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는 세상
‘그들이 사는 세상’은 내가 스무 살이었을 때 처음 본 드라마다.
세상에 궁금한 것도 많고, 용기가 넘치던 그 시절, 이 드라마는 내 시야를 넓혀주었다. 시간이 흐르고, 이따금 다시 보게 될 때마다 같은 장면이 다르게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정지오와 주준영의 이별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 짧게 사귀었다가, 방송국에서 다시 연애를 시작한다. 그러다 정지오가 갑작스럽게 이별을 고한다. 그 말에 주준영은 매달리지 않고, 이해할 수 없음에도 최대한 받아들이려 한다. 스무 살의 나는 그 장면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삼십을 지나 다시 보았을 때, 그가 그녀를 존중했기에 떠날 수 있었던 선택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정지오가 이별을 결심한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그중 핵심은 ‘수준 차이’였다.
두 사람 모두 드라마 감독이었지만, 시작점이 달랐다.
주준영은 재밌어서 감독이 되었고, 정지오는 돈을 벌기 위해 감독이 되었다.
정지오의 삶은 늘 팍팍했다. 월급을 받으면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드려야 했고, 어머니는 농사에 집안일까지 감당하며, 아버지에게 늘 구박을 받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지오는 늘 화가 났고, 종종 집을 박차고 나오기도 했다.그때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 아버지가 나를 너무 좋아해서 그래.” 그 말이 어릴 땐 자기위로처럼 들렸다.
하지만 다시 보면, 그건 ‘서툰 사랑의 방식’이었다.
정지오가 혼란과 방황에 휩싸였을 때, 어머니는 또 이런 말을 해준다.
“나이를 먹으면 별거가 별게 아니게 돼.”
그리고 이어지는 정지오의 독백.
“모든 것이 별거인 나는 버겁다.”
그 말이 내게 깊이 와닿았다. 그 시절의 나는, 정말 모든 것이 별거였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작은 일에도 쉽게 흔들리고 상처받았다. 지금 돌아보면 아무 일도 아닌 것들인데 말이다. 세상풍파를 지나며 나도 조금씩 깎이고 부드러워졌을까.
같은 드라마, 같은 인물인데도, 지금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여전히 그들 이야기지만, 이제는 내가 살아낸 시간들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