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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꾸 Aug 20. 2020

특별한 고양이 '누룽지'

여행 읽기

 치앙마이의 숙소 '그린 타이거 하우스'의 입구에는 항상 갈색 고양이 한 마리가 문지기처럼 엎드려있었다.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가는 길목에도 외출해 돌아오는 길에도 항상 같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켰다.

 고양이 이름은 망고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누룽지라는 한국식 구수한 이름을 새로 지어주었다. 연한 갈색에 순하디 순한 고양이와 찰떡궁합으로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누룽지에게 찰싹 붙어 시간을 보냈다. 수영장에서 실컷 놀고 나와 차가운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털을 쓰다듬거나 한창 오후 햇살을 받으며 졸린 눈으로 잠을 청하고 있을 때 귀찮게 툭툭 건드려도 누룽지는 아이들을 피하지 않았다.


 사실 큰 딸아이는 원래 동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실 동물을 싫어했다. 그림 속 그것도 캐릭터화 되어있는 동물들이나 좋아라 했지 살아 움직이는 동물은 기겁을 하며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엄두도 못 내는 정도였다.   그랬던 아이가 누룽지에게 먼저 다가가고 털을 쓰다듬는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엄마! 털을 쓰다듬으니까 따뜻한 게 느낌이 참 좋아”.

아이는 이제 누룽지를 쓰다듬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숙소에 머무르는 내내 누룽지는 아이들과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하는 도중 작은 골목길에서 길고양이를 만났다. 어쩐지 아이는 약간은 긴장한 표정으로 고양이를 피해 걸었다. 누룽지와의 만남 이후로 동물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고양이가 여전히 무섭냐고 물었다.

“응. 쟤는 누룽지가 아니잖아. 누룽지가 보고 싶어, 엄마”


 내 눈엔 누룽지나 방금 지나간 갈색 고양이나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그냥 똑같은 고양이일 뿐이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누룽지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어떤 고양이도 대신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인 것 같았다.


 어떤 대상에게 마음을 주고 정성을 쏟으면 그것은 곧 나에게 유일무이한 소중한 것이 된다. 그것이 물건이든 혹은 살아있는 생명체이건 내 마음을 소비한 이상 수천 개의 의미로 가득 찬 대상으로 바뀐다.

 아이가 여행에서 만난 것은 단지 한 마리의 고양이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누룽지에 대한 아이의 기억은 동물을 만져본 첫 도전의 떨림, 손바닥 가득 느껴지던 따뜻한 온기, 변함없는 모습으로 맞아주던 그 반가움이란 기억의 조각들이 버무려져 그 작은 마음 한켠을 꽉 채우고 있었다.


 길들여진다는 것은 때론 지치고 성가실 때도 있다. 그래서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리라 마음을 먹어 본 적도 있다. 무언가에 연연해하지 않는 쿨내 진동하는 사람이 왠지 더 멋진 삶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온 마음을 내어주고 나 또한 상대에게 큰 의미가 되는 것만큼 인생의 귀한 가치가 또 있을까? 그래서 나는 바란다. 나도 아이들도 쿨한 사람보단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상처가 두려워 시작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온 마음을 미련 없이 다 쏟아낼 수 있는 사랑을 하기를. 아이가 누룽지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다 내어 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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