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폐와 도움 사이에서
우리 집 베란다에는 도라지 넝쿨이 있었다. 도라지가 두세 뿌리었기에 타고 올라갈 막대는 하나만 꽂아 주었다. 나중에 보았을 때 한 뿌리만 그 막대를 타고 올라갔고, 나머지는 죽어버렸다. 두 뿌리가 약해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엄마가 말씀하시길, 원래 도라지 넝쿨은 남이 올라간 대는 타고 올라가지 않는다 하였다.
나는 도라지 넝쿨처럼 살고 싶었다. 내가 죽을지언정 남의 길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싫었고, 남이 나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싫었다. 내가 편하면 남이 그만큼 더 짊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아마도 어릴 적 경험에서 기인한 것 같았다. 내가 11살 때 엄마가 암 선고를 받으시고 가족 구성원이 엄마의 역할을 나눠지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다른 구성원이 나에게 자신의 몫을 또 미루면 벅찼다. 물리적인 것도 그렇지만 다른 구성원의 태도에서 더 두려움을 느꼈던 것 같다. 엄마의 시집 식구들은 남보다도 못했고, 아빠는 자신의 배우자가 아픈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기보다 아픈 배우자를 둔 자신을 더 안타까워하는 듯했다. 남에게 기댔을 때 겪을 수 있는 부정적인 것들을 절실하게 깨달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내 힘듦은 나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나는 사람이었다. 사람인지라 결국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했다. 그것도 아주 많은 사람의 시간을 빼앗고, 손을 잡고 일어났으며 심지어는 그들의 품에 안겼다. 좋았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속도 없이 좋았고, 훨씬 빨리, 훨씬 쉽게 딛고 일어날 수 있었다. 내가 기댔을 때 싫어할 거라는 확신이 무너졌고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과 함께 할 때의 힘을 처음 느꼈다.
더 이상 도라지 넝쿨을 부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같은 기둥을 감고 올라간다 해서 같이 죽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이 사람임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