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공 수업을 듣기 시작한 건 지난해 4월이다. 못 이기는 척 등록했지만 사실 목공은 내가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꿈꾸던 일이었다. 지금은 기초반, 중급반을 거쳐 전문가반의 마지막 한 달을 남겨두고 있다. 5개월 동안 나는 무척 열심히 내 할 일을 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겉으로는) 흥미를 표현하지도 않았고, 키우지도 않았다. 딱 시키는 대로 했다. 시키는 대로 자르고 파내고 끼우고 나사를 조이고 오일을 칠했다. 결과는 무척 좋아 보였다. 흰 배경에서 사진도 찍었다. 솔직히 배움 자체는 무척 흥미롭다. 그것이 나무를 다루는 일이라 더욱 좋았다. 그냥 좋다는 표현보다 톱니가 딱 들어맞아 약간의 틈도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크기에 맞게 자르고 다듬고 끼워 맞추는 것에 아주 적합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진작에 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울 만큼. 그런데 그곳의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잘 해낸다는 게 약간 걸리긴 하지만.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았지만 뛰어나지 못할까 봐 걱정인 것이다. 뛰어나지 못하면 팔지 못하게 되고, 팔지 못하면 단지 비싸고 힘든 취미로만 존재할 테니까 말이다. 내가 너무 진지한가. 또 걱정이 시작된 것일까. 지금 이 글은 어떤 목적을 가져야 하는 건가. 아, 이건 아니다. 에세이는 교훈을 주려는 목적으로 글을 남기지 않는다. 단지 내 감정을 글로 옮기는 것만으로 족하다. 나는 왜 이런 설득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걸까.
취미가 인생을 바꿔주진 못한다. 취미가 남들보다 뛰어나다면 몰라도. 하지만 부족한 자존감은 채워줄 수 있지 않은가. 지금은 비록 끝이 났지만, 나는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까지 스케줄을 목공 수업이라 적어두었다. 그리고 자존감 수업이라고 느꼈다. 너무 많이 언급되어서 지금은 누군가가 대화 주제로 꺼내기에도 부끄러운 그 자존감 수업 말이다. 그 책을 읽진 않았지만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자존감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나씩 성취해나가며 스스로 키워내는 것이란 메시지를 녹여내지 않았을까. 일주일 중 단 하루 그것도 3시간뿐이지만 그 시간만은 무엇을 할지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남은 원고를 어떻게 쓸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어쩌면 이런 시간이 쌓여서 일주일 내내 걱정 없이 지낼 수도 있겠단 생각을 방금 했다. 쓰다 보니 생각이 넓어진 셈이다. 그냥 두서없이 쓰는 것도 썩 괜찮은 일인 것 같다. 내가 돈을 받고 쓰는 원고에서도 두서없이 휘갈겨 쓰더라도 돈을 줄 청탁자가 있길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