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독 마케팅과 이중섭 박물관
고난을 뚫고 성공한 <언더독 스토리>는 언제나 흥행되는 아이템
언더독은 말 그대로, ‘밑에 깔린 개’다.
승부에서 질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으로, ‘탑독’의 반대말이다.
스포츠 경기를 볼 때, 당연히 이길 것으로 예상되는 쪽이 아니라
질 것으로 보이는 약체를 응원하게 되는 심리가 있다.
게다가 만약 내가 응원한 그 약체가 이기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통쾌할 것인가.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내가 왜 통쾌하지? 받는 것도 없는데. 그 이유는 ‘자아-브랜드 연결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이 스스로 탑독보다는 언더독 쪽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동일시도 쉽게 일어난다고 보면 이해는 쉬워진다.
스포츠 상황에서 뿐 아니라, 이런 현상은 산업, 문화계에서도 광범위하게 이용된다.
유독 우리나라 문화계에는 어려운 부모님, 불우한 가정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케이스가 많고,
몇 번의 실패를 겪은 후 마침내 성공한 CEO들 이야기도 많다.
드라마에서 언제나 사랑받는 스토리는 어려운 환경이지만 꿋꿋하게 이겨내고,
늘 밝은 에너지로 주변 사람을 감화시키는 인물이 끝내 자기 영역에서 성공하는 구도다.
2019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은
가난한 싱글맘이 주변의 온갖 질시와 편견을 이겨내고 결국 행복해지는 어찌 보면 뻔하고 촌스러운 이야기다.
게다가 주연인 ‘동백’ 역할의 공효진은 언제나 그런 비슷한 역할에 단골이라 지겨울 법도 한데,
우리는 알면서도 또 그 마법에 빠져든다.
고생하던 언더독이 마침내 성공하고 행복해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가 가진 흡입력은 당해낼 수가 없다.
언더독 스토리의 진수, 언더아머 캠페인
마케팅에서 어떻게 이런 강력한 무기를 활용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교적 최근, 스포츠 영웅을 소재로 한 가장 성공적인 사례가
2016년 브라질 올림픽 때 마이클 펠프스가 등장한 언더아머 캠페인이었다. 미국의 수영선수 마이클 펠프스, 4번의 올림픽에 출전해 통산 28개의 메달을 획득한, 걸출한 선수.
하지만 그 기록 이면에 더 극적인 인간적 스토리가 있으니,
어릴 때는 주의력 결핍 장애를 앓아서 수영을 시작했고,
우승을 한 후에는 마약 복용, 음주 운전 등 늘 불안정한 정신 상태로 지켜보는 사람을 조마조마하게 했다.
그런 그가 전성기를 훌쩍 넘긴 32세의 나이에,
은퇴를 번복하고 브라질 올림픽에 출전했을 때는 사람들이 반신반의했다.
걱정하는 사람들의 마음 일각에서는 우승은 고사하고라도,
스스로의 이름에 먹칠할 정도로 부진한 경기를 보이지 않을까 우려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올림픽 시즌이 시작하기도 훨씬 전인 3월에 언더아머가 조용히 캠페인을 시작했다.
‘자신을 지배하라 (Rule yourself)’라는 전형적인 스포츠 브랜드다운 타이틀은 다소 클리쉐였지만,
정작 보는 사람의 심금을 울린 건,
어둠 속 수영장에서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훈련하는 영상 이후 마지막에 나온 카피였다.
‘너를 빛나게 해 주는 것은/ 바로 네가 어둠 속에서 한 일이다
(It’s what you do in the dark/ that puts you in the light)’.
몰락한 영웅의 절치부심 귀환 스토리.
뻔한 것이지만 그러나 또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감동은 묵직했고,
게다가 극적이게도 그는 7월에 열린 올림픽에서 다시 한번
다섯 개의 금메달과 한 개의 은메달을 획득함으로써 가슴 짜릿한 전율을 안겨주었다.
사실 언더아머는 정식 올림픽 스폰서도 아니었다.
하지만, 2016년 애드 위크지는 그 해 최고의 광고로 언더아머 마이클 펠프스 광고를 꼽음으로써,
역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
(마이클 펠프스 언더아머 광고)
여행으로 오면 여행지 인물 스토리
여행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인물 스토리다.
영국 런던에 가면, 비운의 다이애너 비가 떠오르고 그녀의 초상화가 전시된 초상화 박물관,
그녀의 추모비가 마련된 헤롯 백화점 구석에 가서 뭉클한 비애를 맛본다.
영국의 하고 많은 과거 인물 중에서도 비운의 앤 볼린 스토리가 인기이고,
런던탑에 가면 그 어느 누구보다 그녀와 관련된 유적지에서 기구한 운명의 스토리를 곱씹게 된다.
파리 몽마르트 언덕에서 가이드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다른 사람들보다도 비운의 꼽추 화가 로트렉의 이야기가 유독 흥미를 끈다.
그냥 밋밋하고 반듯한 사람 이야기는 매력이 없다.
바깥에서 보기와는 달리 불행한 스토리를 가진 비극적 인물이나,
혹은 어렵게 자랐지만 극적으로 역경을 극복한 스토리가 훨씬 더 입체적이다.
그러니, 밋밋한 위인 스토리보다는 극적인 인물 스토리가 입혀진 관광지가 더 매력적인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서귀포 구석에 있는 소박한 이중섭 미술관
서귀포시에서는 1996년 한국을 대표하는 서양화가이자 천재화가인 이중섭을 기리기 위해
피난 당시 거주했던 초가 일대를 이중섭 거리로 명명하고 그가 살던 집과 부속건물을 복원해
이중섭 거주지와 그의 호인 대향(大鄕)을 따서 대향 전시실을 꾸미는 한편,
매년 10월 말 이중섭의 사망 주기에 맞추어 이중섭 예술제를 개최해 왔다.
그리고 2002년에는 마침내 미술관을 설립했다.
개관 당시에는 원화가 없어 일부 복사본만 전시하다가, 뒤에 이를 안타깝게 여긴 문화인들의 기증과 노력으로 이중섭의 서귀포 생활 당시의 몇 작품이 전시되고 있으나, 전시장을 둘러보면 다소 초라하게 느껴진다.
막상 이중섭의 작품은 몇 점 밖에 없고 다른 분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유명한 이중섭의 작품은 이미 고가에 전매되어 개인 소장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히려 자잘한 소품 같은 그림들이 아기자기하게 재미있다.
멀리 있는 가족에게 전하기 위해 재치 있고 귀여운 그림과 사연을 꼭꼭 눌러 담아서,
보다 보면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담뱃갑 속의 은종이에 송곳이나 나무 펜으로 아이들이 물고기와 어우러져 노는 장면이나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 그 유연한 선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준다.
담뱃갑 속의 은지에다 송곳으로 눌러 그린 그림을 뜻하는 은지화는
독자적으로 창안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도
3점이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대표작은《싸우는 소》, 《흰소》, 《움직이는 흰소》, 《소와 어린이》, 《황소》, 《투계》 등
향토성이 진하게 배어 민족의 힘을 나타내는 역동적인 작품들이지만,
《닭과 가족》, 《사내와 아이들》, 《길 떠나는 가족》등 수많은 은지화들이
워낙 동화적이고 자전적 요소가 강해 훨씬 더 인간적인 흡인력은 강하다.
http://culture.seogwipo.go.kr/jslee/leejs/seogwipo.htm
피란길이지만 즐거운 소풍처럼 묘사된 <길 떠나는 가족> / 출처 : 이중섭 박물관
제주, 부산, 통영을 잇는 이 중섭 루트 _ 힘을 합치고 나누는 노력
이중섭은 남한에서의 궁핍하고 어려운 생활을 이 세 개의 도시에서 겪었다.
가장 먼저 박물관을 만든 제주에 이어, 부산, 통영에서도 그를 기리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2019년에는 부산 동구 범일동 이중섭 생가 인근 거리 재정비 사업을 벌였다.
대표 작품 속 이미지를 활용해 범일동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이중섭의 범일동’,
계단식 지형을 이용한 화원과 커뮤니티 공간으로 구성된 ‘이중섭의 봄’,
작품 ‘길 떠나는 가족’을 전시하는 ‘이중섭의 소망’,
소를 중심으로 한 야외 갤러리와 휴식공간으로 구성된 ‘이중섭의 화실’,
특히 야외 갤러리에는 소 조형물을 새로 설치해 포토존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통영에도 이중섭 거리가 있다.
통영의 항남동 거리에는 파란색 지붕의 오래된 이중섭의 집과 자그마한 안내판이 있다.
사실 통영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단체 전시회, 개인 전시회를 열기도 하면서
작가 일생으로는 가장 화려한 절정기를 보냈다고 한다.
풍경화도 많이 그렸다.
풍경화를 많이 그리지 않던 이중섭이 복사꽃이 핀 마을, 선착장을 내려다본 풍경,
충렬사, 남망산 길이 보이는 풍경, 세병관 풍경 등 20여 점의 풍경화를 그려낸 곳이 바로 통영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림을 전시하는 공간은 없다.
즉, 부산과 통영에서는 아직 제주도만큼 활발하게 그를 활용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셈이다.
제주, 부산, 통영. 대한민국 남단에서 내로라하는 풍광을 갖춘 대표적인 관광 도시이자
이중섭이라는 문화적 자산을 공통적으로 갖춘 곳들이다.
지역이라는 울타리 내에 갇히지 말고,
인물 자산을 시리즈로 연결해서 판을 좀 키우면 어떨까.
고생과 고난이라면 절대 뒤지지 않은 화가 반 고흐의 행적을 따라
네덜란드, 프랑스의 몇 개 도시를 일주일 간 여행하는 프로그램도 인기인데 말이다.
https://www.vangoghmuseum.nl/nl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박물관)
그 지역에서 살던 시절 그린 그림들 위주로 스토리를 연결하면
자연-그림-인물 스토리가 연결되는 훨씬 더 좋은 여행 루트를 만들 수 있을 텐데.
결국 사람이 감동을 받는 것은 다른 사람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이다.
한국의 남도 예술 여행, 이중섭 로드.
좀 멋지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