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모든 미련을 휴지통에 넣고 완전 삭제시켜버렸다. 지메일에는 2015년부터 지금까지(2015년 이전 메일들은 한 번 정리를 한 것 같다)의 일일 업무보고서가 남아 있었다. 가끔 내 존재가 의심스러울 때 보곤 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사실 내 업적들이 남은 것 같아서 지우지 못했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애쓰며 일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남겨두고 싶었던 것이다. 미련을 버리기로 했다. 있어봤자 쓰지도 못하는 것, 메모리만 차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비운 것은 메일이 아니라 내 집착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주소록도 함께 정리를 했다. 지난 5년간 한 번도 연락하지 않은 번호들은 모조리 지워버렸다. 그러고 나니까 다 합쳐서 100개의 전화번호만이 내 아이폰 주소록에 남게 되었다. 직장생활 중에는 어떻게든 연락할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을 최대한 열어 두었다면 지금은 관계가 심플해졌다. 지금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연락처를 저장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남은 전화번호에는 내가 가입되어 있는 보험회사, 카드사 등의 전화번호도 포함되어 있으니 100명 이하의 사람과의 여지를 남겨둔 것이다. 여기에 연락을 그래도 안 하는 사람이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따지면 50명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남은 게 아닌가 싶다.
왜 우리는 관계를 묵혀두는 것일까. 글쎄 처음부터 묵혀두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진짜 언젠가 다시 연락을 할 것만 같았다. 귀찮기도 했다. 일일이 고르고 지우고 고치고 할 여유가 없었다. 생각보다 훨씬 시간이 많이 드는 일 아닌가. 과감하게 자르기 힘든 것이 이 관계, 전화번호인 것 같다. 그래서 뭐 지웠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맨날 같은 사람들과만 연락을 할 것이고, 남겨놓은 사람들 중에서도 또 연락을 안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럼 내년 이맘때에는 저장된 전화번호는 또 반으로 줄지도 모른다. 인간관계가 좁다 또는 넓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로 단정 지어 말하는 것은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건 지우지 않아도 되는 이유에 어울리는 것 같긴 하지만, 전화번호를 지웠다고 관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관계는 과거에 남겨놓은 것뿐이다.
별 느낌 없을 줄 알았는데 지우고 나니까 뭐라도 써야 할 것 같아서. 지우고 난 직후의 느낌을 적어 봤는데 적고 보니 참 별것 없다. 그저 몇 문장으로 끝나버렸다. 안 적으면 이 몇 문장도 없어질 테니까 적어보았다고 나를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