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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나 Oct 19. 2022

혼다 시빅을 갖겠다고 왜 말을 못해

왜 내 인생 계획에 자동차는 없었을까

학창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어려서부터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자주 이야기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혹시나 이루지 못하면 부끄러워질까봐 걱정하며 감추기에 바쁜 나와는 달랐다. 친구는 꿈을 이루기 위해 산업디자인과에 진학했는데, 합격이 알려진 이후 친구들의 마음 속에서 그녀는 이미 자동차 디자이너가 된것과 다름없었다.


한 친구가 미래의 자동차 디자이너에게 각자에게 어울리는 차를 골라달라고 했다. 그녀는 이 질문을 듣고는 (진짜 차를 골라주는 사람이 된것처럼) 제법 진지해졌고, 고심 끝에 한 명 한 명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자동차를 이야기해줬다. 다른 친구들에게는 무슨 차를 추천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내 차례가 돌아온 순간을 잊지 못한다.


미나 너는 혼다의 시빅이 어울려. 빨간색으로!


친구가 말하길, 나는 키가 크고 도시적인 이미지니까 날렵해 보이는 차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여성스러운 느낌의 빨간색이라면 너의 매력을 돋보이게 하기 충분하다는 극찬까지 덧붙였다.


이것이 혼다 시빅


혼다? 그때는 지금처럼 길에서 벤츠나 BMW를 흔하게 볼 수 없었던 때였다. 물 건너 온 차라면 그저 좋아보기만 하던 내게 외제차를 추천해 주니 기분이 좋았다. 내가 왕이 될 상은 아니어도 제법 성공할 상인가? 하며 어깨가 한껏 치솟았다. 그리고 흰색도 아니고 검은색도 아니고 비둘기색도 아닌 빨간색은 자동차를 자주 바꿀 수 있는 부자들만 타는거 아닌가? 빨간 자동차에서 내리는 내 모습을 잠깐 상상만 해도 좋았다.


하지만 그 어깨가 한껏 올라간 것도 잠시, 내 인생에서 그 자동차는 까맣게 지워졌다. 나는 그때 혼다 시빅이 얼마인지 찾아보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가질 수 없는 금액일걸?' 하는 생각만 했다. 게다가 외제차라니? 외제차는 A/S 받기도 어렵고 유지비도 엄청 많이 든다는 주워들은 이야기만 머릿 속에 남았다. 친구들과의 모임 자리를 떠난 이후로 혼다 시빅은 그렇게 지워졌다. 아니, 애써 지웠다. 가질 수 없는 것은 꿈꾸지 않는 것이 편하니까.


나는 왜 혼다 시빅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아마 자동차라는 큰 재산과 외제차가 주는 무게감이 있었을거다. 배스킨라빈스에서 알바를 하던 그때의 나에게는 자전거를 살 수 있는 돈을 모으는 것 조차 버거웠으니까 말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오빠를 따라 조립했던 미니카 이후에 바퀴 달린 것에 대한 관심이 뚝 끊긴 것도 한 몫을 했겠지. 무엇보다 운전을 할 줄 모른다는 것이 가장 컸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운전대를 잡겠다는 꿈보다는 조수석에 앉아있는 꿈을 꾸는게 쉽고 빨라보였다.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운전을 배웠다면 달랐을까?


내가 혼다 시빅을 운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매일 혼다 시빅을 살거라고 말하고 다녔다면 내 인생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하던 그 친구처럼, 나도 부끄러워서라도 이루어야 하는 목표를 하나 만들었으면 달랐을지도 모른다. 나는 친구의 말을 마음에 새기며 살았어야 했다. 혼다 시빅 빨간색을 가진 사람의 모습을 머릿 속에 그리고, 친구들에게 말하며 살았어야 했다.


스무살의 나를 만난다면 너도 혼다 시빅의 운전대를 잡을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혼다 시빅을 운전하는 사람의 조수석에 앉을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라고, 네가 혼다 시빅에서 내리는 모습을 상상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 친구는 우리나라 대표 자동차 회사의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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