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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꾸 Aug 09. 2020

착한 사람은 세상 어디에든 숨어있다.

여행읽기

큰 눈의 젊은 릭샤왈라는 10분이 넘도록 우리를 따라왔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우리가 서면 그도 섰고 우리가 가면 그도 다시 우리 뒤를 따랐다. 


그동안 내가 만난 인도인들은 막무가내로 접근해서 온갖 그럴싸한 이야기들로 내 주머니의 돈을 노렸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한마디 말도 없이 그저 우리가 릭샤가 필요할 때까지 조용히 근처를 지켰다.

삼십 분 뒤 우리는 다시 메인 가트로 가야 했다. 그는 이제 이 주변에서의 우리 용무가 끝났음을 직감적으로 눈치챘는지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 하지만 릭샤를 탈 것인지, 어디를 갈 건지를 묻지 않았다. 

우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메인 가트 가 줄 수 있어요?”

메인가트라는 말에 청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얼마예요?”

그는 대답 대신 큰 눈만 꿈벅거리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우리의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아 10루피짜리 지폐 하나를 꺼내 보여줬다. 그랬더니 그제야 뜻을 알아차린 듯 손가락으로 두 개라는 표시를 보여줬다. 20루피라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너무 싼 금액에 의심이 들었지만 오래도록 우리를 말없이 따라다니며 손님을 귀찮지도 언짢지도 않게 품위 있는 호객행위를 한 그 마음이 고마워서 그냥 릭샤를 타기로 결정했다. 


바짝 마른 청년의 다리는 우리를 태운 뒤 릭샤 페달을 힘껏 밟으며 바라나시 도로를 쌩쌩 달렸다. 물이 빠지고 때가 꼬질꼬질한 청년의 잿빛 셔츠는 어느새 흥건한 땀으로 색이 짙어지고 있었다. 페달을 밟는 그의 발 뒤꿈치에 자꾸만 시선이 머물렀다. 많아봤자 스물두세 살 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그의 발이 견디고 있는 삶의 엄청난 무게가 보였다. 하얗고 딱딱해진 뒤꿈치가 더 이상은 못 참아 내겠다고 터지고 갈라졌다. 

마음이 쓰이고 미안했다. 땀으로 흥건히 젖은 그의 등에게, 페달을 밟는 앙상하고 거친 그의 발에게. 

인도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 "No problem"

온통 problem 투성이인 상황 속에서도 인도인들은 늘 아무 문제없다고 자신했다. 본인의지로는 도저히 변화시킬 수 없는 처지를 신에게 전부 의탁해버리는 한 마디.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희망이었다.

작은 릭샤 속에 꽉 찬 그의 인생도 희망으로 가득 찬 No problem 이기를 바랬다.


십 여분쯤 달려 메인 가트에 내린 후 잔돈이 없는 우리는 50루피를 건넸다.  청년은 잠시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우리에겐 아무 말도 없이 릭샤를 세워놓고 어딘가로 달려갔다. 

5분쯤 그 자리에서 기다린 우리는 북적거리는 인파 속에서 열심히 달려오는 청년의 모습을 보았다. 손에는 잔돈 뭉치를 꼭 쥔 채 그는 돌아왔다. 그리곤 약속한 대로 20루피 만을 요금으로 받고 정확히 30루피를 내어주었다. 

다른 릭샤를 탔더라면 그 정도 거리에 40루피는 족히 불렀을 것이다. 나는 그의 손에 10루피를 더 쥐어 주고 그냥 웃었다. 청년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수줍게 같이 웃어주었다.


 우리가 발걸음을 돌려 가자 그 청년도 릭샤에 다시 올랐다. 몇 걸음 내딛다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자전거 벨 한번 울리지 않고, 비키란 고함 한번 지르지 않고 조심조심 수많은 사람들 사이를 피해서 그 속을 빠져나가는 청년의 뒷모습이 보였다. 


인도인들이 가득 한 바라나시 거리에 유독 그 청년의 뒷모습만 오래오래 진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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