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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Oct 10. 2022

그의 등을 가만히 쓸어주고 싶었다

아버지는 엄마를 왜 그렇게 대했을까요?

잔인한 장면과 비속어가 난무하는 불편한 영화였지만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몰입했다. 영화 <똥파리> 얘기다. 주인공 상훈과 함께 울고, 웃고, 좌절하며 분노했다. 인상적인 영화로 기억하는 이유는 감독 겸 주연을 맡은 양익준이라는 사람 때문이었다.. 그는 영화 속 상훈에게 완벽하게 빙의해서 가정폭력의 희생양이자 자신 역시 폭력을 휘두르며 살아가는 인물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연기임에 분명했지만 어쩐지 나는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향해 내지르는 고함과 공허한 눈빛 속에는 연기 그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었고 흔히 말하는 메서드 연기 덕분에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으므로 한 줌 의문은 가슴 한쪽에 묻어 두었다.  


우연한 계기에 궁금증이 풀렸다. 심리상담으로 이름을 높이고 있는 신경정신과 의사가 진행하는 방송에 그가 출연한 것이다. 그는 담담하게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13년간 앓고 있는 공황장애와 관계의 어려움 등에 대해 토로하면서 안타까운 가족사를 고백했다. 1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큰 아이를 낳고 대가족을 돌봐야 했던 감독의 엄마는 남편의 폭력까지 견뎌야 했기에 자신을 지우고 살았다. 엄마에 대한 연민과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인해 감독은 공황장애를 앓게 되었고 아무리 좋은 사람과도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었다. 자기 소개할 때면 ‘저는 좆밥이에요’라고 할 정도로 하찮은 존재로 자신을 명명했다. 겸손이 지나쳐 자기 비하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남들에게 ‘쉬운 사람’ 취급을 자주 받았다고 호소했다.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세계가 인정한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은 ‘저를 아무렇게나 대해 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무의식 중에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를 존중하는 편안한 가족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그는 자신을 존중하는 법을 몰랐고 부적절한 감정표현으로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양익준 감독은 가정폭력을 휘두른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희생양이 된 엄마의 슬픔을 먹고 자란 아이였다.  그가 직접 주연을 하고 감독을 맡은 영화 <똥파리>는 그렇게 탄생했다. 폭력이 한 사람의 인생을 무참히 파괴하는 과정과, 희생자의 영혼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주인공은 똥파리 같은 삶을 사는 상훈이다. 모두가 피하는 그는 어쩌다가 그런 삶을 살게 되었을까?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산산조각이 나버린 가정에서 성장한 상훈은 성인이 되어서도 폭력으로 얼룩진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고 급기야 어느 날 식칼을 들고 난동을 부리게 된다. 아버지를 말리던 어린 여동생이 아버지가 휘두른 칼에 찔리고 상훈은 여동생을 둘러업고 병원으로 향한다. 넋을 잃고 뒤따라 오던 엄마는 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여동생도 결국 과다출혈로 숨진다. 엄마와 여동생을 한꺼번에 잃은 상훈의 분노는 극에 달하게 되고 세상을 향해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시작한다. 성인 된 그는 용역깡패로 폭력을 일삼으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미친 듯이 사람을 때리고 험한 욕을 내뱉으며 시도 때도 없이 폭발하는 화를 참지 못한다. 욕과 폭력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한 남자가 내지르는 짐승 같은 절규였다. 그렇게 미워하고 증오했던 아버지가 어느 날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아버지를 찾아간 상훈은 힘없고 늙은 아버지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다. 어린 시절 자신이 당했던 그대로 아버지를 욕하고 때린다.  이 그 장면에 대해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그 장면은 사실 상훈이 아버지를 때리러 간 것이 아니고 대화를 하러 간 거다. 우리가 받은 교육을 못 받다 보니, 상훈이의 대화법은 폭력과 폭언인 거다. ‘왜 우릴 그렇게 힘들게 했나요?’라고 얘기하고 싶은데, 자신의 언어가 그렇게 폭력으로 표현된 거다. 상훈은 대화를 하고 싶은 것이다. 아버지뿐만 아니고 형인이(조카), 누나, 연희에게도. 그러나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언어를 배우지 못해서 그렇게 하는 거다”      


대화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상훈은 폭력으로 소통하고 폭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오래 묵은 감정의 한풀이를 한 뒤에도 그의 삶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증오하고 미워했던 아버지였지만 자신 역시 아버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아픈 자각만 했을 뿐이었다. 비슷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연희와 가까워지며 상훈은 조금씩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가 싶었지만 불안하게 흔들리는 카메라는 두 사람의 미래를 암시하듯 위태로워 보였다. 세상은 끝내 상훈에게 우호적이지 않았고 희망이란 단어는 슬쩍 얼굴만 비추다 사라지고 말았다.  


‘아버지는 엄마를 왜 그렇게 대했을까요?’ 양익준 감독이 방송에서 한 말이다. 이 물음은 평생의 화두가 되었고 그는 결국 영화를 통해 자신의 아픔과 직면했다. <똥파리>는 과도한 힘과 폭력에 대한 항거의 메시지였고 자신보다 힘 있는 존재에게는 비굴하게 굴면서 만만한 가족을 스트레스 해소 대상으로 삼은 가부장적 폭력의 역사에 대한 성찰이기도 했다. ‘세상은 엿같고 핏줄은 더럽게 아프다’는 영화 포스터의 문구처럼 가족은 존재의 근원이지만 상처의 온상지이기도 하다. “나 어떻게 살아야 하냐? 네가 한 번 말해봐라 “ 상훈이 연희에게 묻는다. 감독이 스스로에게 무수히 던진 질문이기도 할 것이다. 상처 투성이 어린 양익준의 등을 가만히 쓸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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