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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꾸 Aug 15. 2020

푸른 새벽에 만난 부처-탁발 공양

여행 읽기

 푸른 새벽을 뚫고 거리로 나섰다. 며칠 동안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이불속에서 미적거리던 습관 때문인지 해가 없는 하늘을 보며 눈을 뜨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도 꼭 나가야겠다는 의지로 무거운 갑옷을 걸치듯 겉옷을 주워 입고 숙소를 나섰다.

 다른 날과 다르게 이렇게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이유는 바로 탁발 공양에 동참해보기 위해서이다. 탁발 공양은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승려들이 걸식을 통해 중생들에게 목숨을 의탁하는 것이라고 했다. 줄지어 걸어오는 백여 명이 넘는 승려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의식에 우리도 한 번은 함께 해보고 싶었다. 


 배낭에 있던 과자들과 캐러멜을 양손 가득 챙겨 숙소를 나섰다. 해가 뜨기 전 새벽의 공기는 시원하고 상쾌했다. 약 10분 정도 골목길을 걸어 나가니 큰 대로가 나왔다. 길 한 켠으로는 벌써 공양을 위해 사람들이 줄을 지어 앉아있었다. 우리도 그 줄 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간식거리 말고는 딱히 준비해 온 것이 없어 그곳에서 시주용 밥을 파는 아주머니에게 밥을 몇 개 구입한 뒤 바구니에 담았다.


 조금 있자 저 멀리서 주황색 승려복을 걸친 승려들이 줄을 지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작은 바구니 하나씩을 어깨에 메고 천천히 우리 앞을 지나갔다. 밥을 조금씩 떼어 그들의 바구니에 담았다. 어려 보이는 동자승도 종종 걸음으로 대열에 끼여 지나갔다. 그땐 재빨리 과자와 캐러멜을 밥보다 조금 더 담아주었다. 어디에 살던 신분이 무엇이든 그 나이에 달콤한 과자를 좋아하지 않을 어린이는 없을 것임을 알기에, 밥 한술 보다 캐러멜 한 알 까먹을 때 부처님의 자비를 더 크게 느낄 것 같은 그들의 개구진 표정때문에 동자승의 바구니에 한가득 달콤함을 채워 넣어 주었다. 


 라오스는 잘 사는 나라가 아니다. 이곳에 탁발 공양을 하러 나온 사람들도 수수한 차림새의 전형적인 서민층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많이 가졌건 적게 가졌건 자기가 가진 것의 일부를 당연히 나눔을 위해 내어놓았다. 비록 그 나눔이 거창하고 대단한 것은 아닐지라도 그들은 가진 것을 나눈다는 것이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삶을 살고 있었다.

 고요한 새벽, 침묵이 가득 찬 거리에서 사람들은 말없이 승려들의 바구니를 채워주며 행동하는 善을 실천했다. 시주를 받은 스님들 또한 그것들을 본인이 다 가지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 끼니 해결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남은 것으로 하루 한 끼를 때운다고 하였다.

 소박한 밥 한 덩이의 베풂이지만 이것은 나눔을 통해 또 다른 나눔을 실천하는 선업의 끈을 이어 주는 위대한 일이었다. 이른 새벽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기꺼이 가진 것을 떼내어 주기 위해 길 위에 무릎을 꿇고 있는 그 사람들의 얼굴에서 부처의 모습이 보였다. 천천히 고요하게 세상을 선으로 채워나가는 그들이야말로 살아있는 부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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