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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May 17. 2023

내 마음은 실크

내가 어렸을 때 엄마가 아끼는 실크 블라우스가 있었다. 평소에는 잘 입지 않다가 모임이나 결혼식 등 격식을 차려야 할 때나 친구들과 모임이 있을 때면 꼭 이 블라우스를 입고 가셨다. 꽤 고가의 옷이었는지 엄마는 그 옷을 아기 다루듯 애지중지했다. 외출했다 돌아오면 옷걸이에 걸어서 장롱 한편에 보관했고 정기적으로 드라이클리닝을 했다. 한두 번 살짝 입었을 뿐 때가 거의 묻지 않았을 때도 엄마는 굳이 세탁소에 맡겼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그 시대의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엄마도 빠듯한 살림을 꾸려가지 위해서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았을 수 없었다. 웬만한 지출은 하지 않았고 옷이나 화장품도 거의 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크 블라우스만큼은 자주 드라이클리닝을 해서 보관했다. 그 이유에 대해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얘는 말이야. 태생이 실크라서 세탁기에 돌리면 완전히 못 쓰게 돼. 손으로 빨아도 마찬가지야.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해. 거친 면에 살짝 닿기만 해도 금방 올이 풀려버려. 간수하기 힘들고 세탁비가 많이 드는 게 흠이긴 하지만 부드러운 촉감이 살에 닿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비싼 만큼 옷맵시도 살고 말이야”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엄마의 모습 속에서 나는 엄마가 아닌 여자를 보았다.


엄마의 말처럼 실크는 곱고 매력적인 광택을 갖고 있으나 관리가 어렵다. 햇볕에 약해 쉽게 변색되고 물에 약해 세탁 시 줄어들고 변형된다. 내구성도 약해 타 소재에 비해 쉽게 찢어지기도 한다.


사람으로 인해 상처받고 사람 때문에 마음앓이를 할 때면 엄마가 애지중지하던 실크 블라우스 생각이 난다. 쉽게 상처받고 금방 망가지는 내 마음이 실크 블라우스를 닮아서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서 구겨지고 상처받은 내 마음이 안쓰럽고 속상했다.


작은 자극에도 쉽게 망가지는 실크보다 내구성이 좋고 질긴 옥스퍼드나, 구김이 잘 생기지 않는 폴리에스테르, 마찰에 강하고 구김이 쉽게 가지 않으며 광택까지 풍부한 나일론 같은 마음의 소유자가 되고 싶었다. 농담처럼 던진 말에도 상처받기 일쑤고, 타인의 말 한마디에 자존감이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리는 경험을 할 때면 상처가 된 말 그 자체보다 이로 인해 상처받은 나 자신 때문에 더 속이 상했다. 자신이 초라해 보이고 그때 바로 되받아 치지 못한 말이 떠오라 밤새 이불킥을 하기도 했다. 그 상황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쿨 한 척 하지만 정작 혼자 남겨지면 PTSD 환자처럼 그 장면을 반복적으로 떠올리며 수치심에 휩싸였다. 후회와 자책으로 속이 거북해져 소화제를 삼켜보지만 심리적인 소화불량을 소화제가 해결해 줄 리 만무했다. 성격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타고난 기질 또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기질의 노예가 되어 타고난 방식으로 대응하기 마련이다.


상처 준 사람이 있으면 나는 조용히 손절한다. 심지어 그 사람은 내가 자신을 손절한 사실조차 모른다. 대놓고 치는 손절이 아니라 나 혼자 마음의 경계 밖으로 그 사람을 멀찌감치 밀어내는 방식이라 그렇다. 하지만 ‘이 사람과는 여기까지가 한계구나’라고 마음을 먹고 나면 조금 쓸쓸해진다.


잠깐의 인연으로 알게 된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해 친해지지 못하고 헤어졌다.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 그 사람을 다시 만났다. 예전의 좋지 않은 기억은 물 탄 커피처럼 희석되어 새로 관계를 이어가게 되었다. 옛날에는 몰랐던 그 사람의 장점과 매력을 발견한 건 큰 기쁨이었다. 취향이 비슷한 부분도 있어서 대화가 술술 이어졌다. 게다가 한 번씩 뼈 때리는 농담이나 기발한 생각을 풀어놓을 때면 예전에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던 어느 날 평소처럼 대화가 오가 던 중 그 사람의 농담이  선을 넘는 일이 생겼다. 순간 내 마음은 빠르게 경직되었고 표정관리를 하느라 꽤 많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했다. 옛날에 친해지지 못한 이유도 미루어 생각해 보니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지나친 농담이 불쾌해서 그 자리에서 뭐라 했고 무안을 당했다 느꼈는지 그날 이후로 그 사람은 나를 피했다. 비슷한 지점에서 또다시 관계가 어긋났고 나는 다시 상처받았다. 이쯤 되면 이 사람과의 인연은 여기까지가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 때문에 만난 사람이니 그냥 무시하고 대충 넘어가거나 유머로 받아치면 그만인 것을 나는 왜 매번 상처받고 실망하는 것일까?


나라는 인간은 진정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라서 그렇다는 대답이 들려왔다. 피상적으로 오가는 대화나 수박 겉핥기식의 만남 속에는 진정성이 없고 진정성이 빠진 만남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서 그렇다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나 양보다는 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친구가 많지 않다. 상대방은 친하다고 여기지만 나는 전혀 아닌 경우도 꽤 있다. ‘친하다’는 개념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긴 해프닝이다. 하지만 친한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는 무척 깊다.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서로의 속을 터놓고 공유하면서 깊이 교감한다. 소수의 친구만 있어도 전혀 외롭지 않은 이유다. SNS에서 수많은 팔로우를 자랑하거나 스마트 폰 속의 친구 수를 가지고 사회성을 인정받고자 하는 사람을 이해하기 어렵다. 수많은 사람들과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는 건 물리적, 심리적으로 모두 불가능한 일이다. 그 많은 친구들 중에 위급할 때 나에게 뛰어올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최근에는 폴리에스테르와 레이온이 실크시장을 대체하고 있다. 관리가 까다로운 실크의 특성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원조 실크가 보여주는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광택감은 화학섬유가 따라가기 힘들다. 생각해 보니 실크 같은 마음이 나쁘기만 한 건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쉽게 상처받고 금방 망가질지언정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마음의 빛깔만은 언제까지고 유지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질기고 겉만 번지르한 화학섬유 같은 마음보다는 은은한 빛깔이 언제까지고 변치 않는 마음의 결을 가진 사람이고 싶다. 비록 소수에게 사랑받더라도 그 사랑의 밀도는 무척 높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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