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복수는 나의 것>-
오래전 누군가를 무척 미워한 적이 있습니다. 제 안에서 자라고 있는 분노와 미움, 포기와 절망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저 자신도 놀랄 정도였습니다. 무난한 환경에서 특별한 말썽 없이 학창 시절을 보내서 일까요. 제 주변에는 늘 적대적인 사람보다 우호적인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는 사회생활의 첫 발을 내디딘 저에게 지옥을 안겨 주었습니다. 매일 사직서를 품고 다니며 고군분투하던 나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속으로는 조용히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기껏해야 뒷담화를 하는 정도의 소심한 복수외에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갑작스러운 부서이동이 있었고 그와의 힘겨운 동거는 막을 내렸습니다.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을 때는 몰랐던 것을 거기서 빠져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을 향한 부정적인 감정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비난의 화살을 제 자신에게로 돌린 것은 큰 문제였다는 것을 말입니다. 일명 ‘가스 라이팅’이었습니다. 저는 다시금 ‘복수는 나의 것’을 외치며 이를 갈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결기는 점차 희미해졌고 어느 날 저에게 당도한 소식은 제 복수가 대상을 상실했음을 말해주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그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전 착한 사람입니다” 청각장애인 청년 류의 대사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그의 하나뿐인 누나는 신장병을 앓고 있고 류는 공장에 다니면서 지극정성으로 누나를 보살핍니다. 어느 날 공장에서 해고를 당하게 된 류는 누나를 살리기 위해 장기밀매조직을 찾아갑니다. 자신의 신장과 천만 원을 주는 대가로 누나를 위한 신장을 받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사기로 드러나고 류는 그동안 모은 돈 천만 원과 자신의 신장까지 도둑맞게 됩니다. 때마침 병원에서 누나에게 맞는 신장을 찾았다는 다급한 전화가 옵니다. 하지만 류는 이미 빈털터리가 되어 수술할 돈을 모두 날린 상태입니다. 괴로워하는 류에게 여자 친구 영미가 ‘착한 유괴’를 제안합니다. 중소기업 사장 동진의 딸 유선을 잠시만 유괴해 돈을 받은 뒤 아이를 돌려 주자는 것입니다. 진퇴양난에 빠진 류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유괴합니다. 동진으로부터 돈을 받아내는 데 성공한 그날 류의 누나가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 여긴 누나는 자살합니다. 누나의 시체를 묻으러 간 날 사고로 동진의 딸마저 익사하게 되자 동진은 류를 찾아, 류는 장기밀매조직을 찾아, 잔인한 복수를 시작합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입니다.
류는 유선의 우발적인 죽음으로 동진의 복수의 대상이 되고 동진은 돈만 건네주면 딸과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 복수의 화신이 됩니다. 류를 죽이고 영미를 전기고문으로 살해하며 잔인하게 대갚음을 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도 누군지도 모르는 혁명당원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됩니다. 처음에 류는 무구한 피해자였습니다. 사기를 당해 장기를 갈취당하고 누나마저 잃었습니다. 동진 역시 피해자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어렵게 회사를 일구느라 가정에 소홀한 탓에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딸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어찌하다 보니 류는 세 사람이나 살해하게 되었고 동진 역시 류와 영미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복수의 객체가 주체가 되고 주체가 다시 객체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 것입니다. 폭력이 영혼을 좀먹기 시작하면서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돌변한 그들은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복수를 합니다.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한 발자국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되고 파국으로 치달았습니다.
영화 속에서 ‘복수는 나의 것’이라 외친 동진과 류는 결국 처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착한 사람’이었던 류는 순식간에 인생의 파도에 휩쓸려 살인자가 되었고 자신의 피로 강물을 물들이며 죽어갔습니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죄진 자는 그 값을 받는다”는 인과응보의 논리는 동화나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니까요. 동진 역시 영미의 복수를 위해 나타난 조직원들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합니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죽어간 동진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은 가까운 사람의 납득할 수 없는 죽음에 직면해 삶의 인과율이 무너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드 보일드’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 영화는 대사가 간결하고 공장의 기계음, 드릴 소리, 비명소리가 음악을 대신합니다. 괴물과 싸우다가 점점 괴물로 변하는 인간의 어두운 심연을 보여줍니다. 딸의 시신을 해부할 때 차마 보지 못해서 울먹이던 동진과 류의 누나의 사체를 부검할 때의 따분하다는 듯 하품을 하던 동진은 분명 같은 사람입니다.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늪 속에서 허우적대는 부조리한 상황에 처한 안쓰러운 인간의 모습입니다.
복수는 태생적으로 그 대상은 물론 주체까지 상하게 하는 비수를 품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저에게도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감정의 파고를 견뎌야 하고 자기혐오에서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그분에게 이제 아무런 감정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죽음 앞에서 생긴 동정심 때문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날 선 감정은 어느새 무뎌졌고 제 자신의 허물도 되짚어 볼 수 있을 정도로 나이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노래하지만 ‘복수만이 나의 것’이 되어 버린 사람들. 종국엔 이 마저도 제 것이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는 충격적인 전개, 배경음이 거세된 날 것의 소리가 유발하는 차갑고 건조한 배경음이 암시하는 어두운 현실의 반영이었습니다.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잔뜩 긴장한 채 화면을 응시하면서 ‘‘섣불리 희망을 얘기할 수 없었다’는 감독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안과 밖의 구분이 모호한 뫼비우스의 띠처럼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지인지 알 수 없는 미로 같은 현실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