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벽을 보는 일이 잦았다

by minmin


잘못을 하면 엄마처럼 대화를 하는 대신 아빠는 벽을 보게 했다. 하얀 벽일 때도 있고, 초록이나 노란 벽일 때도 있었다. 아마도 똑같은 색이 주는 단조로움을 피하고자 했던 아빠의 의도를 짐작해 보지만, 단지 잘못을 저지른 장소와 관련이 깊을 뿐이었다. 실제로도 흰색이든 초록이든 노랑이든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인 건 변함이 없었다.


어느 시골집 골목에서 까치집 같던 내 머리카락을 놀려대는 동생의 허벅지를 힘껏 차버렸다. 동생은 다리를 부여잡고 땅바닥을 뒹굴었다. 아빠는 엄한 얼굴로 내게 이유를 물었다. ‘나 진짜 많이 참았어. 쟤가 일주일째 내 머리 가지고 놀렸단 말이야. 진짜 꼴 보기 싫어. 그리고 제일 안 아픈데 때린 거야. 나는 잘못 없어’라고 이야기했다. 기억하기로는 또박또박 당당하게 말하진 못했던 것 같다. 일단 아빠의 얼굴이 무서웠고, 그래서 울먹거렸고, 몇몇 단어들은 훌쩍 콧속으로 콧물과 함께 들어가 버리기도 했다. 아빠는 별 말 않고 그 자리에서 남의 집 담벼락을 보게 했다. 벽은 시멘트가 덕지덕지 발라진 채로 말라 있었다. 또 군데군데 금이 가고 부서져 있었다. 10분쯤 지났을까, 벽의 요철과 금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을 더 크게 뜨자 하나로 연결되어 강이 되기도 했고, 가늘게 뜨자 미운 동생의 얼굴이 되기도 했다. 벽을 보는 내내 눈이 가늘어졌다 커졌다를 반복했다. 30분이 지나자 벽 전체는 하나의 도시가 되어 있었다. 더 보고 싶었지만 아빠는 나를 끌고 친척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이미 동생은 마당에서 친척 동생들과 모래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눈을 쭉 찢어 동생을 아래로 깔아 보았다. 그리고 동생이 만들어 놓은 모래집을 밟아버렸다. 혼날 것이 두려워 냉큼 아빠를 따라 마루로 올라갔다. 반바지 아래로 보이는 동생의 허벅지는 벌겋게 부어 있었다.


그 뒤로 벽을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마치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불규칙한 요철 속에 숨겨져 있던 것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어떤 날은 해의 방향이 바뀌더니 찾아놓은 그림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면에 색이 입혀지기도 했다. 아무것도 없던 하얀 벽이 아뜰리에가 되고 미술관이 되었다. 이상한 경험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엄마는 나에게 스케치북과 물감을 선물했다. 혼자 하루종일 벽만 쳐다보고 있으니까 뭐라도 하라며 던져준 것 같았다. 엄마의 바람대로 벽을 보는 대신 스케치북을 펼쳤다. 그리고 벽에게 하던 대로 5분, 10분, … 뭔가 떠오를 때까지 쳐다봤다.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옆에서 날 기다리는 엄마를 보니 뭔가 그려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기 시작했다. 뭘 그리지? 뭘 완성해야 하지? 조급해졌다. 연필을 들었다 내려놓았다를 반복했다. 결국 스케치북을 닫아버렸다. 일주일째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는 나에게 엄마는 못 그려도 된다며 그냥 생각나는 걸 그려보라고 했다. 4절 크기가 너무 크면 반을 접어보자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라고 말했다. 스케치북은 어려웠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시도해 봤지만, 물감은 쓰지도 못하고 연필로 연하게 낙서만 조금 하다가 스무 장 남짓의 스케치북의 쓸모는 끝나버렸다. 아마 그림엔 소질이 없는 아이라고 엄마는 생각했을 것이다.


한참 시간이 지나 엄마의 스케치북 압박이 사라질 무렵, 나는 물감을 묻힌 붓을 들고 벽 앞에 섰다. 보이는 것들을 따라 그리기 시작했다. 선과 선이 만나 면이 생겼고, 면과 면이 만나 꽃이 되었다. 고양이가 되었다. 물고기가 되었다. 벽이 감춰 두었던 그림이 세상에 드러나자 기뻤고 두려웠다. 그제야 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왜 그랬을까. 혼날 것이 걱정되었다. 외출하고 들어오신 엄마는 눈이 동그래져 날 쳐다봤다. 그리고 나에게만 보이던 세계에 ‘풋’ 하고 웃어주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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