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백수

근데 학위를 곁들인

by 쏘녕

휴학을 오래한 채 수험 생활을 했고, 결국 실패 후 복학했고, 졸업했고, 일을 하다가 대학원에 갔고, 대학원을 졸업한 백수가 되어 돌아왔다. 이상하게 그때와 같은 기분이다. 혼자 있을 땐 글을 쓰고 싶어 지는데 손으로 쓰는 일기장은 이젠 손이 아파 가끔 쓰고, 타자로 쓰고 싶은데 파일로만 남겨두기는 싫으며 그렇다고 블로그에다 쓰자니 누가 볼까 무섭기도 하고.


날 봐줘. 아냐 날 보지 마. 봐줘. 보는데 몰라봐줘.


돌아오니 8년 전의 글과 작가신청 거절이 보였다. 용하시네요. 저는 그때 작가 신청 거절을 당한 이후론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키보드를 산 김에 신나서 타자를 쳐보고 있지만 얼마나 일기를 쓸지 모르겠어요.


8년 전과 별로 달라져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그때와 확실히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나를 그리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에 대한 기대가 스스로 컸고, 그러다 보니 내 눈에 가장 좋아 보이는 걸 갖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걸 가질 능력이 안된다는 걸 인정했을 때 하늘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좀 더 맞는 방향으로 찾아간 기분이다. 그래, 학교 가서 처음으로 한 선택이 나와 꼭 맞는 게 더 행운인 일이지.


시험을 그만두고 겪는 모든 일들이 시험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받는 형벌 같았다. 그래서 취업준비도 늦어짐... 물론 남들이 보기에 배가 불러서, 비빌언덕이 있어서 저렇다고 할 수 있겠지만 난 그 모든 걸 직면하기 어려웠다. 이만하면 착하게 산 거 같은데, 이만하면 열심히 산 거 같은데 그거치고 너무 손에 쥔 게 없었다. 그래도 학점을 챙기고, '아, 나 이대로면 동아리 한 번 못해보고 대학을 졸업하겠네' 싶어서 사실은 1학년 때 들고 싶었던 동아리 생활도 해봤고, 외부 알바는 영 기회가 닿질 않아서 학교 안에서 교내 근로도 해서 돈도 벌어봤다. 뭐야 생각보다 노력 많이 했잖아?


그렇게 졸업하고 일을 구하려는데 영 합격이 되질 않았다. 자소서 첨삭을 이리저리 받아보던 중, 이만하면 다 좋은데 경력이 없는 게 문제 같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인턴도 인턴 경력 있는 사람을 뽑던 걸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그분께 업계 관련 회사에서 알바라도 해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알바는 서비스직 즉, 카페 알바, 학원알바, 빵집 알바 정도만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9 to 6로 4대 보험이 있는 알바가 있다고요?? 얼마나 세상 물정 모르고 있었던가. 그래서 바로 알바를 찾고 이력서를 넣었다. 빈칸을 어떻게든 메꿔보려고 근로했던 것도 쓰고 자격증도 써보고...


생각보다 빨리 일자리가 구해졌다. 이렇게 쉽다고..? 아니나 다를까 남초의 성희롱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뭐 괴롭힘이냐 할 수 있을 정도의 선을 타는 성희롱. 위염과 뭐 각종 스트레스성 질병에 걸리고 당연히 취준은 알바 전보다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알바 시작하자마자 대기업에 서류가 붙는 걸 보고 이건 경력 없어도 뽑혔던 건데.. 싶으면서.. 면접 때 다른 사람들은 유사 경력이라도 말하는데 난 말 못 한 것도 맘에 걸리는 이상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여차저차한 일로 쨍그랑 쨍그랑하여 나오게 되었고 더 좋은 곳으로 가게 되었다.


사람은 낯선 행복보다 익숙한 불행을 선택한다고 했던가. 난 나쁜 일이 있을 때마다 방향을 틀었다. 그래서 난 결정? 대학원행. 어렸을 때부터 돈 없으니 대학교까지만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고 나도 뭐 대학원까지 갈 생각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빨리 자리를 잡아 익숙한 일로 매너리즘에 빠져 사는 게 내 꿈이었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알량하게 최저시급으로 모은 돈으로 대학원을 가게 된다. 왜냐면, 난 대학원은 대단히 창조적인 일을 하는 곳이라 생각해서 기피했는데 석사까지는 테크니션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대학원을 지원했다. 모교랑 다른 두 곳. 메이저 시험 like 수능, 토익 등등만 치던 나는 이렇게 정보가 없는 시험이 있나 싶었다. 대학원 문화는 너무 폐쇄적이어서 거기 있는 사람만이 그곳의 분위기를 알았다. 그렇지만 내 주변에 대학원을 갈만한 사람은 이미 다 가버렸고 카페와 유튜브만이 내 선생님. 면접 가서 문제를 풀 수 있을까?? 여기는 정량면접만 본다는데 진짜 인성면접 준비 안 해도 되나? 이런 걱정들을 안고 가고 있었다. 심지어 교수님들께 메일 보내기에 좀 늦은 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이르진 않은 건가..? 암튼. 셀털이 걱정되니 다 생략하고, 난 세 곳 모두 붙는다. 그래서 가장 연구하고 싶던 한 곳으로 1월부터 출근.


나중에 보니 다들 2,3월에 들어오거나 중간에 휴가도 즐기고 들어오던데 나는 아이구, 감사합니다~하고 냅다 출근했다. 그리고 이상한 사수를 만나 3학기를 고생한다. 대단했지.. 내 동기는 결국 나갔고 난 여길 나가고 싶지 않았다. 연구주제도 맘에 들었고 다른 곳 갔다가 더 이상한 사람 안 만난단 보장도 없고 교수님이 이상한 곳은 더 힘들다던데 우리 교수님은 괜찮으니 내가 여길 나가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난 내 걸 지키며 버텼고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인 걸 교수님까지 모두 알게 되면서 그렇게 무사히 졸업을 하게 된다. 지금이야 이렇게 퉁치지만 마음을 다스리고자 필사를 했다. 기가 막히게 그 사람이 졸업하면서 내 필사도 끊겼다.


논문 쓰자고 두 달이나 더 잡혀있었는데 어째 나만 급하고 교수님은 급하지가 않으셨다. 다른 연구는 안 그러시면서 이 연구는 왜.. 암튼 논문도 안 나오고 취업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은 어사무사한 상태로 졸업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멘털 케어하며 취준을 하고 있다.


아 기네.... 누가 여기까지 읽어줄까? 나나 내 인생이니 이렇게 길게 쓰고 있지. 지난 시즌에 대한 간추린 요약정도로 봐줬으면 좋겠다. 아니 사실 누가 봐주기보다 내가 풀어내는 게 중요해서 쓴 거다. 글은 약간 나만의 살풀이 같은 것이므로.


생각보다 일기를 밤에 쓰는 것은 어렵다. 몸에 힘이 안 들어가고 복기하는 것도 고통스러우니. 언제 또 브런치에 들어와 글을 쓸지 모르겠으나 좋은 로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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