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다 똑같다.
지하철 오래 탈 일이 있어 책 한 권을 가지고 탔다. 민음북클럽에서 고른 <딸에 대하여>를 먼저 시작하기로 했다. 2017년에 나온 책이다. 예전에 이 책이 유행? 광고? 하던 게 생각난다. 그런데 그때는 워낙 바쁠 때라 이제야 읽었다. 그리고 후기는 2주 뒤인 지금 쓴다. 바로 썼으면 격앙되어 있었을 텐데 지금은 또 가라앉았다.
엄마와 딸, 딸과 엄마의 관계는 어떤 관계에 비유할 수가 없다. 8년 전인 17년도에 읽었더라면 '우리 집은 이 정도로 격렬하진 않은데.', '나는 안 그런데.', '우리 엄마는 안 그런데.'라고 하고 책을 덮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25년인 지금, 그린과 그린 엄마, 그린의 짝 레인, 요양원에 있는 젠을 보며 너무 얽혀서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엄마는 젠을 보며 자신을 투영하고, 딸이 투영되지 않기를 바란다. 많이 배우고 성공한 여자인 젠이 돌봐줄 가족 하나 없이 요양원에 있는 모습을 보며 내 딸에게 가족이 있어야 한다고 시달린다. 그 가족이란 건 남자와 결혼해서 애를 낳은 형태이다. 마치 그것만 있으면 미래를 보장받은 듯 군다. 그러면 엄마는 결혼을 안 해서, 자식이 없어서 이렇게 사는가? 아니다. 학교 교사까지 하던 사람이 요양사를 하는 건 '노동'쪽에서 문제를 찾아야 한다. 왜 아직도 노동해야 하는가, '돌봄 노동=여성의 일'이라는 틀 안에서 엄마는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고 있는 게 맞는가, 교사를 한 늙은 여자가 할 일이 왜 요양사 밖에 없는가. 거기서 찾아야 하지만 딸을 결혼의 틀로 밀어 넣으려 한다.
그러나 딸은 이미 결혼한 것처럼 살고 있다. 레인이 일을 하고 그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한다. 난 솔직히 남자랑 결혼했으면 그린이 그 정도 지지를 받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린은 강사 일을 하다 성소수자 동료들이 정체성을 이유로 해고되자 그 운동을 하느라 돈을 잘 못 번다. 그린에게 그 일은 남의 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곧 나에게 벌어질 일이다. 그러나 엄마는 이 일을 남의 일을 하느라 제 인생 못 챙기는 것으로 여긴다. 사실 사회 일이라는 게 남의 일이 없다. 당장의 내가 아니라고 넘어간 일이 결국 나에게까지 밀려온다. 성소수자만 아니면 될 것 같은가? 아니다 여자라 잘리거나 아예 안 뽑힐 것이다.
돈이라는 건 정말 큰 문제다. 엄마도 돈만 있으면 딸이 여자를 데려와 사는 꼴을 안 봐도 되고, 그린과 레인도 돈만 있으면 이 집에 안 들어와 살아도 된다. 우리 집도 돈만 있으면 안 봐도 되는 꼴을 많이 봤다.
엄마는 많이 배운 딸이 못마땅하다. 분명 못 배워서 억울한 일을 당하지 말라고 나보다 많이 가르쳤을 텐데 내 말을 안 들으면 너무 많이 배웠다는 말을 한다. 딸입장에서 정말 상처다. 여자가 많이 배워서 뭐 하냐의 ver.2 일뿐이다. 심지어 내 엄마가 하는 말은 착취하려는 남자가 하는 말과 또 다르다.
그나마 여기는 엄마 하나에 딸 하나여서 문제가 확장되지는 않는다. 여기 딸 하나가 더 낀다면. 엄마는 첫딸의 모든 문제가 결혼을 안 했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첫째 딸은 자기가 원하는 목표하는 삶에 도달하지 못한 화가 있다. 거기에는 남들이 결혼해서 재산을 불리는데 나는 못 그러는 화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언니는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하고 엄마는 언니가 결혼하고 싶어 저런다고 한다. 아.. 그냥 둘째 딸에게 얘기를 안전했으면 좋겠다. 심지어 첫째 딸이 저러니 둘째 딸도 저럴 것이라 또 속단하고 결혼얘기를 한다. 둘째 딸은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엄마도 결혼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결혼 안 한 사람이 남의 남자 탐내는 얘기를 하며 결국은 미혼자 욕으로 끝난다. 이게 강요가 아니라고? 돈이 많아 떨어져 살면 안들을 얘기일 것이다.
같이 살면 주기적으로 싸운다. 주로 엄마의 급발진, 주절주절 늘어놓는 타령이다. 사실 화를 내는 것은 상대가 화를 맞아도 될 때 낸다. 내가 화가 나는지의 여부가 아니다. 그래서 더 얄밉고 서럽다. 내가 만만하구나. 부모의 사랑은 위대하다며 가르치지만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자식의 사랑도 만만치 않구나이다. 남이라면 벌써 안 보고 살듯한데 이렇게 매여있다.
젠은 젠의 삶을 살았을 뿐이다. 엄마가 젠의 삶을 평가하는 것은 무례하다고 생각한다. 남 좋은 일 한다고 내 인생 못 챙긴 것처럼 여기고 싶겠지만 결혼을 해도 여자 수명이 남자보다 높다. 대충 7-8년 더 여자가 오래 사는데 연상을 만난다 치면 10년 정도는 여자 혼자 사는 거다. 남편한테 병수발 받을 확률은 낮다. 오히려 내가 아플 때 남편 밥해주고 청소해 줄 확률이 더 올라가겠지. 자식이 있어도 그 자식이 병수발 한다는 보장은 못한다. 평균 수명이 높아져 아흔의 나를 예순, 일흔의 자식이 돌본다..? 좀 많이 어려워 보인다. 젠의 말로도, 엄마도, 그린도, 레인도, 그 동료들도 다 그냥 자기 삶을 살다 정해진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노력해서 내 삶을 통제하고 싶겠지. 그렇지만 그건 없는 걸 좇는 것이다. 젠이 후원하던 사람보다 생판 남인 엄마의 보살핌 속에 돌아가신 것처럼.
사는 것이 너무 힘들겠지만 늙은 나를 애정과 친절로만 돌보는 젊은 사람 손에 죽어야지만 행복이라고 여기는 것을 내려놨으면 좋겠다. 제목이 딸에 대하여였지만 결국 엄마에 대한 것이었으므로 이런 결론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