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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버들 Jan 17. 2024

임신일기 12. 출산기 : 이별과 새로운 만남



나와 같은, 나와는 다른, 이제는 태아 아닌 아기




39주 진료를 다녀오고 나서 아무 진행 사항이 없어서 41주인가 42주에도 이러면 유도분만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가장 예상에 없던 분만방법이라 조금은 두려운 마음을 갖고 병원을 나섰다.


엄마집과 병원이 가까운 편이라 진료를 마치고 엄마집에 가서 한량처럼 누워있고 주는 대로 먹고 쉬었다. 엄마한테 얘기를 하니 너무 무섭고 힘들 것 같으면 수술을 하는 건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다. 딸이 너무 고생할 것 같으니 엄마 마음엔 온통 딸 걱정뿐이었던 것이었으리라. 엄마가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걸 보자니 더 걱정시키면 안 될 것 같아서 의연하게 괜찮다고 말했다.

엄마에게 출산할 때 어땠는지를 물어보면 엄마는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하시면서도 힘들게 낳은 기억은 없는 것 같다고 몇 번 힘주니까 내가 나왔다고 하시는데 그건 아마 내가 아주 작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작든 크든 애를 낳는 건 힘들고 아픈 일임을 여기저기서 듣고 보고 너무나 분명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힘든 기억이 희미해질 수 있을까 참 신기하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언제나 위안이 된다.


정리할 것도 있고, 치우고, 저녁도 미리 준비해두려고 집에 가려는데 엄마가 밥을 먹고 가라고 하셨다. 좀이따 남편 오면 같이 먹어야 하는데?라고 하자 그건 그 때가서 또 먹고 지금 밥 차릴테니 먹고 가라고 하셨다. 남편은 8~9시쯤 퇴근이고, 엄마집은 저녁을 아주 일찍 드신다. 오후 다섯시정도면 저녁식사를 하시기 때문에 나에게는 간식이 될 것 같아서 그럼 어디 한 번 차려보시지 개구진 장난을 치면서 기다렸다.

엄마가 한 방금 지어진 모락모락한 하얀 쌀밥, 반듯한 계란말이, 진한 향기가 먼저 퍼지는 스팸구이, 침샘을 자극하는 얼큰한 김치찌개 그리고 엄마,아빠표 몇 가지 집반찬들. 너무 맛있었다. 임신 후기가 되면서 식욕이 늘었는데 그 때문인지 한 그릇을 싹싹 비우고 두 그릇까지 싹싹 비웠다. 그 상태 같으면 세 그릇 째도 조금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무 많이 먹으면 힘들 것 같아서  욕심을 내려놓았다.

배도 부르고 집에 가서 할 일들을 남편에게 하라고 해야겠다 라며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남편 오면 또 뭐 먹지 행복한 생각과 함께 뒹굴대다 잠도 살포시 들었다. 평화로운 8월 24일이었다.


남편이 와서 저녁을 같이 먹는데 이상하게 밥이 넘어가질 않았다. 아까 많이 먹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옆에서 같이 자리를 같이 하고 있는데 배가 생리통처럼 싸하게 아팠다. 많이 먹어서 배가 아픈건가?하고 화장실도 가보고 뭉친 건 아닌 것 같지만 뭐가 힘든가 싶어 누워도 보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 좀 나아졌다.

남편이랑 좀 놀다가 오늘 몸이 좀 피곤한건지 이상하게 배도 아프다고 남편에게 말하고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나는 거실에, 남편은 안방에서 자는데 잘자 인사하고 자리에 누워서 좀이따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생리통이 느껴져서 또 잠에서 깼다. 그 때 순간 아! 가진통인가? 다음주쯤 진행될 건가보다! 하고 참을 수 있는 생리통처럼 오는거구나 깨닫고 통증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는데 좀 나아졌다가 다시 아프기를 계속 반복하더니 자정이 넘어서는 점점 괜찮은 시간이 짧은 거 같아서 가진통이 이래도 되는 건가 라는 생각에 진통주기 어플을 다운받아 체크하면서 있는데 점점 짧게, 주기적으로, 점점 아프게 통증이 왔다.


나는 남편을 불러서 배가 아프다고 말한 후, 혹시 병원에 가게 되면 이렇게 해야한다고 산모수첩도 건네주고 싸둔 짐 두 가지 중 저것만 챙겨달라고 말하고 응급실 전화번호도 알려주고 뭔가 일러둬야 할 것을 두서없이 말했다. 남편은 갑자기?라는 말과 비몽사몽 반응으로 그럼 지금 어떻게 해야하지 하면서 옆에 누으려길래 아니! 일단 가서 누워서 잘 수 있는만큼 자봐 내가 도저히 너무 아프면 다시 부를게. 하고 남편을 방으로 돌려보냈다.


새벽 한 시가 넘어가자 약 7~8분 주기로 진통이 왔다갔다. 숨을 후후후 밭게 쉬고 가만히 있기 힘들어서 이 자세 저 자세하면서 진통주기어플을 계속 체크하다가 병원에 전화를 했다. 남편이 그 때 나와서 같이 전화를 하며 내가 배가 아파서 말을 잘 못하자 대신 통화도 해주더니 놀라하며 갑자기 이런다고 갑자기? 하며 뭘 챙기는데 도대체 뭘 챙기는지 정신이나 챙기고 있으면 다행인데 싶었다.


끙끙 거리며 아직 병원 안 갈거야 더 짧아지면 갈거야 지금 가면 불편하게 있기만 할 것 같아서 라고 하자 그래도 되는거야? 이렇게 아픈데? 그렇다. 난 수액을 맞으면 팔이 끊어질것처럼 아픈 혈관통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최대한 주사는 늦게 꽂고 병원에선 빨리 낳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집에서 있을 수 있는 만큼 있다가 가야지 싶었던 것이다. 이 때는 몰랐다. 진통이 혈관통을 이긴다는 것을. 아무튼 시간이 흘러 새벽 세시가 넘어가고 네 시가 넘어가자 거의 흐느껴 울지경이 되었고 더 있다가는 제 발로 병원에 못가겠다 싶어서 남편에게 지금이다 가자! 하고 짐도 챙기고 애착인형을 꼬옥 쥐고 병원으로 향했다.


남편은 밖에서 기다리고 나는 조금 걷다가 못 걷고 서서 숨을 쉬고 너무 아파서 못 걷겠어요라고 거의 울먹거렸는데 산모분 걸어보세요. 라고 단호한 간호사선생님의 말씀이 돌아왔다. 그 순간 왠지 힘차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러지는 못하고 어찌저찌 분만실로 들어가 배에 벨트같은것을 차고 누우려는데 극심하게 아파서 너무 아파요 너무. 이랬는데 선생님이 산모분 그 정도 아니시거든요. 잘 누워보세요 하면서 선생님이 검사지 같은걸 보더니 산모분 이렇게 아프면 병원에 전화를 주시지 그걸 집에서 다 쌩으로 참다가 왔냐고 하셨다. 내 진통주기는 3분을 왔다갔다 했다. 제가 아프다고 했잖아요 선생님에게 투정부리며 흐어어 하며 신음소리를 냈다 배가 너무 아팠다. (남편은 선생님 부름에 왔다갔다했는데 뭐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진통주기 3분은 3분 아프고 3분 괜찮은 게 아니었다. 3분 안에서 아프고 괜찮고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실제로는 짧게 괜찮고 계속 아픈 것이다.


조금 후에 마취 선생님이 오시더니 척추에 무통주사를 놓고 가셨다. 그 때가 7시쯤이었을까 조금 후 주사약이 들어가자 거짓말처럼 진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난 남편과 무엇인가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너무 졸리다며 잠에 들었다. 한 시간? 두 시간? 정도 잤을까 일어나서 남편과 또 뭔가 얘기를 주고 받고 내진을 했다가 대기했다가를 반복했다. (중간중간 뭔지 모를 검사도 하고 관장도 했는데 일의 순서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 생략했다.) 시간이 좀 흘러서 선생님이 오시더니 남편과 손잡고 힘주는 연습도 시켜주시고 선생님이랑도 연습을 하면서 좀 더 진행되면 무통주사를 끌 거라고 하셨다. 나는 너무 놀라서 선생님!! 신호(?)가 오면 저에게 알려주세요! 제가 진통이 안 느껴져도 배운 대로 열심히 힘줘볼게요! 했더니 선생님이 빵 터지셔서 이따 힘 잘 주자고 하고 나가셨다가 다시 들어오시더니 무통을 껐다.


나는 아까와는 다른 강도의 진통을 느끼면서 힘주는 연습을 하고 남편 손을 부여잡고 누군지도 모를 누군가에게 잘못했다고 빌고, 잠깐의 평화를 맛보았다가 바로 또 빌고를 반복하는데 아기를 받아주시는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남편에게 나가 있으라고 하더니 그 때부터 아기 낳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생각보다 힘을 잘 못주었다. 타이밍은 맞았는데 배가 너무 아프니 갈비뼈 아래로 힘을 줄 수가 없었다. 여러번 연거푸 시도할 때는 소리로만 힘을 주기도하고 남편은 선생님 말씀에 따라 내 옆에 있기도 좀 멀리있기도 아예 분만실을 나가기도했었다. 그러던 중에 나는 곧 쓰러질 것 같았다. 현기증이 나면서 몸에 피가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았다. 산모분 눈 떠요! 힘주세요! 하며 소리가 들려서 다행히 정신이 들기도 했다. 결국엔 간호사 선생님이 배 위로 올라오셔서 아래로 엄청 눌러서 힘을 주기 시작했다. 밑에서는 상황을 보는거 같고 나는 나대로 힘을 주는 정신없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뭔가 끼인 것 같은 게 시원하게 쑤욱 나가는 느낌이 들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내가 아기를 낳은건가 싶은 실감도 안나고 현실같지 않은, 8월 25일 오전 11시 54분에 2.9킬로그램의 딱풀이를 마주했다.



어제 저녁 할머니가 해주신 맛난 밥을 먹고 건강히 태어난 딱풀이와 나, 남편. 우리는 이제 세 식구가 되었다.





임신일기를 쓰면서 다시 한 번 딱풀이를 뱃속에서 만나는 경험을 했다. 2021년에 딱풀이가 찾아왔고 2022년에 딱풀이를 만났으니, 지금으로부터 대략 1~2년 전의 이야기를 쓰면서 말이다. 기억이 잘 나지 않던 일도 있었고 그랬나? 싶었던 일은 실제 쓴 일기를 참고했으니 아주 다른 얘기를 쓰지는 않았을거라는 회고도 해보면서.


임신 전과 후의 나는 많이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지만 임신 전과 후의 삶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철없고 어리고, 나이만 먹은 중학생 같은데 삶은 많이 달라져서 힘든 시간도 있었고, 아이로 인해 영원히 모를 것만 같던 행복도 있었고 무엇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한 가지 예를들면 이런 것이다. 예전엔 내게 뭔가 특별하고 큰 일이 일어나면 좋을 것 같았다. 갑자기 언어 능력자가 된다거나 가진게 많아지거나 피부가 깐 달걀마냥 좋아지거나 등등 나에게 일어나면 좋을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나길 바랐고 심지어 그 일들은 꽤 기적적인 일들인데도 일어나지 않아서 왜 나는 이모양이지 하며 좌절하는 날도 있었다. (돈벼락을 맞거나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은 지금도 그런 마음이 있으니까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무탈한 날이 감사한 날이 되었다. 우리 세 식구가 아침에 부스스 일어나 아이의 아침을 챙기고, 간식과 낮잠과 남은 식사를 챙기고, 남편과 내가 서로의 끼니를 묻고, 귀찮은 집안일은 모른척 스윽 지나가기도하고, 각자 씻는것도 피곤해 잠에 곯아떨어지며, 아이가 밤잠에서 깨어나 울 때면 서로의 등을 떠밀어주며 아이 옆에 있을 영광을 주겠노라며 투닥대는 그런 평범한 하루가 매일매일 반복되더라도 그렇게 무탈히 마감하는 날이 감사한 하루가 되었다.


물론 임신도 출산도 아이를 키우는 일도 모두 힘들때가 많았고 많고 많을테지만 (누군가 내게 육아는 어때? 라고 묻는다면 힘들지만 행복해보다는 행복하지만 많이 힘들어라고 말할 것 같다.) 조금 더 겸손해지고 조금 더 낮은 시선으로 사물을 볼 수 있게 되고 소수의 입장이 되어보는 일들은 내게 일어난 너무 멋진 일이다.


임신하고 싶은 사람, 임신이 망설여지는 사람, 임신을 원하지 않는 사람 등 기혼이든 미혼이든 여성에게 임신을 꼭 하고 아이는 꼭 낳아보세요! 라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낳을 거고, 낳기 직전인 분들에게, 혹은 그 누구에게라도 지금까지 달려온 12화의 임신일기가 부담이 아닌 공감과 위안이 있었기를 가끔 재미도 있었으면 더 행복할 것 같지만  무엇보다 편했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임신일기답게 외쳐본다. 모든 임산부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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