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운전을 배웠어야 했어
아마 우리나라 운전자 대부분은 갓 20살이 되던 때에 운전면허를 취득하지 않았을까? 몇해 전까지만해도 친구들의 운전면허증에는 앳된 얼굴이 담긴 반명함판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애석하게도 지금은 대부분 한번쯤 면허증 갱신을 한 나이가 되었고, 운전면허증을 보며 이게 언제적 얼굴이냐고 깔깔대며 놀릴 수 있는 시절도 지났다. 내 운전면허증에도 제법 성숙한 어른의 얼굴을 한 사진이 있어서 재미가 없다.
수능이 끝난 후의 19살 고3 아이들은 한가했고 운전면허학원이 가장 기다리는 고객님들이 되었다. 운전면허학원의 사람들은 학교 앞에 봉고차를 대고 학생들을 영업하기에 바빴다. 학원에서는 방금까지 수능 공부를 한 팔팔한 두뇌로 시험을 봐야 필기 시험에 바로 통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하면 너무 바빠져서 운전면허를 딸 수 있는 시간이 없을거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 운전면허를 따야만 너희 돈이 아닌 엄마아빠 돈으로 학원비를 낼 수 있다고 했다.
하. 그때가 운전을 배울 수 있는 골든타임이었다.
나는 수능이 끝나고 곧바로 31가지 맛의 아이스크림 가게 알바생이 되었다. 얼른 용돈을 벌어서 대학교 가기 전에 예쁜 옷도 사입고 친구들과 더 놀고 싶었다. 지금이 운전면허를 따기 가장 좋은 시기라는 말은 어른들의 잔소리로만 생각했다. 그때를 놓치고 나니 대학생이 되어서는 돈이 없었고, 직장인이 되니 시간이 없어서 면허를 따지 못했다. 필기 시험을 보기 힘들만큼 두뇌가 둔해지지는 않았지만 수업 시간을 채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은 곤욕이었다.
아마 그때 운전면허를 딴 친구들의 절반 이상은 한동안 장롱면허로 살았을거다. 우리는 땅이 넓은 미국 사람들도 아니니 일상에서 운전을 해야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대학교 입학 선물로 자동차를 선물 받을 만큼 재력있는 친구들도 없어보였다. 친구들은 2호선 초록색 라인에 있는 인서울 대학교를 가고 싶어했다. 목표를 이뤘다면 아마 그 이후로 운전을 할 일은 거의 없었을거다.
살다보니 '모르니까 할 수 있는 일'이 라는 것이 많다. 어릴 때 결혼해야 하는 이유는 결혼 생활이 어떤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아이를 젊을 때 낳아야 하는 이유도 출산이 얼마나 끔찍한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운전도 비슷하다. 아무것도 모르던 그때 운전대를 잡았어야 했다. 도로 위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모를 때 덥석 잡으면 좋았을거다. 골든 타임을 놓치니 괜한 걱정과 걱정만 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