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영인 마음여행자 Mar 09. 2023

영화 [69세] 노인은 여자가 아닐까?

해가 진 주택가는 어두웠다. 집이 가까워지자 이모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이모를 껴안았다. 놀란 이모는 ‘악’ 하는 소리와 함께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 고 턱이 덜덜 떨렸다. 범인도 함께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그때 범인은 이모의 얼굴을 보았고 곧이어 혼비백산해서 달아났다. 이유가 뭘까? 이모는 60대 후반의 노인이었기 때문이다. 훗날 이모는 말했다. “그놈이 나보다 더 놀란 눈치였어” 뒷모습만 보고 아가씨인 줄 알았던 남자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임을 알고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친 것이었다. 이모는 연세에 비해 키가 편이었고 군살 없이 날씬했다. 나이가 들어도 몸매가 크게 변하지 않았고 허리가 꼿꼿해서 뒤에서 보면 아가씨라고 오해할 만도 했다. 마침 모임에 다녀오는 길이라 트랜치코트까지 갖춰 입은 뒷모습에 혹해 나쁜 짓을 하려던 그 남자는 역대급 반전에 놀라 도망가고 이모는 무사귀가 할 수 있었다. 오래전 일이다.


영화 <69세>는 2020년 8월에 개봉했다. 바람에 나부끼는 흰머리, 창백하고 주름진 피부, 꽉 다문 입과 눈물이 맺힌 서늘한 눈빛의 그녀에게 나도 모르게 끌렸다. 재빨리 영화 정보를 찾아봤다. 하지만  선뜻 볼 용기는 나지 없었다. 고통이 예정된 영화였기에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관람을 주저했던 진짜 이유는 기존의 성폭력을 다룬 영화에서 느꼈던 불편함 때문이었다. 성폭행 문제를 다룬 많은 영화들이 선택한 방식은 폭력 장면을 재현해서 피해자의 고통을 전시하는 것이었고 이 때문에 피해자에게는 2차 가해를, 관객에게는 불편함을 유발했던 사례가 꽤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2년이 지나서야 영화를 볼 결심을 하게 되었다. 우려와 달리 영화 속에는 불필요한 장면이나 과한 설정이 없었다. 암전의 방식을 택해 관객들이 상상력으로 채워갈 수 있도록 한 감독의 배려 덕분이었다.


어두운 화면 속에서 노인 여성 환자와 그녀를 돌보는 간호조무사의 목소리만 들린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의 물리치료를 하는 조무사는 남자다. 환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친절한 듯 보이던 그는 점차 수위를 높여가더니 곧이어 불안한 침묵이 이어진다. 이어 장면이 바뀐 영화 속에는 퇴원한 효정의 일상이 펼쳐진다. 평소와 다름없이 수영을 하고 함께 사는 동인과 장을 보고 식사를 한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심하게 일상을 이어가던 효정은 어느 날 문득 이렇게 말한다. “신고를 해야겠어요”


개봉 당시 이 영화는 평점 테러를 당하기도 했고 남성을 비하한다는 비난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런 담론 속에는 노인을 무성적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과, 노인을 향한 성범죄를 불쾌하게 여기는 마음이 혼재해 있다. 효정은 노인이자 여성이었지만 노인은 ‘여성’이 아니기에 성폭력 피해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는 사회적 편견으로 인해 그녀는 또 한 번 상처받는다. 노인을 ‘무성적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은 성범죄를 부추기고 신고를 해도 믿어주지 않는 현실 때문에 억울함을 호소할 길 없는 피해자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한다.


동인은 시인이고 효정은 책을 좋아하는 여성이다. 언어에 민감하다.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말에 더 쉽게 상처받고 분노함으로써 그녀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 영화는 암시한다. 경찰서 민원실에서 사건을 접수한 경찰이 “친절이 과했네”라는 말로 효정이 당한 일을 희화시키자 동인은 분노한다. 지인이 “조심 좀 하지”라는 말을 걱정이랍시고 했을 때 효정은  “뭘 어떻게 조심하냐’라고 매섭게 되묻는다. 자기 집에서 반바지를 입고 평상에 누워 있다가 성폭력을 당한 딸에게 ‘왜 짧은 옷을 입어서 일을 당하냐!’고 ‘조심 좀 하지!’라고 비난했다던 어느 아버지의 사례가 떠오른다. 무더운 여름에 자기 집에서 두루마기라도 입고 있어야 한다는 소린지, 당할 짓을 했으니 당해도 싸다는 뉘앙스의 말은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가해자를 탓하기보다 몸조심(?) 하지 않은 피해자의 조심성 부족으로 몰아가는 사태가 더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효정이 처가를 찾아갔다는 사실을 안 중호는 분노한다. 자신의 삶은 실오라기 하나 건드리는 것도 용납하지 않으면서 타인의 삶은 무참히 짓밟은 그의 죄목은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이라 해야 할까. 그는 결혼을 앞둔 사랑하는 여자가 있고 여자의 뱃속에는 그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지극히 평범한 젊은이다. 하지만 타인의 고통에 무지하고 죄책감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노인이라서 그랬을까?  ‘노인은 나이가 많아서 기분 나쁘지 않을 줄 알았다’는 어느 가해자의 궤변이 떠오른다. 효정의 투쟁은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가해자의 뻔뻔함과 사회의 불편한 시선 속에서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의 자존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이쯤에서 배우 예수정을 빼놓고 영화를 논하면 섭섭하다. 여리지만 강하고, 궂은일을 하면서도 자존을 지킬 줄 아는 효정을 요즘말로 찰떡같이 표현했다. 예수정이 효정이고 효정이 예수정이었다. 여리듯 강하고,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꾸려갈 줄 아는 그녀는 수영을 하고 책을 가까이하는 품위 있는 여성이었다. 어떤 삶의 길을 걸어왔을까 하는 호기심이 드는 복합적인 캐릭터를 예수정 배우는 훌륭히 연기했다.


결국 효정은 자신만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고통뿐만 아니라 이 시대 노인이자 여성으로 살아가는 무수한 이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서였다. 가해자가 저지른 일을 낱낱이 적어서 인쇄물로 만들어 아파트 옥상으로 향한다.

 

“제 얘기가 여러 사람을 불쾌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보는 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손으로 또박또박 눌러쓴 고발장을 옥상 난간에 올려놓는다. 기다렸다는 듯이 바람이 불고 효정의 호소문이 세상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한다. 허공에 날리는 고발장을 뒤로하고 그녀는 천천히 돌아선다. 그녀의 등 뒤로 희미하게 빛나는 건 용기와 연대를 향한 작은 희망이었을까


작가의 이전글 꿈결 같은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