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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루씨 Jul 11. 2022

스타트업_나의 빌런 상사

싸했던 첫 만남


“와서 브랜드와 마케팅을 담당해 주시는데,, 소속 부서는 사업본부예요.”

대표이사 아래 직속 조직인줄 알았는데, 소속부서가 있단다.

그리고, 거기 본부장은 세 살 아래, 모 통신회사에서 홈쇼핑을 오래 담당하신 분이란다.

면접을 본다기보다, 그냥 서로 코드를 맞춘다 생각하시라 했지만, 느낌이 싸했다.

바로 윗사람인데, 직장 경험이나 업무 방식이 너무 다를 것이 불을 본 듯 뻔했다.


처음 얼굴을 마주하던 날, 그 느낌이 더 구체적으로 사실화되었다.

사람 얼굴을 똑바로 보지 않고 왠지 옆으로 삐딱하게 보는 것 같았다.

자기 생각에 확신이 가득한, 공격적인 스타일이었다.

이전 직장을 왜 그만두었는지에 대해 집요하게 캐물었고, 

나이도 많은데 실무 안 하고 관리만 하던 건 아닌지 끝까지 의심했다.

다양한 배경의 아래 직원들과 원만하게 잘 지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표했다.

본인이 생각하는 마케팅에 대해 일장 훈시를 하기도 했다.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의심이 많은 스타일이구나.
생각이 잘 안 바뀌는 스타일이구나.


나랑은 정 반대구나.

첫 만남부터 느낌이 왔다.

어차피 내가 뭐라고 얘기해도 자기 맘대로 판단할 것 같았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분명하게 하고, 

비슷한 이야기를 또 꺼낼 때는 제대로 답변도 하지 않았다.

내 답변으로 생각이 바뀔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에는 그냥 웃으며 좋게 말했다.

내 이야기만 들어서는 한계가 있을 테니, 헤드헌터 통해 주변 평판 체크해보시라고.

이 역할에 사람이 필요하지 않으시다면 그냥 프로젝트로 일해도 된다고, 

꼭 풀타임 직장이 필요한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안 되면 말아야지


맞지 않는 사람이랑 어떻게 매일매일 얼굴 보고 일 하나.

나이 든 사람의 배짱이었다.




의외로 좋은 평가

그런데, 다음날 후일담을 들으니 의외로 나의 채용을 반대하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 있게 게기는 모습이 오히려 좋아 보였다나.

자신도 사회생활 오래 한 사람으로서 사람 보는 눈은 좀 있다고.


반대하면 그냥 시원하게 출근 안 할라 했는데, 막상 또 괜찮아했다니 주춤했다.

별로 궁합이 안 좋을 것 같기는 한데, 내 쪽에서 거부를 해야 하나?

했다가, 에이 그래도 일하면서 한번 맞춰나 보자 싶었다. 

어차피 10년 20년 오래 다닐 것도 아닌데.

정 아니면 언제라도 관두면 그만 아닌가



제품이 좋으면 팔린다는 믿음을 가진 옛날 사람

처음 적응할 때는 사실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일장 훈시를 하면서 가르치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잘 모르는 이 업계와 플랫폼 사업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을 해 주었다.

특히 내가 모자라는 숫자 계산에 능하고, 

천 원 단위까지 효율을 따지는 퍼포먼스 마케팅에 아주 강했다.

하지만, 그 모든 장점을 일거에 다 까먹어버리는 순간이 있었다.

“우리 제품만 좋으면 언젠가는 잘 된다. 브랜드에 돈 쓰는 것은 낭비다”라는 말을 할 때였다.

아니, 이것은.

10년 전, 20년 전 옛날 골목에서 단골 장사할 때 이야기를 하고 계시나.

대중을 상대로 더 시장을 키우려면 브랜드에 투자도 하셔야지.

대화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했다.


파토가 나 버린 보고 자리 

결정적으로 둘 사이의 의견이 맞부딪힌 상황이 발생했다.

코로나 거리두기 정책 종료 후, 택시 대란 발생으로

매출은 꾸준히 증가하고, 차량 및 기사님들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었다.

이제는 사업이 도입 시기를 넘어서 제대로 된 성장을 앞두고, 

브랜드에 대한 투자를 구체화시켜야 하는 시점이었다.

마침 대표님들도 그런 생각을 갖고 계셨고, 준비해 보라고 지시하셨다.

자료를 만들어서 보고 자리를 만들었다.

우리 사업 인프라만 잘 갖추고 돌아가면 되는 시기를 이제 넘어섰으니,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런 내용이었다.


그럴 때 가장 먹히는 소비자 인식 데이터, 경쟁자의 활동 등 

경각심을 일으킬 만한 자료들을 일단 먼저 보고했다.

대표님들은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이니 솔깃해서 귀를 기울였다.

필요하긴 하겠네 하는 공감대가 만들어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확.

나의 빌런, 사업본부장님이 끼어들었다.

돈 안 쓴 거 대비, 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 

효율 면에서 보면 우리가 더 낫다.

소비자에게 브랜딩 하느라 뿌릴 돈이 있으면 다른 곳에 투자해서 더 실속을 갖춰야 한다.

라고 열을 냈다.


아, 나의 윗분 아닌가
왜 다른 분들이 다 동의하는데 그 면전에서 내 얘기를 뒤집는가

약간 어이가 없었다.

일단 봉합을 하고 다음을 기약하면서 회의는 마무리가 되었다.


부글부글

그 자리는 넘어갔지만, 속이 상했다.

예전에 어릴 때처럼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그런 감정적인 문제는 아니었다.

그냥, 이 일을 어찌하면 좋아, 어떻게 저분 생각을 바꾸지? 하는 막막함이었다.

이 일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가슴이 답답했다.




하지만 우리는 파트너

그런데 그러고 며칠 후,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뉴스가 나왔다.

경쟁사가 꾸준히 준비해온 다양한 브랜딩 활동들에 대한 일련의 기사였다.

그렇지. 내가 말했잖아. 경계하고 우리도 준비해야 한다고.

눈치를 흘끔 보았다.

기세가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관련 회의를 하다가,
나더러 알아서 판단하라며 위임을 해 주었다


속으로 웃었지만 엄숙한 표정으로 네 하고 대답했다.

이 분도 생각했던 것만큼 그렇게 막무가내는 아니다. 

상황이 생기면 이해도와 적응력이 빠르다.


사실, 우리 둘은 잘하는 영역이 매우 다르므로, 든든한 파트너가 될 가능성도 크다.

이 분은 숫자와 마케팅, 나는 개념과 브랜딩.

단지 기존 경험만 가지고 우기지 말고, 마음의 문을 조금만 더 열어 주면 좋겠다.

나도 그럴 테니. 

암튼 그날은 좋게 넘어갔다.


물론, 이 분이 그날 이렇게 말했다가 오늘 또 뒤집을 수도 있다.

사람은 그렇게 잘 바뀌지 않으니까.

게다가 본인이 그것으로 성공했다는 믿는 영역을 부정당하는 것은 

자기를 부정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또 언제든 파토를 놓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늘 경계하고 경계할 일이다.


그나저나, 스타트업이라는 곳에 있다 보면, 

윗사람 아랫사람 할 것 없이
나와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인내와 소통이 참 중요한 것 같다.


미워할 수 없는 빌런 상사.   그도 나름 그의 경험에 기반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나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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