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멈추면 나는 공허해진다. 일 사이 공백은 내가 뭐하던 사람이었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예전 같았으면 뭐라도 읽고 썼겠지만, 지금은 에디터였다는 단어만 떠오를 뿐 전혀 에디터의 행위가 생각나지 않는다. 특히 혼자 있을 땐 견딜 수 없을 만큼 불안하다. 불안의 전조는 한 가지 행동을 지속하지 못하고 분 단위로 담배를 무는 행동, 뭐든 입에 넣으려는 습관에서 잘 나타난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한 가지 주제를 깊이 있게 사고하지 못하는 것으로도 표출된다. 이런 불안 증상은 누군가가 나타나기 전까지 지속되며, 빠져나오려고 노력하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쓰고 싶은데, 타이핑을 멈추고 싶지 않은데, 그러지 못하는 것에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는 전혀 생산적이지 못하다. 나는 지금 무감각한 사람일 뿐이다.
무감각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늘도 카페를 찾았다. 밤을 꼴딱 새우며 마무리한 원고를 보내고 해가 떠 있는 지금, 잠드는 게 싫다. 잠이 들면 불안은 없겠지만 오늘이 사라진다. 오후가 되면 아이가 오고 아내가 오고 집은 내가 해야 하는 역할들로 가득해진다. 나는 나 말고 가족의 구성원으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런 시간은 결코 원할 때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쉽게 찾아오지 않는 지금-당장이라도 누우면 정신을 잃고 잠에 빠져버리겠지만, 써야 하는 원고가 없고, 아이도 아내도 없이 혼자 존재하며,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낮 시간이 소중하다. 물론 밤에도 혼자일 수는 있지만, 밤은 더욱 빠르게 무감각에 잠식되어 버린다. 어쨌든 지금 나는 이 시간을 이용해 뭐든 써야 한다. 뭐든 남겨야만 한다. 그게 쓸모가 있든 없든 쏟아내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지금 내가 쏟아내고 있는 생각, 글은 모두 내 뇌가 만들어낸 배설물이라는 걸 고백해버린 것 같다. 돈을 받고 쓴 글들에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 이유, 이런 무감각한 사람이 된 이유가 이와 같다. 멋지게 포장하려고 애쓴 흔적만 남은 배설물. 예전엔 그래도 부족하지만 이슈를 꽤 잘 다뤄 낸 결실로 보았지만, 지금은 그저 배설물에 불과하다고 느낀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최근 청탁 원고량을 3분의 2로 줄였다. 가만 두어도 끊길 수도 있는 청탁 원고를 왜 줄이려 했을까. 프리랜서로서는 치명적이지 않은가. 언제 일거리가 사라질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되려 거절한다는 것은 다음을 기약하기 힘든 행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더 이상 청탁자의 기획에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번 청탁 원고의 주제에 불만을 갖게 되었다. '왜 이런 걸 쓰지?', '왜 이런 걸 여기에 실으려 할까?', '왜 이런 흐름을 원하는 걸까?'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이런 의심을 품고는 억지로 논리를 끼워 맞추기 바빴고, 쓰다 보니 내가 쓰는 것인지, 서치한 자료에 있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훔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까지 이른 것이다. 내 원고에 나는 없고 다른 사람만 존재했다. 양심상 더 이상 이런 원고를 만들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필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이렇게 합리화하고 있는 것조차 창피하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그걸 나도 알고 싶다. 차라리 다른 사람이 알려줬으면 좋겠다. 누군가 생애 길잡이가 되어 다음 단계를 말해주길 바란다. 아니 나를 이끌어주길 바란다. 회사에서 직장 상사가 나를 이끌어주듯 영향력 큰 누군가가 나를 데리고 앞으로 나아가 주길 바르는 것이다. 나는 지금 전혀 능동적이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