다.

터울이 차이 나는 아이 셋을 키우다 보니 쉴 틈이 없었고 직장생활까지 하게 되자

하루 24시간을 쪼개고 쪼개도 늘 부족한 것이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건강검진 결과 갑상선에 이상이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갑상선 환자가 워낙 많은 요즘에는 보험금 지급대상에서 제외시킬 정도로 병 축에도 넣어 주지 않지만 내가 보험을 든 시기는 결혼 직후였다. 계약 당시의 약관에 따라 수술과 입원비 외에도 제법 큰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증상은 심각하지 않았고 수술 후 바로 퇴원을 했다.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출근도 했다.


    



그런데 마음 한 구석이 지독하게 허전했다.

그동안 아등바등 살았지만 남은 건 흉한 수술 자국뿐이구나 하는 생각에 억울하고 분했다.

무언가를 해야 했다.


기필코 보험금을 써야만 할것 같았다.

목숨에 대한 대가를 은행 통장에 고스란히 모셔 두는 것은 내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누구는 보험금 받아서 차를 샀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명품백을 장만했다고 했다.

차도, 명품 백도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을 워낙 좋아했지만 워킹맘으로, 세 아이의 엄마로 살다 보니 여행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하게 여행사를 알아본 뒤 방학을 이용해 평소 가고 싶었던 유럽으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유럽 7개국을 8박 9일로 다녀오는, 말 그대로 패키지여행이라는 개념에 충실한 상품이었다.  

   





반드시 남편도, 아이들도 없이
나 홀로 떠나는 여행이어야 했다.

그렇게 나의 첫 해외여행은 억울함 반, 오기 반으로 시작되었다. 요즘에는 혼행이 유행이지만 내가 여행을 떠났던 당시에만 해도 혼자서, 그것도 아줌마 혼자서 해외여행을 간다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지인들은 대놓고 놀랍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첫 도착지인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느꼈던 충격은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다.

해외여행이 처음인 여자가 무려 유럽까지 날아갔으니 아무 데나 서서 셔터만 눌러도 몇 년치 달력 풍경이 쏟아져 나왔다. 화려한 건축물과 아름다운 거리, 세련된 유러피안들의 모습은 이름 없는 동양의 이방인에겐 문화 충격 그 이상이었다.     


나와 같은 방을 썼던 어느 회사 대표의 비서실에 근무하는 아가씨와, 음악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우아한 교수님, 이렇게 세 여자가 의기투합해서 나의 첫 해외여행은 더욱 풍성해졌다.

일정에 쫓겨 바쁘게 오가느라 개인 시간은 별로 없었지만 하루의 여행을 마무리하고 나면 우리 셋은

호텔 바로 내려와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이면서 모처럼의 자유를 만끽했다.     

지금도 가끔 그때 함께 여행했던 두 분이 떠오를 때가 있을 정도로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인연이었다.  

  



 



여름밤  센 강 유람선에서 집단으로 댄스파티를 벌이는 파리지엥을 보며 ‘낭만’이란 단어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 속의 미쉘과 알렉스의 비극적인 사랑을 떠올리기도 했다.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예술의 향기를 맛보았고 네덜란드의 시골 마을에서는 네로와 파트라슈가 금방이라도 풍차 방앗간에서 뛰어나올 것만 같았다.

독일 맥주를 마시고 나니 그동안 내가 먹었던 맥주는 맥주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고풍스러운 성당에서는 없던 신심이 절로 생겨났다.  


  

첫 여행 이후 유럽의 이미지는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따라다녔다. 역마의 병이 시작되었다.

그 이듬해에 고2였던 큰 딸을 꼬드겨 또다시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넓은 세상을 보여준다는 명목으로 입시가 코 앞인 딸아이를 데리고 겁도 없이 여행을 나선 간 큰 엄마였다.

두 번째 여행에는 동생도 동행했다.    

 






누구라도 산타루치아 한 소절을 멋들어지게 부를 것만 같은 베네치아에서 수많은 여자를 농락했던 카사노바가 감옥으로 가면서 건넜던 리알토 다리, 일명 통곡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지나간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지중해의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무심히 서 있는 다리는 여행자의 감성을 자극했다.


하이디가 뛰어놀았음직한  스위스의 드넓은 초원은 지친 심신을 달래주고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염소가 지나갈 때마다 목에 달린 방울에서 울리던 맑은 소리는 마음 깊은 곳에 와 닿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곳에서 한 달만 머물면 세상의 근심 걱정 따위는 눈 녹듯 사라질 것만 같았다.


화산 폭발로 사라진 도시 폼페이에서 시간의 퇴적물 속에 켜켜이 쌓인 고대인의 삶을 찾아 과거 여행을 떠나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왕자나 공주가 살 것만 같은 아름다운 성의 사진이 실린  표지의 스케치북이 있었다.

그 성을 보고 한눈에 반한 나는 스케치북을 소장품 1호로 꽤나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이 담에 크면 성에 꼭 한 번 가 보리라 야무진 다짐을 하면서...


나중에 알고 보니 독일의 노이슈반슈타인 성이었다.

디즈니 성의 모델이 되기도 했던 이 성을 독일 여행 중에 드디어 방문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판타지를 눈앞에서 확인한 것은 꽤나 가슴 벅찬 감동을 안겨 주었다.






말하자면 어린 시절의 버킷 리스트가 실현되었다고나 할까..

  

여행 중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물론 겪었다.



피사의 사탑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기울어져 있던 그곳에서 동생은 젤라또를 먹고 갑작스러운 배탈이 났다. 버스 이동 중에 화장실이 급해서 거의 기절 직전까지 갔다.

유럽은 아무데서나 차를 세울 수 없게 되어 있고 정확하게 휴식시간을 지켰기 때문에 급하다고 차를 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목적지까지 아픈 배를 부여잡고 가까스로 참았던 동생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로 전력 질주했다. 달리기라면 뒤에서 첫 째 가는 실력을 자랑했던 동생이었지만 그 순간만은 우샤인 볼트를 능가하는 번개 같은 솜씨로 질주했다.

평소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의 동생이었지만 생리적 현상 앞에서는 체면이고 염치고 없었다.
긴 줄을 늘어 선 유럽피언들을 거의 떠밀다시피 해서 제친 뒤 화장실을 향해 번개처럼 뛰어들었다.
하지만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것이 인지상정이다.

잠시 후 동생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들지도 못한 채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와야 했다.






더운 여름에 끼니까지 굶어야 했을 정도로 고생했던 기억이지만 지금도 그때 일을 추억하며

우리 자매는 한바탕 웃곤 한다.     



잠시나마 삶의 짐을 내려놓고 아이도, 나도, 동생도 그렇게 길 위에 서 있었다.

덕분에 큰 아이는 넓은 세상을 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입시 실패, 그리고 이어지는 재수생활에서,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을 견뎌야 하는 수고를 감내해야만 했으니까..



한편으론 미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머리로만 하는 공부보다는 가슴으로 하는 공부를 더 중시하는  유별난 교육철학(?)을 가진 엄마 덕분에 아이 인생이 좀 더 풍부해졌으리라는 변명으로 위안을 삼아 본다.


두 번의 좌충우돌 여행 덕분에 유럽은 한층 친숙한 여행지로 다가왔고 이후 남편과 둘이서, 혹은 가족 모두 다시 유럽으로 떠나는 계기가 되었다.



소설가 은희경은 ‘여행이란 낯선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 나로 돌아오는 탄력 게임’이라고 했다.
손미나는 `여행지에서 걷는 일은 매 순간 가슴이 두근대며 설레는 모험'이라고 말했다.
내게 여행이란 잠시 쉬어가는 휴식이자 낯선 공간에서 느끼는 자유로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는 시간이다.
소진된 에너지의 재충전이고 열심히 일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흑백이었던 일상에 하나 둘 색이 입혀진다.

익숙한 삶의 선로에서 잠시 이탈해서 낯선 땅,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낯선 경험을 하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체험이다.  


잠시 익숙한 것과 결별하고 세상의 저 편에서 또 다른 시작을 준비할 수 있는 여행은

그래서  늘 그리움의 대상이다.

    

제법 오랫동안 여행다운 여행을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올여름에는 큰 아이가 있는 스페인에서 잠시 머물다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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