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방일지_1편.결핍_“허기를 안고 걷는 삶”

나의 해방일지_미정과 현아

by 다정하게

말라죽지 않기 위해 ‘당신’을 상상한 미정. 사랑으로 폭발하길 원하는 현아.
결핍은 때로, 살아 있음의 가장 인간적인 증거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속 인물들은 모두 결핍을 품고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렇다. 결핍은 누구에게나 있고, 누구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염미정은 말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고, 긴 긴 시간 이렇게 보내다간 말라죽을 것 같아서 당신을 생각해 낸 거예요.”

이 대사는 단순한 외로움을 넘어서, 존재로서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준다.
미정은 고단하고 무미건조한 현실 속에서 ‘당신’이라는 허상의 인물을 만들어낸다. 만나지도 않은 누군가를 마음속에 띄워두고, 그를 통해 하루를 견딘다. 말라죽지 않기 위해.


같은 결핍을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는 인물, 지현아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갈망하다가 뒈질 거야. 사랑을 줘, 나도 줄게. 더 줘, 나도 더 줄게.
그냥 사랑만 줘. 배고파, 더 줘, 더 더 더. 세상 사랑을 다 쓸어 먹어도 안 채워질 거다.
너는 나처럼 갈구하지 마. 다 줘, 전사처럼 다 줘. 그냥 사랑으로 폭발해 버려.”

현아는 겉으로는 자유롭고 대담하다. 수많은 연애를 경험했고, 그 이야기는 늘 친구들의 관심거리다.하지만 그 안에는 끊임없는 갈망과 자기혐오가 공존한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무너뜨리거나 도망치는 그녀는, 안정으로 들어갈 문턱마다 기가 막히게 비껴간다. 마치 일부러 망쳐버리는 사람처럼.

매일 같은 곳에 무미건조하게 출근하는 미정과 어디든 떠도는 듯한 현아는 겉보기엔 다르다. 하지만 현아는 지금의 남자친구가 있어도, 과거의 누군가가 자신을 필요로 하면 망설임 없이 달려간다. 감정에 충실하고, 표현에 거리낌이 없다.

그런 현아를 보며 미정은 말한다.
“비슷해, 둘 다 쎄, 둘 다 거칠고 투명해.”

쎄고, 거칠고, 투명하다는 말은 결핍을 무기로 바꾸는 사람들의 특징일지도 모른다. 감정을 숨기지 않되, 쉽게 기대지도 않는 사람들. 꿋꿋하지만, 그래서 더 외로운 사람들.

결핍은 관계를 더 갈망하게 만든다. 그러나 동시에 관계를 꼬이게도 만든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결국 사랑이 아닌 방식으로 그것을 표현하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 모든 것을 걸고 전사처럼 다 주겠다던 그 마음은, 어느 날엔 폭발처럼 상대를 덮치기도 한다. 결핍은 불편하고,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그것을 없애려 애쓰는 대신, 감추지 않고 직면할 때, 비로소 진짜 관계와 삶이 시작된다.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 부족한 채로 살아간다.

그 부족함을 지우려 하지 않고 품고 간다면, 그것은 나를 망가뜨리는 무기가 아니라 나를 설명하는 방식이 된다. 가장 인간적인 상태는 완전함이 아니라, 아직도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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