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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꾸 Aug 16. 2020

그곳엔 내 청춘이 있었다.

여행읽기

 에메랄드 빛 바다가 반짝였다. 큰 키의 야자수와 발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하얗고 고운 모래들, 쨍한 햇살과 푸른 하늘. 컴퓨터 배경화면에서나 보아왔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우린 피피섬에 왔다.


 피피섬은 태국의 작은 섬이다. 2003년 그 당시 태국 하면 푸켓이나 파타야 정도가 한국인에게 유명한 휴양지였다. 하지만 우린 여행지로 피피섬을 골랐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꽃미남 시절 찍었던 영화 ‘더 비치’에서 본 피피섬은 알 수 없는 힘으로 나를 그곳으로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매번 여행지 선정에는 이렇다 할 이유를 대기가 힘든 게 사실이다. 정말 “그냥”이 답이다.

 그리하여 이번에도 “그냥” 가고 싶어서 피피섬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했다. 하지만 잠시 며칠 머무른 푸켓에서 예상치 못하게 경비를 거의 탕진해버리는 바람에 하마터면 피피섬엔 발도 못 들여놓을 뻔했다. 생각보다 너무 쌌던 물가 때문에 소비 욕구가 폭발을 해버린 탓이다.


 우여곡절 끝에 피피에 도착했을 땐 우린 스쿠버다이빙할 비용만 달랑 남겨둔 대책 없는 빈털터리 여행자였다. 숙소도 구하지 못하고 무작정 스쿠버다이빙 센터로 갔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사무실에 짐을 풀고 앉아있으니 방금 막 바다에서 돌아왔는지 까맣게 그을려 짠 내를 풍기며 다이버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스쿠버 다이빙을 예약하고 싶다고 했다. 그중 한 명이 우리 예약을 도와주었고 숙소를 물어보았다.   우린 푸켓에서 비싼 해산물 요리를 먹으며 온갖 쇼를 보러 다니며 호화롭게 경비를 다 탕진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혹시 이 섬에서 젤 저렴한 숙소가 있으면 추천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다이버들이 우리를 힐끗 쳐다보며 웃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감사하게도 그들 덕분에 공짜 숙소에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마침 다이버 중 한 명이 이사를 하는데 짐을 나를 일손이 부족하다고 했다.  피피섬은 자동차도 없고 리어카나 자전거 정도가 이동수단의 전부였다. 일일이 살림들은 손으로 날라야 했던 참이었는데 그들 앞에 유익한 일꾼 세 명이 떡 하고 나타난 셈이었다.

 우리는 부지런히 이삿짐을 날라주었다. 이사할 곳은 원래 살던 곳과 그다지  멀지 않아 생각보다 이삿짐 아르바이트는 빨리 끝났다.


 집주인인 다이버 에릭은 수고했다며 그 귀한 신라면을 끓여주었다. 그동안 먹었던 태국 음식은 맛있었다. 내 입맛에는 착착 감기는 것이 그렇게 감칠 나고 맛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함께한 두 친구들은 ‘고수’라는 강한 향신료 때문에 강제적 단식을 거행하고 있는 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 눈에 나타난 신라면은 재난 상황에서 구호 물품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녀들은 그 빨간 국물이 마치 성수라도 되는 마냥 성스럽게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마셨다. 라면을 영접하고 난 두 친구의 얼굴에는 환희의 미소가 번졌다. 

 그 귀한 라면을 내어준 것도 고마운데 에릭은 새로 이사 간 집을 선뜻 우리 숙소로 내주었다. 본인은 근처 친구 집에서 자면 되니 며칠 동안은 그곳에서 편히 쉬라고 했다.

 가끔 여행에서 뜻하지 않은 타인의 호의나 친절을 받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동안 착하게 살아온 보상을 타국에서 이렇게 받는 거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착한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앞으로 받은 은혜를 갚으며 착하게 살라는 뜻이구나 하고 말이다. 어쨌든 덕은 베푼 만큼 쌓이고 또 쌓인 만큼 내놓으며 살아야 함은 순리인 것 같다. 


 이삿짐 아르바이트로 얻은 편안한 숙소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우리는 곧장 다이빙센터로 달려갔다. 교육을 마치고 우리가 탄 배는 용감하게 바다를 가르며 다이빙 포인트로 이동하였다.

 내 몸은 파도를 따라 흔들렸다. 엄청난 파도였다. 그리고 더 엄청난 멀미가 밀려왔다. 내 평생 그렇게 심한 멀미는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위가 발라당 뒤집어진 채 토사물을 쏟아 내보냈다. 다이빙이고 뭐고 배에서 내리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다이빙 포인트에 도착하자마자 뒤로 나자빠질 법한 묵직한 산소통을 등에 메고 시퍼런 바닷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바닷속은 파도가 조금 약하긴 했지만 그래도 울렁거림은 여전히 내 속을 자극했다.

 바닷속 깊숙이 들어갈수록 바다는 신비한 속살을 보여주었다. 형형색색의 산호들과 물고기 떼들, 파도에 춤추는 이름 모를 바다생물들까지 그야말로 별천지 세상이었다.

 하지만 감상도 잠시, 나는 뒤집어지려는 위를 애써 막느라 바닷속에서 식은땀이 다 날 정도였다. 토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에 본능적으로 호흡기에 손이 갔다. 계속 호흡기를 붙잡고 있는 내가 불안했는지 따라오던 다이버가 계속 괜찮냐는 수신호를 보냈다. 오케이라는 수신호로 답을 하려는 그 순간. 참고 있던 내 소화기관들이 역류성 반동을 일으키며 일을 내고야 말았다. 호흡기 사이로 어제 맛있게 먹었던 신라면의 잔해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순간 내 주변은 바닷속 장관이 펼쳐졌다. 온갖 물고기들이 쏟아지는 먹잇감에 떼를 지어 나를 둘러쌌다. 물고기들 사이에서도 신라면이 그렇게 인기 메뉴일 줄이야.. 그 덕에 뒤따라 오던 친구들은 유영을 하지 않고도 그 자리에서 온갖 이름 모를 물고기 떼 장관을 감상할 수 있었다. 

 50분가량을 나는 물고기들의 먹이를 뿌려주는 사육사가 되어 바닷속을 헤집고 다녔다. 배 위로 올라온 내 얼굴은 반쪽이 되어있었고 무거운 산소통만 내동댕이친 채 배 위에 쓰러졌다. 물고기들에게 내 속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주고 거기에다 영혼마저 나눠주고 나왔다. 

 기대했던 스쿠버 다이빙은 멀미 때문에 지옥을 맛보고 왔지만 평화로웠던 바닷속은 천국이었다. 천국에서 지옥을 맛보고 오다니..


 피피에서의 시간은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아름다운 바다는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아름다운 밤 밝은 달빛 아래에서 보던 불 쇼와 파티는 세상 걱정 따윈 감히 비집고 들어올 수도 없는 황홀함을 안겨주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여유로웠고 행복해 보였다. 마치 내일 따윈 없는 것처럼 오늘만 즐겁게 불태우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듯 보였다. 그곳에 있는 동안 우리도 그렇게 지냈다. 선생님이 없는 학교의 학생들처럼 모든 나사는 다 풀어진 듯한 그곳에서 진짜배기 자유와 젊음과 행복을 맛보았다. 


 그리고 일 년 뒤 피피섬에 쓰나미가 들이닥쳤다는 뉴스를 듣고 알 수 없는 상실감을 느꼈다. 내 추억 속의 파라다이스가 이제 정말 추억 속에서만 만날 수 있게 되어버린 것에 대한 착잡함이 밀려왔다.

 뉴스에서 보인 피피섬은 참담했다. 쓰나미는 그곳의 자연과 건물들만 휩쓸고 간 것이 아니라 거기 있던 사람들의 즐거움과 행복, 희망마저도 함께 앗아가 버린 듯했다. 

 20대 청춘의 상징과도 같았던 그곳, 변해버린 피피섬이었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젊음이고 자유이고 행복으로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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