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나 Oct 26. 2022

부부의 평화를 위하여

운전만 한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하얀색 자동차남과 결혼을 했다. 우리는 인근 신도시에 둥지를 틀었다. 결혼을 준비하다 보니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되는 일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는 결혼식 날짜, 그리고 하나는 내가 살 곳. 결혼식 날짜는 예식장에 남는 날짜로 정했고, 내가 살 곳도 예산에 맞는 곳으로 정했다. 통장의 잔액이 점지해 준, 신도시라기보다 공사판에 가깝던 신혼집도 그렇게 결정됐다.


황무지 개척자의 마음으로 이사를 갔다. 길 위에 모래바람 대신 시멘트 가루가 휘날리는 곳이었다. 여전히 아파트와 상가가 지어지고 있어서 공사 소리가 BGM처럼 여기저기 가득했다. 인구수에 비례해 늘어난다는 버스 노선도 아직은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장을 보러 마트에 갈 때도, 커피를 마시러 갈 때도, 심지어 운동을 하러 갈 때도 자동차가 필요했다.


주말마다 나와 남편은 동선을 짜기에 바빴다. 한 대의 자동차로 가장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는 주말에 마트를 꼭 가야겠고, 너는 꼭 공원에 가고 싶다고 했으니 우리 같이 차를 타고 나가서 마트에 먼저 갔다가 공원에 가자. 돌아오는 길에 카페가 있으니까 커피를 마시러 가도 좋아. 아, 커피는 너무 늦게 마시면 안되니까 가까운 카페에 먼저 갈까?" 우리는 서로의 취향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자동차 한 대로 함께 움직이곤 했다. 아름다웠다.


하지만 결혼 생활이 조금씩 익숙해지자 우리 각자 취향이라는 게 생겼다. 마치 한 팀이 된 것처럼 쿵짝쿵짝 발맞춰 움직이던 신도시 부부팀에게도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우리 주말에 그 카페 갈래?"

"아니, 난 그 집 커피 맛이 별로던데."

"... 그럴 수 있지"


"우리 주말인데 드라이브 갈까? 날씨도 좋은데"

"거기 차 막힐걸"

"... 그럴 수 있지"


몇 년 간 함께 다니던 곳들의 데이터가 쌓이자 각자 판단 근거가 생긴 것이다. 좋았던 곳에 대한 취향도 쌓여갔다. 함께 다닐 수 있는 동선을 짜는 것이 예전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가고 싶은 곳을 가기 위해서는 서로를 설득해야 했다. 가끔은 내가 가고 싶은 곳에 함께 가준다면 네가 좋아하는 곳에도 들러주겠다는 보상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기는 하지만 쉽게 동의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문득, 혼자 다닐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고 싶은 곳을 생각하기보다 거기까지 가는 버스 노선을 먼저 생각할 필요가 없다면 어떨까. 남편을 설득할 필요 없이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가볼 수 있다면 어떨까. 우리 둘의 취향을 적당히 충족시키는 곳 대신 나의 취향을 더 뾰족하게 만들어 주는 곳에 마음대로 가고 싶어졌다.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좋을 일이 되리라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내가 운전만 한다면 가능한 일이었다.












이전 04화 자존심을 건 30살의 운전면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