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문화와 한국 여행 콘텐츠의 미래
영국, 중산층 문화의 힘
예전 영국에 잠시 살았을 때, 참 부러웠던 것 중 하나가 그 많은 박물관이었다.
숫자만 많은 것이 아니라, 그전시 내용도 참 알차고 때깔 나서
어느 박물관을 가건 적어도 반나절은 재미있게 보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곳이
영국 사람들 만주로 가는 곳, 특히 동양인들이 별로 가지 않는 V&A 뮤지엄이었다.
https://www.vam.ac.uk/collections
영국이 가장 융성했던 빅토리아 여행시대,
18세기-19세기 귀족층의 장식예술, 생활예술작품들을 전시한 곳으로,
우리로 말하면 ‘조선시대 양반 예술문화박물관’ 정도가 되려나?
물론 한국에 그런 건 없지만 말이다.
<대영박물관>처럼 역사적 가치가 있는 아주 옛날 것이나, 규모가 큰 것도 아니고,
<내셔널 갤러리>처럼 유명한 그림이 있는 것도 아니며,
<자연사박물관>처럼 신기한 구경거리가 있는 곳도 아니므로
사실 찾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왠지 그곳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사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넓은 4층 공간 빼곡 빼곡 놓인 그 방대한 소장품의 양에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예술작품이 그려진 악기들,
하나의 식탁 위에 동시에 올라간 수십여 점의 은식기들,
화려하고 예술 조각 같은 수준의 가구들,
하다못해 열쇠, 문고리 하나하나에 들어간 그 정성과 예술적 감각들.
뭐 사실 궁전도 아니고 대단한 귀족의 집들도 아닌데,
이런 정도의 생활을 누리고 살았단 말이야?
하는, 단전에서 올라오는 부러움을 숨길 수 없었다.
그러다가, 바로 그다음 주에 저 유명한 ‘노팅힐 앤틱 마켓’에 갈기회가 생겼다.
줄리아 로버츠, 휴 그랜트 주연의‘노팅힐’ 이란 영화를 본 적이 있는지라,
벼룩시장과 같이 소규모의 영세상들 내지는 노점과 가판들로 이어진
한산한 ‘시골장’ 같은 분위기이라 짐작하고 갔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 노팅힐 앤틱 마켓은 몇 백 미터에 이르는 거리 곳곳에
노점뿐 아니라 1층 및 지하건물들이 모두샵으로 구성되어,
끝도 없이 이어진 ‘거리 백화점’이었다.
수많은 식기, 중고 부엌용품 및 각종 장식품들로 그야말로 꽉꽉 차 있는 것이었다.
V&A 박물관이 그래도 약간 중상층 문화의 전시장이라면,
노팅힐 앤틱 마켓은 그 아래 사회의 기층을 이루는
중산층의 문화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소수의 귀족문화는 어느 나라나 존재하는 것이고,
우리나라에도 그런 문화는 분명 있어왔다.
그러나, 사실 그 국가의 문화적 저력을 보여주는 것은
그 고급문화가 어느 층에까지 미쳤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솔직히 그다음부터는 길에 다니는,
그리고 사무실에서 만나는 영국 사람들을 보는 느낌이 달라졌다.
200년 전, 우리나라는 극소수의 귀족층만 누릴 수 있었던 소위‘상류층 고급’ 문화를,
이곳 영국에서는 참 깊고 넓게도 누려 왔던 것이다.
그것이 식민국에서의 약탈 덕분이었건
혹은 지구 상 최초의 자본주의 사회구조로 인한 혜택이었건 간에.
그리고, 이러한 경제력 배경은 교육과 문화 쪽으로 투자되어
폭넓은 시민계층과 높은 민도를 만들어 냈으리라.
그리고 이러한 폭넓은 중산층의 역사가 100년 이상지 속된 안정된 사회구조 속에서
오늘날과 같이 발달된 문화가 나올 수 있었겠지.
이런 경제적, 문화적 저력이 있었으니
100여 개의 박물관과 갤러리, 오페라, 뮤지컬 등이 넘쳐나고
그래서 사람들이 몰려오고,
런던은 세계적 관광지가 되는 거구나.
한국의 중산층 문화라는 것?
사실 우리나라의 국력 전성기는 지금 현재다.
언제 우리 역사에 언제 세계 1등을 하던 때가 있었나.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다 훑어봐도
지금, 대한민국 시대가
우리 민족의 최고 시기다
그런데 그런 대한민국조차도
소위‘문화생활’을 소수가 아닌 전체 대중이 제대로 누린지는
아직 새마을운동 이후 한세대가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우리의 전반적 민도가 부족하고
성숙된 시민문화 또한 자라날 시간이 턱없이 짧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십 년 간 우리의 중산층도 역사와 문화가 쌓이면서,
봉준호의 기생충이나 BTS의 음악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을만한 높은 수준의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마침 코로나 시대로 인해
이런 눈 높은 중산층들이
속속 국내 여행, 특히 지방여행에 나서고 있다
지방도 이제 가볼만한 곳들이 많다는 기사를 보면 가슴이 설렌다.
마침 지난주에 한 후배가
제주도의 <해녀의 부엌>이라는 여행 프로그램에 대해 말해주었다.
극장식 레스토랑인데, 그 극이라는 것이 제주도 해녀의 이야기라고 한다.
입소문이 좋게 나서, 이 시국에도꽤나수익을올리고 있다고.
너무 반가웠다.
옛날이야기 아니라도, 지금 우리 시대 이야기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의 미를 부여하고,
힐링을 받는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 지방의 다양한 곳들이
새롭게 조명받는 문화콘텐츠로 거듭난다는 것은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우리나라 문화시민들의 눈과 취향으로 만들고 다음어진
문화콘텐츠들이
대놓고 빛나는 K-아이돌뿐 아니라
은근히 저력 있는 K-어덜트 문화로
인정받을 수 있기를!
정말 너무 큰 고통을 안겨 준 코로나지만
이렇게라도 한국관광콘텐츠에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정말 불행 중 다행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