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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Dec 21. 2022

눈 때문이다

오늘도 새벽부터 눈이 내렸다. ‘오늘도’라고 한 건 12월 들어 벌써 여러 차례 눈이 왔기 때문이다. 기억을 점점 믿을 수 없는 나이가 되어 버렸지만 작년에는 거의 눈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슬쩍 흉내만 내다 사라지는 아쉬운 눈이 아니라 기세 좋게 펑펑 내려 순식간에 쌓이는 눈, 세상을 일순간 순결한 백색으로 덮어주는 폭신폭신한 눈이 오늘도 펑펑 내리고 있다. 눈과 어울리는 겨울서정은 출퇴근 거리가 먼 직장인의 고뇌 속에 묻혀 사라진 지 오래고 날씨에 민감한 촉수만 남아 가시처럼 뾰족해졌다. 눈 뜨자마자 베란다 창으로 달려갔다. 기대와 달리 날씨예보는 틀리지 않았다. 예보가 맞기를 간절하게 바랄 때는 어김없이 틀려서 실망시키더니 틀렸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는 꼭 들어맞는 건 어찌 된 일일까? 삶의 아이러니를 고작 날씨예보에서까지 보여주겠다는 하늘의 심통에 짜증이 났다. 곧이어 아득한 출근길 앞에서 절로 한숨이 났다.


눈발이 휘날리고 있었고 일부는 이미 쌓여가는 중이었다. 대중교통이라도 있었다면 마음 편하게 이용하면 그만이지만 불행하게도 내가 이동하는 루트는 자차가 아니면 곤란하다. 어마무시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직장인이 된 이후로 좋은 이미지의 겨울은 딱 한 줄로 요약된다. ‘눈이 별로 오지 않아서 도로 상황이 좋은 날씨’ 반대로, 눈이 많이 와서 기상상황이 별로라면 그 해 겨울은 악몽으로 남아 있기 마련이다.


남쪽 지방에 살았던 탓에 눈 구경 한 번 해 보는 게 어린 시절의 유일한 소원일 정도로 눈은 희귀템이었다. 어쩌다 눈이라도 내리면(사실 대부분은 내리다가 금세 사라지고 마는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눈, 생명력이 지나치게 짧아 흔적조차 찾기 힘든 눈이 대부분이었다) 온 동네 아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오랜 로망인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현실은 눈사람은커녕, 눈애기도 만들기 힘들 정도의 하찮은 양으로 아이들에게 실망감만 안겨 주었다. 하지만 어쩌다 제법 눈이 쌓인 날이면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다시 한번 동네 골목으로 모여들었다. 편을 갈라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즐거운 겨울 놀이에 빠져든 아이들의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이런 달콤한 장면은 유년의 기억 중 극히 몇 페이지에 불과했다. 하지만 겨울 방학이 되어 서울에 놀러 가면 사정은 좀 달라졌다. 그때 내 눈을 사로잡은 건 화려한 빌딩숲도, 세련된 서울 사람들도 아니었다. 휘몰아치는 눈폭풍이었다. 아파트 창 너머로 매서운 겨울바람과 함께 쏟아져 내리는 눈은 여전히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마치 겨울왕국에 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내가 살았던 남쪽의 소도시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눈이 그치면 장갑과 모자, 두꺼운 윗옷으로 무장한 채 사촌들과 함께 아파트 밖으로 뛰어 나갔다. 미니 눈사람도 겨우 만들 정도의 눈과는 비교도 안 되는 풍부한 적설량에 나는 그만 황홀해졌다. 옷이 젖는 줄도 모르고 눈싸움을 하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사촌들과 힘을 합쳐 눈사람도 만들었다. 비록 다음날 쨍쨍한 햇빛 덕분에 처참한 몰골로 녹아내린 눈사람을 바라보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가슴 아픈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지만…


일찍 서둘러서 나섰더니 눈발이 거세지기 전에 학교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라 출근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본관 건물로 향하는 인도는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채였다.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새하얀 눈의 카펫을 조심조심 밟기 시작했다. ‘처음’이라는 경험은 눈에 발자국을 남기는 일조차 설레게 만들었다. 뒤돌아 보니 걸어온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눈 위에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을 보는 순간, 어린 시절 아무도 밟지 않은 학교 운동장에 들어서는 느낌과 겹쳐졌다. 기시감이 들었다. 타임슬립처럼 시간은 빠르게 흘러 학생이었던 아이는 교사가 되어 눈 덮인 운동장을 다시 걷고 있다. 더 지체했다가는 영영 현실로 복귀하지 못할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혀 서둘러 현관으로 들어섰다. 어두운 복도를 뚜벅뚜벅 걸어갔다.


눈이 오면 음소거 버튼이라도 눌러진 듯 세상이 갑자기 조용해진다. 아니 ‘고요하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조용하다’는 의미는 ‘소리가 거의 나지 않는다’라는 뜻이지만 ‘고요하다’는 것은 소리뿐 아니라 ‘움직임이나 흔들림 없이 없다’는 의미도 더해지기 때문이다. 청각과 시각 모두 잠시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소리가 없으니 귀가 편안하고 사물이 정지된 듯한 장면은 눈의 피로를 덜어준다. 몸의 감각이 편안해지면 마음의 감각은 되레 바빠진다. 눈과 관련된 저마다의 추억이 떠올리며 겨울 애상에 젖어들기 때문이다. 그건 천진난만했던 어린 시절일 수도, 아련한 첫사랑의 아픔일 수도,  눈 내린 여행지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일 수도 있다. 눈 때문이다. 일상에 조금 균열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든 건… 


올 겨울에는 눈 덮인 오타루에서 그놈의 ‘오겡끼데스까’를 나도 한 번 외쳐봤으면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든 것도 눈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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