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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Jun 21. 2023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 나만의 방이 생겼다

유년기의 대부분을 보낸 집은 오래된 주택이었다. 방은 작고 공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시골에서 할머니라도 올라오시는 날이면 우리 자매들은 좁은 방에서 할머니의 담배 연기를 맡으며 잠들어야 했다. 시간이 흘러 형편이 좀 더 나아지면서 새로 집을 짓게 되었다. 내 관심사는 온통 새로 생길 내 방에 꽂혀 있었다. 드디어 우리 자매들에게도 각자만의 공간이 생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공사 현장으로 거의 매일 출퇴근하다시피 하면서 집이 올라가는 과정을 하나하나 지켜보았다. ‘저기가 내 방이구나’ 아직 기초공사도 제대로 안 된 콘크리트 바닥이지만 가슴은 벌써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지루한 몇 달이 흐르는 동안 집은 조금씩 형체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따라라라 라~~~’ 개봉박두. 새 집으로 발을 들여놓던 그날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낡고 추레했던 주택은 깨끗하고 럭셔리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넓고 환한 거실, 세련된 싱크대와 식탁이 놓인 주방과 오매불망 기다리던 내 방까지. 흥분과 기대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엄마의 배려로 화장대와 침대, 오디오까지 들여놓은 방은 작은 성처럼 우아하고 안온했다. 





그 방에서 나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의 목록을 하나씩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음악 크게 틀기, 원 없이 책 읽기. 혼자 있고 싶을 때 방문 잠그기. 늘어지게 낮잠 자기. 침대에서 멍 때리기 등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은 채 혼자만의 고독을 즐겼다. 비디오 가게를 들락거리며 신작 영화와 보고 싶은 영화를 고를 때면 ‘이게 행복이구나’ 싶었다. 내게 남보다 조금 더 예민한 감수성이 있다면 그때 봤던 영화와 책 덕분이라 생각한다. 나만의 공간은 상상 이상으로 힘이 셌다.  


집을 짓고 나서 1층은 우리 가족이 쓰고 2층은 세를 놓았다. 서너 살의 어린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가 세입자로 들어왔다. 무척 귀여운 외모에다 붙임성까지 있는 아이는 틈만 나면 쪼르륵 1층으로 내려왔다. 우리는 그 아이에게 흠뻑 빠져 과자도 쥐어주고 같이 놀아주기도 했다. 엄마 등에 업혀 잠이 든 날도 있었다. 어느 날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근데 아줌마 방은 어디예요?’ 그러다가 곧바로 주방을 가리키며 해맑게 웃었다. ‘아, 맞다. 아줌마 방은 여기구나’ 자문자답을 하는 것도 우스운 데다 아줌마, 즉 엄마 방을 부엌이라고 말한 데에 웃음이 터졌다. 각자의 방이 있는 우리와 달리, 엄마는 아빠와 한 방을 쓰는 데다, 식구들의 밥을 챙기고 간식을 준비하는 엄마가 대부분 머무르는 공간은 부엌임에 틀림없었으므로 이 모습을 제법 오랜 시간 지켜본 아이 다운 결론이었다. 요즘말로 웃픈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화려했던 싱글 라이프는 짧고 강렬한 기억만 남긴 채 결혼과 함께 다시 사라졌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해도 공간을 공유하는 일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신혼 초의 부부싸움이 잦았던 건 습관과 생활방식,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 때문이었고 우리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싸웠다. 한 공간에 머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싸움은 더 치열했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줄 여유마저 없었는지 모른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둘 만의 공간마저도 사라졌다. 나는 아이와 찰흙반죽처럼 엉겨 붙어서 스물네 시간을 붙어 지냈다. 물리적 공간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심리적 공간마저도 온전히 내 차지가 될 수 없었다. 온몸으로 존재를 어필하는 작고 어린 생명체가 한시도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존재는 점차 희미해졌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틈만 나면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도망친 건 작은 테이블 하나만 한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라도 자유롭고 싶었다는 욕망 때문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버지니아 울프가 살았던 시대는 1920년대였다. 그녀는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예술가와 가난이 동일시되는 시대에 글을 쓰기 위해서는 경제적 안정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의 기본 욕구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매슬로우의 이론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생존의 욕구가 위협되는 상황에서 자아실현의 욕구는 남의 집 이야기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가난과 지위에 대한 통찰이 담긴 <자기만의 방>을 구상하기 위해 그녀는 어느 맑은 날 강둑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가 잔디밭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내 남자인 교구 관리자의 눈에 띄게 되었고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여자’는 그 길로 다녀서는 안 되는다는 룰을 어긴 것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었다. 여자이기 때문에 가난할 수밖에 없고, 여자라서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없는 세상에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각종 금기로 둘러싸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울프의 고심은 깊어졌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도대체 무얼 했기에 딸들에게 물려줄 게 아무것도 없을까’라며 분통을 터뜨린다. ‘남자들이 일하고 있을 때 콧잔등에 분을 바르고 있었을까. 상점 유리를 들여다보고 있었을까. 몬테카를로에서 일광욕을 하면서 으스대고 있었을까’ 아니다. 열 명의 아이를 낳고 기르며 보살피는 건 당연지사, 가족의 식사와 남편 시중까지 들어야 하는 시간을 상상해 보면 답은 금방 나온다. 



울프는 흥미로운 가정으로 여성이 처한 상황을 설명한다. 셰익스피어에게 그보다 재능이 뛰어난 누나나 여동생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한다.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책을 읽지 못하고 문법과 논리학을 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재능은 무슨 소용일까’ ‘십 대를 벗어나기 전에 양털 중개상의 아들과 결혼해 13명의 아들을 낳았겠지요’ 그녀가 묻고 답한다. 조소를 머금은 그녀의 말속에는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육아와 노동에 시달리며 노예처럼 살았다면 재능이 아무리 뛰어난 들 <리어왕>이나 <멕베스>를 쓸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여자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그녀가 주장하는 이유였다. 배고픈 예술가는 어불성설이며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고 정신의 자유가 보장된 후에라야 창의적인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예리하게 꿰뚫어 본 것이다. 잔혹한 여성사 속에서 억압받고 미개한 존재로 취급받던 여성의 역사를 규명한 그녀의 작품은 세상의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고 이는 경제적인 토대가 마련되지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임을 거듭 강조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을 집필한 지 100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 여성에 대한 시선이나 권리도 예전과는 달라졌다. 남성에게 귀속된 재산 취급을 받던 존재에서 독자적으로 일을 하고 경제적인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버지니아 울프, 제인 오스틴, 샬럿 브론테와 같은 여성작가들은 슬픔과 우울, 분노와 절망 속에서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덕분에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그들이 뿌린 씨앗을 자양분 삼아 읽고 쓰며 생각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사와 육아의 부담은 상당 부분 여성의 몫으로 남아 있다. 시지프스의 돌처럼 무한히 반복되는 가사 노동과 아이들의 요구에 반응해야 하는 여성의 입지는 창의력이 자라기엔 너무나 척박한 환경이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해서 제 앞가림을 할 줄 아는 나이가 되면서 엄마로서의 책임과 의무도 많이 가벼워졌다. 혼란스러운 시간을 통과하며 그래도 놓지 않은 게 있다는 글을 쓰는 일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사색이 필요하고, 사색을 위해서는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남몰래 작업실을 염원했던 이유다. 그런데 이 바람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졌다. 





새로 발령이 나면서 집과 직장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지는 바람에 자취방을 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자취방이라 불러도 좋고, 작업실이라 불러도 좋은 나만의 공간을 갖게 되었다. 상상했던 방식은 아니지만 글을 쓰기엔 충분한 공간이다. 나에게 주어진 공간 안에서 깨어있는 정신으로 더 나은 글을 쓰고 싶다. 아내이자 딸이자 엄마에서 자유로워져서 오로지 ‘나’ 에게만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나는 행운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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