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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인 마음여행자 Feb 19. 2019

<박화영>

- 모두의 '엄마'가 되고 싶었던 소녀 -

영화 <똥파리>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 주었던 배우 ‘이 환’이 감독을 맡은 작품이라 관심이 갔다. 청소년의 현실을 가장 리얼하게 보여준다고 해서 한 번쯤은 봐야 할 것도 같았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바로 후회하고 말았다. 몇 번이나 ‘정지’ 버튼에 손이 갔지만 참고 영화를 마지막까지 봤다.     

영화 <박화영>은 불편하고, 거칠고, 세고, 그래서 무척이나 힘들었다  

  

시종일관 거친 욕과 폭행이 난무하는 이 영화는 가출 청소년들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주인공 ‘박화영’은 엄마에게 돈을 달라고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붓는가 하면 통장에 돈이 들어오지 않자 엄마 집을 찾아서 행패를 부리다 경찰과 실랑이가 붙는다. 자신을 저지하려는 경찰관에게 ‘어디를 만지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경찰관을 당황시키기도 한다. 담배를 문 채 교무실로 쳐들어가 당장 자퇴하겠다고 교사를 협박하는 무서운 10대,  혼자 살면서 또 다른 가출 청소년들의 ‘엄마’를 자처하며 그들을 챙기는 화영은 가출 청소년이다.    


화영의 집에는 대장격인 영재, 영재의 여자 친구 미정, 둘 사이에 끼어들어 사건을 일으키는 영악한 세진 등 여러 명의 아이들이 머물다 가지만 누구도 화영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뚱뚱하고 못생긴 화영을 필요할 때 이용할 뿐이다. 화영은 아이들에게 거처를 제공하고 라면을 끓여주고 사고를 치면 앞장서서 수습해 준다. 친구를 대신해서 맞아주거나 쌍욕으로 대응하며 ‘엄마’ 역할을 하지만 정작 존중받지 못하는 존재다. 엄마에게 외면받은 상처와 결핍을 친구들에게서 채워보려고 했지만 더 지독하고 잔인한 현실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예인 지망생 미정은 영재와 사귀며 무리 속에서 여왕 노릇을 한다. 그녀는 화영과 가장 친하게 지내면서도 우정과 이기심 사이에서 저울질하며 상황에 따라 태도가 돌변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폭력을 기반으로 권력을 잡은 영재와 계산적인 세진 등 아이들의 모습은 비단 영화 속 캐릭터만은 아닐 것이다.


‘난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절대 그러지 않는다’는 강한 부정이 사실은 긍정임을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화영, 미정, 세진, 영재의 모습 속에는 우리의 불편한 민낯이 자리하고 있었다.    


술집주인 협박하기, 원조교제 사기 등 각종 범죄 행위를 서슴지 않았던 미정과 영재는 결국 살인사건에 휘말리게 되지만 둘은 교묘히 빠져나간다. “네가 엄마잖아!”라는 한마디 말에 화영은 모든 죄를 자신이 뒤집어쓰기로 마음먹는다.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라며 호탕하게 외친 후 영재와 미정이 빠져나간 여관방에 홀로 남겨진 화영. 허탈한 웃음 속에는 친구의 죄를 대신해서라도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으려는 그녀의 외로움과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아이들의 세계 속에서도 남자는 ‘힘’, 여자는 ‘성’으로 권력을 쥐려고 하는 모습은 어른들의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먹고 먹히는 복잡한 먹이사슬 속에서 화영은 가장 아래에 위치한 피식자였다. 엄마에게 대들고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고 학교에서도 어깃장을 놓으며 기세 등등했지만 정작 영재 앞에서는 잡혀 온 어린 짐승처럼 흔들리는 눈빛으로 불안에 떨었다. 욕먹고 얻어맞으면서도 그의 눈 밖에 날까 전전 긍긍했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도록 프로그래밍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공존을 모색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기존 질서에서 탈주한 화영이었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어떤 새로운 대안도 없었다. 그녀에게 강요된 또 다른 질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만 했던 화영은 더 무섭고 거대한 폭력 앞에 내던져진 채 피투성이가 되었다.


감독의 카메라가 현실보다 더 리얼한 배우들의 연기를 따라가면서 영화의 리얼리티는 더 깊어진다. 가출팸 아이들의 영원한 ‘엄마’가 되기를 원했던 화영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자신과의 일은 까맣게 잊은 듯 무심하게 웃으며 담배를 피우는 미정과 재회하게 된다. 화려한 외모의 미정과 달리 초라한 입성의 화영은 노동의 현장에서 하루치의 삶을 간신히 이어가는 듯 지치고 외로워 보였다.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라는 화영의 말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귓전을 울렸다.  

   

영화를 끝까지 본 건 잘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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