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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Oct 27. 2022

나의 소녀시대

그 시절의 나에게 전하는 위로

여고시절은 아름답지도, 다시 돌아가고픈 그리운 시간도 아니었다. 우울하고 흐린 무채색 풍경화에 가까웠다. 낯가림이 심하고 내성적이었던 탓에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못한 채 외톨이로 지냈다. 적성과 흥미라는 단어는 당시의 교육 사전에는 등재되지 않았기에 천편일률적으로 떠먹여 주는 지식을 고분고분 받아먹어야 했다. 개별 자아는 삭제된 채 ‘학생’이라는 사회적 자아만 남아 교실 한 구석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  


만화방에 들락거리며 소심한 반항을 시작했다. 부모님은 만화방이 노는 애들(?)이나 들락거리는, 범죄의 온상(?)으로 일찌감치 낙인찍은 터였다, 들킬 경우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용암처럼 들끓고 있는 속을 달래기 위해서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평균과 일탈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탈출구를 찾아 헤매 다녔다. 서가마다 빼곡히 꽂혀 있는 만화책은 무궁무진한 스토리의 산실이었다. 순식간에 매료된 나는 시험기간에도 몰래 만화방에 들락거리며 은밀한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세상과 완벽하게 차단된 시공간 속에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은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로맨틱한 러브 스토리와 드라마틱한 사건, 격정적인 희로애락은 내가 살고 있는 무료하고 심심한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짜릿했다. 그곳에서는 시간도 멈춰버렸고 공간감도 사라졌다, 대리만족에 그칠지언정, 잠깐의 일탈일지라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시간이었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만화방을 빠져나오면 얼굴에 닿는 초저녁 바람이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또다시 입시지옥과 엄마의 잔소리, 꿈이 없는 우울한 현실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가야 했지만 판타지의 세계는 메마른 현실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이 여학교라고 다르지 않았다. 여고생들의 계급을 결정짓는 3요소는 부와 성적, 그리고 외모였다. 외모도 별로였고 부자는 더더욱 아니었기에 공부라도 썩 잘했으면 좋았겠지만 불행하게도 고등학교 입학 후로 성적은 꾸준하게 하향 곡선을 그리는 중이었다. 외모가 출중한 아이들은 여고생들의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선생님들의 사랑 또한 듬뿍 받았다. 교복 자율화 세대인 우리는 교복 대신 사복을 입었다. 옷 값 걱정에 허리가 휠 게 뻔한 학부모들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복 자율화는 강행되었다. 사복만 있으면 학생들의 자율의식이 저절로 쑥쑥 자라는 것인지, 옷과 자율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우중충한 교복 대신 산뜻한 사복을 입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열광했다.  


부잣집 아이들이 값비싼 브랜드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치마와 블라우스로 집안의 부를 마음껏 자랑할 때 없는 집 아이들은 교복보다 별반 나을 게 없는 옷으로 일주일을 버텨야 했다. 옷이 몇 벌 없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이 차가 없는 여동생이 둘이나 있는 덕분에 옷을 지키느라 아침마다 전쟁을 치렀다. 방심하는 날에는 그날 입을 옷이 사라지는 대참사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한시도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었다. 늦잠을 자거나 정신을 딴 데 팔았다가는 고심 끝에 세팅해 놓은 옷이 사라지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일을 당해야 했다. 울고 불고 악을 쓰다가 추레한 옷차림으로 터덜터덜 집을 나섰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는 엄마의 잔소리까지 등에 업고서…


뜨거운 여름에 찬물에 발을 담근 채 이름은 ‘자율’이나 본질은 ‘강제’인 야간 자율학습에 시달려야 했던 악몽 같은 시간도 지나왔다. 마음에 드는 과목은 없었고 하기 싫은 교과는 너무 많았다. 하지만 누구도 취향이나 적성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앵무새처럼 지식을 암기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교실 한 구석에서 무기력하게 공상으로 시간을 때우는 것 외에는…  


용케도 견뎌왔구나 싶을 만큼 잔혹한 학창 시절이었다그 시기를 무사히 통과한 것은 내가 단단해서도, 성숙해서도 아니었다. 삶의 이면을 조금씩 알아차리는 동안 터널의 끝에 다다라 있었을 뿐이었다. ‘아픈 만큼 성숙 진다는 말은  지난 유행가 가사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현실의 ‘성장 고통 끝에 다다르는 영광이 아니라 삶의 모순과 부조리에 익숙해지는 과정에 가까우니 말이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의 팔 할은 그때 읽었던 책과 만화, 늦은밤까지 몰래 들었던 음악이었다. 흔들리는 갈대처럼 불안했던 사춘기 소녀는 그것들에 의지해 가까스로 터널을 빠져나왔다. 입시지옥의 고통 속을 헤매거나, 관계의 상처로 아파하는 아이들, 정체성 혼란으로 방황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지나온 학창 시절이 떠오른다. 어두운 터널 속, 끝날 것 같지 않은 아득한 선로 위에 선 아이들을 가만히 안아 주고 싶다. 그리고 그 시절의 나에게도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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