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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꾸 Aug 17. 2020

행복의 분배

여행 읽기

 아이의 엄마는 노점상이었다. 단속반의 호각소리가 들리면 한 손에는 찐 옥수수가 든 광주리를 또 한 손에는 아이를 들쳐 안고 달렸다. 그리고 5분 정도가 흘렀을까? 아이의 엄마는 도둑고양이 마냥 신경을 칼날 끝에 세워놓은 표정으로 조심스레 다시 그 자리에 돌아와 광주리를 내려놓았다. 그리곤 그녀는 다시 사람들의 무심한 발끝만 쳐다보며 멍하니 앉아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 앞을 오갔지만 그녀 앞에 놓인 광주리 속 옥수수에 관심을 두는 이는 없었다. 그 옆에서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가 놀고 있었다. 엄마의 눈에는 초점도 삶의 기운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줄곧 그 시선은 아이를 담고 있었다. 아이는 옆 벤치에 앉아있는 내게 다가와 장난을 쳤다. 그 해맑고 순수한 미소 너머로 아이 엄마의 고된 일상이 함께 보였다. 


 다시 호각소리가 들리자 그녀의 표정이 다시 긴장으로 얼어붙었다. 이번엔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데 시간이 좀 더 걸렸다. 다시 자리를 잡은 그녀는 또다시 생의 고달픔을 얼굴에 묻힌 채 초점 없이 앉아있었다.

 내가 앉아있던 20분 동안 광주리 속 옥수수는 여전히 그대로다. 그녀는 내 또래로 보였다. 그래서 자꾸만 눈이 갔다. 호치민 거리는 새해 행사로 휘황찬란한 불빛과 들뜬 사람들로 북적거렸지만 그녀는 그런 건 본인과 아무 상관도 없다는 표정으로 옥수수를 팔고 있었다. 


 살다 보면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 동네 뇌병변 아들을 둔 엄마가 매일 아들을 휠체어에 태우고 붕어빵을 팔러 나온다. 날이 추울 땐 겹겹이 두꺼운 담요들이 휠체어 속 아이를 감싸고 있었다. 나는 붕어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그 앞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단지 좋아하지 않는 붕어빵을 사지 않고 지나치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었다. 어려워도 최선을 다해 살아보겠다는 그들의 삶의 의지를 외면하는 것 같아 따뜻한 붕어빵 한 봉지를 품에 안고서야 그들에게 조금 덜 미안해졌다.

 온 동네가 들뜬 분위기로 가득 찬 크리스마스 저녁, 그날도 어김없이 그들은 작은 그들의 천막 속에서 붕어빵을 팔고 있었다. 누워있는 아들이 추울까 봐 엄마는 담요를 고쳐 덮어주고 있었다. 거리에 넘쳐나는 웃음과 따뜻한 기운들을 조금만 그들에게 가져다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내 가족이 아닌 타인의 행복을 간절히 소망해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저들에게도 크리스마스의 축복과 행복이 전해지기를. 성탄절  단 하루라도 평소보다 조금 더 따뜻한 날들이 되기를 바랐다.


 그때 그 마음처럼 지금 내 앞에 옥수수를 팔고 있는 아이와 엄마의 안녕을 바래 본다. 세상에 널리 퍼져있는 행복이 그들에게도 공평하게 분배되어 지기를.

 하지만 조금 뒤 무심한 호각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고 결국 그녀는 단속반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단속반에게 호되게 욕을 듣고 나서 원망스러운 눈빛을 허공에 날리며 아이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떴다. 그리곤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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