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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Oct 26. 2022

동백이의 꿈

아무도 나한테 고맙다고 안해요

혼자 아이를 키우며 술집을 하는 여자에게 남자가 물었다.

“동백 씨는 꿈이 뭐예요?” 여자가 작은 목소리로 “공기업”이라고 했다.

 “네?”

“철도청 같은 공기업요”

“공기업? 아. 아. 은근 야심가시네요”

“그중에서도 딱 저기 앉고 싶어요”

여자가 가리키는 곳은 역사의 분실물센터였다.

“왜 굳이 저길…”

“뭐만 찾아주면 늘 그러잖아요. 고맙다고 고맙다고들 하니까. 제가 살면서 미안하게 됐다, 이런 얘기는 좀 들어봤거든요. 사랑한다는 얘기야 뭐 아무렇게나 들었죠. 근데 이상하게요, 아무도 나한테 고맙다고 안 해요. 아무도 나한테 그 말은 안 해요… (중략) 사람들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막 고맙다고 인사하면 기분이 어떨지 상상도 안돼요”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이 철도청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한 이유는 안정적이어서도, 연봉이 많아서도 아니었다. 고맙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였다.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음직한 ‘고맙다’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꿈이 될 정도로 간절한 언어였다. 동백의 말속에서 그녀가 살아온 시간이 어떠했는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미안하다는 말은 상대방에게 실수를 하거나 잘못했을 때 하는 말이다. 사람들이 그녀를 함부로 대하고 자주 실수를 저질렀음을 알 수 있다. 사랑한다는 말은 ‘아무렇게나’ 들었다고 했다. 사랑한다는 말은 ‘아무렇게나’ 들어서 안 되는 말이다. 벼르고 별러서, 수십 번 고민 후에, 온 존재를 담아서 힘겹게 전하는 말이 ‘사랑한다’ 는 말이어야 한다. 하지만 동백은 사랑한다는 말을 함부로 던지는 돌처럼 맞았다. 입은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동백에게 닿은 것은 폭력이었다.


‘직업여성’ 일지 모른다는 오해와 편견, 비혼모로서 겪는 경제적 문제와 곱지 않은 시선까지 받아야 했던 그녀는 그저 아이 하나 잘 키워보기 위해 생활전선에 뛰어든 평범한 자영업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왕따 시키고 땅콩 서비스를 요구하며 치졸하게 군다. 때로 성희롱까지 한다. 그녀는 아무나 두드려도 되는 동네북 신세였다. 드라마 속에는 향미라는 또 다른 여성이 나온다. 동백이 운영하는 술집 까멜리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성매매 여성이다. 어렸을 때부터 싹이 노랗다는 말을 들은 그녀는 유흥업소 ‘물망초’의 딸이었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그녀에 대해 스스로를 ‘열외’로 명명하듯 향미는 사회의 낙오자이며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었다. 심지어 죽음을 맞아도 슬퍼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은 캐릭터다. 가족도 없는 데다 도박에도 손을 대고 남자 문제와 돈 문제까지 엮여 있기에 게르마늄 팔찌를 찬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동백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 여겼을지 모른다


향미는 정말 ‘열외자’ 취급을 받아 마땅한 존재일까?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생각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에게는 유학 간 남동생이 있다. 그녀가 진흙탕 속에서 더러운 물을 뒤집어쓰는 동안 동생은 외국에서 공부하며 돈이 필요할 때마다 누나를 찾는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동생이 있는 덴마크로 가려하자 교민사회가 좁다면서 만류한다.


우리 사회는 언제나 개인의 사정에는 관심이 없다. 열외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환경, 사회적 책임은 외면한 채 낙인찍기 바쁘다. 신성한 삶의 영역을 오염시키는 더러운  벌레 취급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 옹색한 삶을 드러내기 구차스러워서, 누구도 이해해 줄 것 같지 않아서 무심한 척 살아갈 뿐이다. 차별과 편견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사회에서는 무수한 동백이들이 손가락질받고 또 다른 향미들이 어디선가 죽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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