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후배에게 아직 하지 못한 말
우리 중에 아무도 경험자가 없다는 놀라운 사실
드디어 우리 앱 가입자 수가 70만을 넘어섰다.
다들 박수를 치고 좋아했지만, 뭔가 약간 불안감도 있다.
정말 회사 안팎에서 기대하는 것처럼 연말에 100만을 돌파한다면,
지금까지 와는 다른 마케팅 활동을 해야 한다는 명제가 현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현재 내가 맡고 있는 조직에,
100만 이상 가입자를 가진 플랫폼에서 일한 경험을 가진 멤버는 없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다
이럴 때,
그냥 감으로 할 수 있다면 편하겠지만
돈 받는 월급쟁이에게 그런 편한 길이 있을 리 만무하다
늘 최고 경영자들은 새로운 길에 의문을 제기하기 마련이니까.
무슨 근거로, 왜 그렇게 하는지?
왜 이런 투자를 해야 하는지?
그런데,
우리 내부에 수치적 근거가 없고,
들이대고 우길만한 다른 곳에서의 경험치도 없다면,
최대한 객관적인 팩트를 가지고 그럴듯한 가설을 만들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지난 1년여 시간 동안 축적된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을 시도해 본다.
원인 변수와 결과변수를 설정하고
인과 관계를 만들어 보려 한다.
쉽지는 않다.
방향을 제시하는 나도 직접 경험은 없고
같이 회의하면서 과제를 받는 직원들도 경험은 없다.
최대한 상식에 가까운 가설을 구성해 볼 따름이다.
격려해 주느라고,
“이런 일을 업계에서 처음 하는 거일 테니, 우리에겐 경험이 남는다.
여러분들은 이 업계에서 가장 앞서가는 마케터가 될 수 있다”
라고 말했더니,
한 후배 직원이 딴 데를 보면서 혼자 말처럼 중얼거린다.
“저는 이 업계에서 계속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그냥 옛날 하던 (전통) 업으로 돌아갈랍니다.”
뭐, 어떤 마음인지 십분 이해는 가지만,
그럴 수는 없다네.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흠, 원래 일에서 유턴이란 없는 거라네
연차는 꽤 높아져서 이제는 노련미와 경험으로 승부하고 싶은데,
계속 새로운 일들이 생겨서 다시 백지상태가 될 때,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같이 일하는 후배들에게 면이 서지 않을 때,
사실 좀 지치기는 한다.
계속 변화하는 트렌드와 기술을 공부해야 하고 사례도 업데이트해야 하니까.
생각해 보면,
디지털이라는 마케팅 영역이 시작된 20년 전부터,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활성화되기 시작한 10년 전부터,
우리 마케터들은 꾸준히 그래 왔다.
내가 했던 경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계속 새롭게 공부하고 고민해야 했다.
특히 내가 몸담고 잇던 대행사라는 영역이 좀 더 심했고,
일반 브랜드의 마케팅 영역이라고 해서 그 흐름을 비껴갈 수는 없었다.
어차피 초대형 큰 파도는, 시차는 있어도 언젠가는 몸담고 있는 누구나 다 맞이하게 마련이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서,
최대한 바뀌지 않는 영역처럼 보이는 곳으로 가더라도
그곳도 외딴섬은 아니다.
가장 앞단에서 정면승부는 아니더라도,
아마 “피턴 정도?”
지금과 과거 사이 어딘가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국내 마케팅으로 유턴했다고 생각했는데
글로벌 마케팅을 한동안 하다가 다시 국내 마케팅을 하게 됐을 때,
사실 조금 편해지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하지만, 역시 세상에 편한 일이란 없다.
그동안 한국 사회도 많이 바뀌었고,
소비자는 엄청 진화했으며,
미디어는 세분화되어서
더 이상은 하나의 큰 아이디어로
퉁칠 수 있는 마켓이 아니었다
오히려 글로벌 업무를 하면서 잃어버렸던
로컬의 디테일한 감성을 되살려야 해서
하나의 장벽을 넘어서야 했던 기억이 난다.
연애와 마찬가지
엉뚱한 비유지만 연애할 때도 마찬가지다.
처음 신선했던 관계가 점점 뻔하고 지루해지는 단계에 이르면,
과거 신선할 때로 유턴하고 싶어 지는 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다 알다시피 그럴 수는 없다.
그 사람과의 연애를 끊고 다른 신선한 자극을 찾든지
아니면 이 사람과 다른 시도를 해서 새로운 자극을 만들든지 중에서 골라야 한다.
새로운 도로를 찾든지,
아니면 피턴을 해서 조금 다른 방향을 찾든지.
유턴이란 없다.
아직 말은 못 했지만
쉽게 한마디 뱉은 그 후배에게 아직 이러저러 내 생각을 말은 못 했다.
꼰대가 라떼 소리 하네 할까 봐. 나는 그냥 쿨한 선배가 되고 싶어서.
“네가 다시는 이런 일 안 해야지 하지만,
결국 이 경험을 밑밥 삼아
먹고살고 있을 거다.”
라고
조금 더 애정이 생기고, 더 편하게 얘기할 기회가 올 때 얘기할 수 있겠지
일단은 주어진 과제를 같이 해결해 본 다음에 다시 짱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