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영인 마음여행자 Jun 04. 2020

영화 <김 군> '김 군' 과 '광수' 사이

- ‘김 군’을 찾아 나선 여정에서 마주한 또 다른 ‘김 군’들 -

코로나 19가 촉발한 불안은 일상의 삶을 헝클어놓았다. 집중력이 떨어졌고 규칙적으로 이루어지던 삶의 루틴은 흐지부지 되거나 뒤로 미루어졌다. 일주일에 한 두 편은 꼭 보던 영화도 마음의 어수선을 핑계로 챙겨보지 못했다. 영화를 보든 안 보든 월 구독료는 꼬박꼬박 나간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아이패드를 열고 왓챠 플레이에 로그인했다. 새로 올라온 영화를 검색하던 중 낡은 흑백사진을 담은 포스터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날카로운 눈매의 남자가 비스듬한 자세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응시’라는 말 보다 ‘째려본다’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남자의 눈매는 매서웠다. 매주 업데이트되는 수십 편의 영화 중에 <김 군>을 선택한 이유는 관객의 리뷰도, 화려한 수상경력도 아닌 무의식적인 끌림 때문이었다.    


한동안 사진 속 남자와 눈 맞춤을 하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포스터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대, 진실의 방아쇠를 당겨라’ 그제야 <김 군>이 40년 전 광주의 진실 한 조각을 찾기 위한 여정을 다룬 영화임을 알아차렸다. 서울 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남자가 찍힌 사진의 시간적 배경은 80년 5월, 공간은 광주 도심이었다. 영화의 시발점은 군용 트럭 위에서 군모를 쓰고 손에는 무기를 든 이 남자를 극우 논객 지만원이 광주에 파견된 북한 특수부대원을 지칭하는 ‘광수’로 명명하는 순간이다. 이후 수많은 시민군들이 지만원에 의해 제2, 제3의 ‘광수’가 되었다.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직접 사진 속 ‘김 군’을 찾아 나선다. ‘김 군’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 한 조각의 퍼즐도 소홀히 할 수 없었던 감독은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사람들과 광주시민을 인터뷰한다. 이 과정에서 여전히 아프고 쓰라린 광주의 상처가 하나 둘 수면 위로 떠오른다. 40년은 상처가 아물기에 충분한 시간인 듯 여겨지지만 감독이 마주한 광주는 여전히 40년 전 5월에 머물러 있었다.     


그동안 광주를 소재로 많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광주의 비극으로 정신 이상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한 소녀의 불운한 삶을 형상화한 장선우 감독의 <꽃잎>을 시작으로 인생의 막장에 다다른 영호가 철로 위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는 장면이 강한 인상으로 남은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 있다. 시간이란 철길 위를 되돌려서 풀어내는 한 남자의 삶의 중심에 5월의 광주가 자리하고 있음을 영화는 보여주었다. 광주항쟁 자체보다는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준 김현석 감독의 <스카우트>, 밀린 월세를 갚을 수 있다는 희망에 손님을 태우고 광주로 간 택시 기사 만섭이 다시 광주로 돌아가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장훈 감독의 <택시 운전사>도 있다. 광주를 목도한 만섭의 방향 선회는 만섭의 각성이자 역사의 방관자로 남은 수많은 관객들을 80년 광주로 소환하는 감독의 손짓이었다.    


광주 항쟁에 대한 한 극우 인사의 왜곡과 날조에 대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대응한 영화 <김 군>의 강상우 감독은 80년 광주와 접점 없는 삶을 살아온 83년생 서울 태생이다. 그는 지만원이 북한 특수군이라고 지목한 시민군의 행방을 찾기 위해 4년여의 시간을 기꺼이 반납했고 의미 있는 여정을 90분간의 영상에 담았다.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지만 역사를 만든 것은 이름 없는 개인이다. 진실의 퍼즐 한 조각을 찾기 위해 감독이 한 사람의 개별자에 집중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빛바랜 사진 한 장에 의지해 ‘김 군’의 삶을 역추적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또 다른 ‘김 군’들을 만나게 되고 그 날의 악몽에서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개인의 삶을 마주하게 된다.


‘광주사태’가 ‘광주 민주화 항쟁’으로 재명명되고 국가 전복을 시도한 ‘폭도’들이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용기 있는 ‘시민군’으로 새롭게 조명 받음으로써 광주시민들의 억울함이 풀렸다고 믿는 건 순진한 발상이겠지만 실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혹했다. 40년 그 날, 역사적 현장의 증인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은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빨갱이로 몰리고, 북한 특수군으로 날조되어 독재정권의 희생양으로 오랜 세월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쓴 채 살았다. 평화롭던 삶은 순식간에 방향이 바뀌었고 한과 슬픔의 응어리는 단단하게 굳어져 돌이 되었다.     


40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가해자는 여전히 사과할 일이 없다고 발뺌하고 진상규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만원은 범죄 수사에서 사용하는 기하학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시민군들이 찍힌 사진 속에서 561명의 ‘광수’를 을 찾았다고 우기며 광주 민주화 운동을 북한군이 일으킨 폭동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가 ‘제1광수’로 지목한 영화 포스터 속 남자는 북한 노동자 회관에서 열린 기념식 앞줄에 앉은 세 사람 중 한 사람이었던 김창식이라고 했지만 그의 주장과 달리 누가 봐도 사진 속 ‘김 군’과 ‘김창식’ 사이에는 닮은 구석이 없었다. 희한한 논리를 펼치며 그가 작명한 광수는 600여 명에 이른다. 역사 왜곡에 여념이 없는 그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신자를 닮았다. 맹목적으로 교주를 추앙하고 무비판적으로 교리에 따르는 신자들에게 합리적인 목적이나 합당한 이유 따위가 있을 리 만무하다.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김 군’들은 여전히 5월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체 썩는 냄새를 떠올리게 되는 그 날을 소환하면 잠을 잘 수 없다는 ‘김 군’, 체포됐던 장소를 갈 때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고 말하는 택시기사 ‘김 군’도 있다. 또 다른 ‘김 군’은 체포되어 무자비하게 폭행을 당한 뒤 수감생활을 했지만 그 날 도청에 간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박힌 총알이 그 날의 기억과 함께 몸속에 각인된 ‘김 군’도 있다. 피로 물든 금남로를 차마 못 본 채 하지 못한 ‘김 군’들의 삶은 80년 5월 이후로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광수’ 찾기의 여정은 녹록지 않았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민군들은 서로의 신상을 묻지 않았다. 생사를 다투는 상황을 함께 했음에도 누구누군지 이름조차 알지 못한 이유였다. 다만 페퍼포그 트럭에 탑승한 정황으로 미루어 그가 총기를 반납하러 가는 상황이었다는 것만 추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총기를 반납한 5월 23일 이후로 그는 사진 속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여러 사람을 거친 노력 끝에 트럭에 같이 탔던 시민군 최진수 씨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는 ‘김 군’이 연행된 장소에서 사살되었다고 증언했다. 5월 24일, 계엄군 간 오인 사격으로 군인들이 사망하자 그 보복으로 무차별 총살이 이루어졌고 김 군이 그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이다. 함께 연행되었지만 두려움에 먼저 나서지 못한 자신을 대신해 맨 처음 계엄군 앞으로 나선 그가 죽임을 당했다고 말하는 최진수 씨는 죄책감에 고개를 떨구었다.     


그들이 무기를 들고 도청 앞으로 모인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타오르는 열망이나 시민의식으로 단단히 무장해서가 아니었다. 내 가족과 친구가 피를 흘리며 죽어 나가고 선량한 시민이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더 이상 모른 체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화 속 ‘김 군’의 말대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좋으니 이제 제발 왜곡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웃의 죽음에 등 돌리지 않고,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냈던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지는 못할 망정 망언과 망발을 일삼는 행위는 민주항쟁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과 동시에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광주 시민들의 삶 전체를 깡그리 부정하는 짓이다. 함께 하지 못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국민들과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 깔린 채 신음하는 광주시민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 40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광주는 여전히 ‘그 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 사람의 성씨 중에 가장 많은 것이 김 씨이다. 감독이 영화 제목으로 ‘김 군’을 택한 것은 우리 중 누구라도 ‘김 군’ 이 될 수 있음을 말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역사의 방관자가 많을수록 ‘김 군’들도 늘어간다는 사실을 영화는 되새겨 주었다.     


5월은 계절의 여왕답게 아름답고 찬란한데 역사 속 5월은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때로는 미안한 마음만으로도 한 생애는 잘 마무리된다” <로기완을 만났다>의 조해진 작가의 말이 떠오르는 5월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걸어도 걸어도 작은 배처럼 나는 흔들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