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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Mar 07. 2023

꿈결 같은 하루

독립영화관 나들이

오랜만에 독립영화관 나들이를 했다. 종로에 있는 영화관은 주택가 한가운데, 영화관과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맵을 켜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대로를 벗어나 조금만 걸어 들어가니 거짓말처럼 고즈넉한 주택가가 나타났다.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에서 주인공 소녀가 터널을 빠져나오자 맞이한 낯선 장소처럼. 기분이 묘했다. 오랜만에 찾은 독립영화관 못지않게 오래된 주택가를 걸어보는 것 또한 매우 오랜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신도시고 주변 환경도 비슷해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낡은 주택이나 오래된 건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 자리에는 아파트가, 상업용 빌딩이 대신하고 있다. 또한 건축공화국답게 무언가를 부수고 짓는 공사가 매일 진행 중이다. 재래시장이나 작은 가게 대신 대형마트와 편의점이 영세상권을 잡아먹은 지는 이미 오래다. 저마다의 독특한 콘셉트 대신 같은 재료로 전국 어디서나 동일한 맛과 품질을 보장한다는 평등주의(?)를 내세운 프랜차이즈 식당이 많은 것 또한 이 도시의 특징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골목길이나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조용한 주택가에 들어서면 떠나온 고향이 생각나서 괜한 향수에 젖곤 한다. 대상이 불분명한 그리움이 피어나고 마음은 솜털처럼 포근해진다. 부모 세대와 달리 고향을 그리워하는 세대가 아님에도 말이다..  


하늘은 흐렸고 공기는 축축했지만 생각보다 춥지 않은 건 봄의 기운이 한 스푼 스며 있어서일 것이다. 자연의 시계는 변함없이 흐르고 오작교에서 만나는 견우와 직녀처럼 잠깐이지만 봄과 겨울의 만남이 이뤄지는 시기가 이맘때 쯤이다. 흐린 하늘과 오래된 골목길과 인적이 드문 조용한 주택가는 화음이 잘 맞는 합창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어렸을 때는 아파트보다 주택에 사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골목은 저마다의 아우라를 간직하고 있었고 옆 골목과도 잘 어울렸다. 부드러운 곡선이 겹쳐져서 물 흐르 듯 자연스러웠다.  골목의 주인은 아이들이었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떠드는 목소리 사이로 불협화음처럼 끼어드는 어른들의 고함소리로 하루종일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밥때가 되면 불빛에 놀란 바퀴벌레가 번개처럼 흩어지듯이 아이들은 각자의 집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집집마다 새어 나오는 부모님의 고함소리는 군대의 상사처럼 아이들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했다. 간혹 미련이 남아 아련한 시선으로 골목을 응시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가차 없이 날아오는 엄마의 등짝 스매싱에 결국 집으로 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골목에는 하나 둘 가로등이 켜지고 작고 소박한 창문 너머로 구수한 밥 냄새와 생선 비린내가 가족들의 수다에 묻어 새어 나온다. 포장이 되지 않은 골목은 극성맞은 아이들의 무릎에 깊이 파인 상처를 남기기도 했지만 너른 품으로 안아 주었다. 때로는 놀이터로, 때로는 광장으로, 가끔씩은 전쟁터로 돌변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이곳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을 쌓아갔다. 


그 많던 골목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골목이 사라지자 아이들도 사라졌다. 날 선 빌딩과 무표정한 어른들 틈에서 자가용에 실려 학원과 집을 공중부양하듯 오가는 아이들의 고독한 라이프만 남았다. 골목이 사라진 쓸쓸한 도시의 풍경이다. 


평소 같았으면 발걸음을 재촉해 목표물을 향해 직진했겠지만 그날은 일부러 천천히 걸으며 저마다 다른 색깔의 대문과, 담벼락, 낡아서 더 정겨운 간판까지 하나하나 담아둘 요량으로 찬찬히 살피며 걸었다. 골목의 냄새, 담 넘어 살고 있을 누군가의 집을 상상했다. 시끄러운 경적이 울리고 차들이 위협하는 도로변에서는 상상력이 피어날 여지가 없다. 그저 앞만 보고 차를 피해 걸어가기에 급급하다. 어린 시절 집집마다 달려있던 문패를 발견했을 때는 절로 발걸음이 멈추어졌다. 요즘은 아파트 생활을 주로 하다 보니 문패를 달지도 않을뿐더러 누구누구네 집이라고 당당하게 알리는 것이 오히려 두려운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옛날에는 어렵게 마련한 공간을 자랑하고 픈 마음에, 한 가족의 보금자리를 마련한 가장의 권위를 뽐내고 싶어서라도 당당하게 문패를 내걸었다. 문패는 가족의 정체감이자 뿌리였다. 하지만 이제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간간이 눈에 띄는 문패마저도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 될지 모를 일이다.  


나 홀로 고즈넉한 시간여행을 하며 걷다 보니 영화관으로 짐작되는 작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골목이 갈라지는 길목 오르막길 초입이었다. 전시공간과 영화관과 카페를 겸한 복합 문화공간이었다. 작지만 갖출 건 다 갖춘 곳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카페였다. 아침을 거른 채 오래 걸었던 차라 배가 고팠다. 다행히 카페에는 커피나 차 종류 외에도 간단하게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샌드위치를 팔고 있었다.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없었다. 아담하고 분위기 있는 카페는 정면 창으로 초록의 풍경을  담고 있었다. 초록이 잘 보이는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은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조만간 봄이 찾아오면 색채의 향연 펼쳐질 야산이 눈에 들어왔다.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도 간간이 보였다. 샌드위치와 커피를 먹으며 자연이 선물한 풍경화를 마음껏 감상했다. 영화를 보러 온 것인데 아름다운 자연과 작은 공간 주는 편안함에 힐링까지 덤으로 받았다. 가방 속에서 스케치 북을 꺼내 그리다 만 그림을 스케치했다. 카페 내부에는 책이 구비되어 있었고 전시 공간에는 영화 관련 자료가 비치되어 있어 영화를 사랑하는 팬의 마음까지 챙기는 세심함도 잊지 않았다. 


카페에서 한 숨 돌리는 동안 관람 시간이 다가왔고 2층 상영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작고 앙증맞은 또 다른 공간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만의 아지트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은밀한 기쁨이 밀려왔다. 영화관으로 들어서자 평소에 접하기 힘든 예술 영화나 개봉한 지 오래된 흑백영화가 스크린에 펼쳐지고 있었다. 상영 예정작을 홍보하는 영상이었다. <시네마 천국> 속 어린 살바토레처럼 눈을 반짝이며 스크린을 응시했다. 하루 날 잡고 아침부터 밤까지 마음껏 영화를 보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다. 동네 영화관에서 같은 영화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던 사춘기 때의 내 모습이 스크린에 투영되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선뜻 일어날 수 없었다. 공간이 주는 신선한 자극과 영화가 던진 무수한 질문의 늪 속에서 금방 빠져나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동네마다 이런 독립 영화관이 하나씩 생겨났으면 하는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하며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봄꿈처럼 아스라한 추억을 만들고 싶다면 이곳에 한 번 가 보시길... 에무 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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