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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Feb 02. 2018

<영화 와즈다>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 여자는 왜 자전거를 탈 수 없나요? -

*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작년 JTBC 문화 초대석 코너에 영화배우 송강호 씨가 출연했다. 손석희 앵커와의 대담 형식으로 진행된 코너에서 지난 1월 올해의 영화상에서 <밀정>으로 남우 주연상을 수상한 후의 소감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당시 그는 “흔히 영화 한 편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냐고 하지만 나는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과연 영화 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하이파 알 만수르’(Haifff Al-Mansour) 감독의 사우디 영화 <와즈다>는 그렇다고 말한다.


수많은 검정 운동화 속에서 도드라지는 보라색 끈이 달린 운동화를 신은 ‘와즈다’가 딴 짓을 했다는 이유로 야단맞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와즈다’ 가 겪을 험준한 학교생활, 나아가 사우디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고단함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회의기구(OIC)에 가입된 전 세계 57개국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국가이다. 여성이 혼자 외출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아서 45세 미만의 여성이 여행을 할 때는 남성 보호자의 허락이 필요하다. 병원 치료 시에도 남성 보호자의 서면 동의가 있어야 한다. 남성이 최대 4명까지 부인을 둘 수 있는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있으며 운전 금지, 직업 선택의 자유 제한 등 서구사회와 비교할 때 여성들의 인권이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여성인권과 관련해서 사우디가 자주 서구 사회의 공격 대상이 되곤 하는 이유다.


이처럼 차별이 만연한 사우디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여성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사우디에서 여성 감독이 사우디 최초로 만든 영화가 <와즈다>이다. ‘하이파 알 만수르’(Haifff Al-Mansour) 감독은 인권과 자유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우디 여성의 억압된 현실을 ‘와즈다’라는 열 살 소녀의 눈을 통해 고발한다.


영화는 고부 갈등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남편의 모습, 가부장제 하의 남아선호 사상,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이 대신 이루어주기를 기대하는 어머니의 모습 등 우리가 흔히 겪는 보편적인 삶의 문제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와즈다’를 낳다가 죽을 뻔한 엄마는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아들을 원하는 아빠는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고 하고 엄마는 이런 아빠에게 잘 보이려고 매일 아침 정성 들여 긴 머리를 손질한다. 다른 남자와 일 하는 걸 싫어하는 아빠 때문에 3시간이나 떨어진 곳에 일을 하러 가기도 한다. 평소 할 말은 하는 ‘와즈다’는 당돌한 행동으로 교장선생님의 눈 밖에 난지 오래다. 히잡을 쓰지 않고 등교를 하는가 하면 무리에서 홀로 튀는 신발을 신고, 멀리서 남자들이 보는데도 노는 것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와즈다’의 친구들은 매니큐어를 바르다 정학을 당하고 남자와 함께 있다가 경고장을 받는다.


‘와즈다’는 옆집에 사는 동갑내기 친구 ‘압둘라’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가 무척이나 부럽다. 하지만 엄마는 처녀막이 터진다는 이유로 자전거를 사 주지 않는다. 자전거가 너무나 갖고 싶었던 ‘와즈다’는 팔찌를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팔고, 연애편지를 전달해 준 대가로 돈을 챙기며 자전거를 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와즈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돈은 턱없이 부족하다. 때마침 1천 리알의 상금이 걸린 교내 코란 암송대회가 열린다. 자전거를 사기 위해 종교반에 들어간 ‘와즈다’는 잠시 성실한 모범생이 되기로 결심하고 열심히 코란 공부를 한다. 자전거를 사기 위해 코란을 외우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다. ‘와즈다’는 결국 대회에서 1등을 하고 모범생으로 거듭난 ‘와즈다’를 보며 흐뭇해하던 교장은 돈을 어디에 쓸 거냐고 묻는다. 자전거를 살 거라는 ‘와즈다’의 당돌한 말에 놀란 교장은 상금을 팔레스타인에 전액 기부하는 것으로 서둘러 대회를 마무리한다. 여자가 자전거를 타는 것은 정숙하지 못하다는 가르침과 함께, ‘와즈다’의 꿈은 물거품이 되어 날아가 버린다.


그 날 저녁 ‘와즈다’의 아빠는 엄마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결국 새 신부를 얻는다. 그것도 ‘와즈다’와 엄마가 살고 있는 자기 집 앞마당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올린다. 하지만 ‘와즈다’의 아빠가 진심으로 새 신부를 원한 건 아니었다. 사회적 상황이 본의 아니게 아내에게 상처를 주는 상황으로 몰고 갔고 그 속에서 남녀는 특정한 처신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아빠가 싫어하는 것은 결코 하지 않았던 엄마지만 그 날 엄마는 긴 머리를 자르고 나타난다. ‘와즈다’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초록색 자전거와 함께. 초록색 자전거는 아빠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려고 했던 빨간색 드레스를 포기한 대가였다. 더 이상 남편에게 의지하지 않겠다는 표현으로 머리를 자르고 나타난 엄마와 온갖 역경을 딛고 손에 넣은 자전거를 타고 세상 속으로 질주하는 ‘와즈다’의 모습에는 사우디 여성의 작은 희망이 담겨 있었다.


모래바람이 몰아치는 황량한 사막에서 하루하루가 우울한 나날이지만 영화는 결코 무겁거나 어둡지 않다. 어른들의 꾸지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는 명랑소녀 ‘와즈다’ 덕분이다. 하지만 사우디 최초의 여성 감독이, 사우디 최초의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험난하기만 했다. 주변의 협박과 생명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고, 공공장소에 남녀가 함께 있을 수 없다는 사우디 율법에 따라  차에 숨어서 모니터를 보고 무전기로 스태프들에게 연출 지시를 해야 했다. 그녀는 여성의 몸으로 '남성들과 어울려', '공공장소에서' '영화를 찍는' 관습에 어긋나는 엄청난 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하이파 알 만수르(Haifff Al-Mansour)’감독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와즈다’라는 열 살 소녀를 통해 표현하려고 희망과 메시지의 간절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감독의 바람대로 <와즈다>는 사우디 여성인권의 상징이자 희망이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열 살 소녀의 일상적 욕망이 세상을 바꾸기 위한 용기로 이어져 사우디 여성 인권문제의 출발선이 되었다.





실제로 이 영화가 나온 이듬해인 2013년 4월 사우디 정부는 여성도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율법을 고쳤다. 여성 감독이 만든 영화 한 편이 천년을 내려온 이슬람 율법에 칼을 대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사우디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영화관이 없고 여성에게 운전이 허용되지 않는 국가이다. 허가증 없이 여행도 어렵고, 입후보나 투표를 할 수도 없다. 학교에선 “여성의 목소리는 벗은 몸과 같아서 큰 소리를 내면 안 된다"라고 가르치고, 남자들이 보는 앞에서 노는 것을 수치로 여기도록 교육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파 알 만수르’(Haifff Al-Mansour) 감독은 다른 아랍국가가 아닌 사우디의 리야드에서 촬영을 감행함으로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영화 <와즈다>는 베니스영화제 3관왕 등 세계 유수 영화제 20개 부문을 석권함으로써 그 공을 인정받았다. 국내에서는 2014년 전주 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되었으며 1만 명 이상의 관객이 관람하였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말했다.


“사우디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여성, 특히 소녀들에게 자기 자신을 믿고 더 나은 미래를 꿈꾸도록 영감을 주고 싶어서 <와즈다>를 만들었다. 어려운 상황을 바꾸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배울 필요가 있는 진정한 가치이다”


어린 소녀의 작은 날갯짓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준 영화, 영화한 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입증해준 영화 <와즈다>는 그렇게 내 인생 영화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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