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우모씨 운전면허 합격 수기
서른 살이 되어서야 운전면허를 따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이 와르르 운전면허학원으로 향하던 때를 놓치고 나니 좋은 때를 잡기가 어려웠다. 가끔은 친구 따라 강남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친구 따라 오디션 보러 갔다가 가수가 된 보아를 볼 때, 그리고 나를 보며 생각한다. 운전면허학원 강사들이 예언한 대로 대학생 때는 돈이 없고, 직장인이 되니 시간이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여러 번의 인턴 생활을 거쳐 정규직으로 처음 일한 회사에서 3년을 일하고 나서야 나는 첫 휴식을 얻을 수 있었다. 그게 서른 살이었다.
푹 쉬어도 모자랄 그때. 나는 오랜만에 남자 친구가 생겼다. 다행히 이 글을 읽고 있을 지금의 남편이다.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는 첫 만남에 자동차를 타고 오겠다고 했다. 나의 20대 인생에 차가 있는 남자 친구는 없었다. 약속한 장소 앞으로 부드럽게 굴러 들어오는 하얀색 승용차의 조수석에 탔다. 그때를 시작으로 난 조수석에 앉아서 노래도 부르고 커피도 마시고 여행도 다니며 새로운 재미를 누렸다. 내 인생의 제2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자동차가 이렇게 좋은 거였구나.
운전면허를 따야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든 시절이었다.
퇴직금에서 일부를 인출해서 운전면허학원으로 향했다. 60만 원. 내 돈 주고 운전면허를 따려니 억울했다. 서른 살에 운전면허학원 봉고차에 실려 온 것도 부끄러운데, 피땀 눈물을 흘려 번 돈을 써야 한다는 사실도 슬펐다. 근데 시험에 떨어질 때마가 수강료와 응시료가 추가된다고 한다. 무조건 한 번에 합격하겠다고 다짐했다. 내 돈 주고 수능을 봐야 했다면 고3 시절에 더 열심히 공부했을지도 모르겠다.
먼저 필기시험. 사람들은 최소한의 상식과 도덕성만 있으면 통과하는 게 필기시험이라고 했지만 내가 세상을 이렇게 모르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도로 위의 법규가 생소했다. 필기 수업 선생님은 잡담을 하며 강의시간을 보냈지만 그건 조수석에 오래 앉아본 사람들이나 웃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도로교통법에 완전 문외한이었던 나는 갑자기 모범생이 되어 몰래 문제집을 열심히 들여다봤다. 아무도 안 본다는 필기시험 개념집도 다 읽었다. 열심히 공부했다는 사실은 철저히 비밀로 한채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이제 기능 시험이다. 내가 태어나서 운전대를 처음 잡은 곳은 기능 시험 장이었다. 핸들을 꺾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액셀을 밟는다는 게 (물론 최고 속도 20km/h 이긴 했지만) 이런 거구나. 서울에 상경한 시골쥐가 된 것처럼 감탄을 금치 못하며 자동차 기능을 하나둘씩 익혔다. 기능 시험도 핸들 조작만 제대로 하면 문제없다고 누가 그랬던가. 나는 주차를 하려면 어디에서 핸들을 몇 바퀴 돌려야 하는지, 백미러가 어깨에 닿았을 때 돌려야 한다는 것까지 달달 외웠다. 자동차의 원리를 이해하는 건 합격만이 목표였던 나에게 사치였다. 주차는 도저히 방향 감각이 안 잡혀서 결국 주차의 달인 모바일 게임을 달고 살았다. 아무도 모르는 고뇌에 찬 수험 기간을 거쳐 기능 시험도 겨우 통과했다.
이제 하이라이트 도로 주행이다. 하필이면 시험장이 큰 트럭이 많은 역전이라 걱정이 많았다. 두 코스를 익히고, 시험 당일에 뽑기를 한 코스를 시험 보게 되는 시스템이었다. 그거 아시나요. 유튜브에 <운전면허학원 이름 + 도로 주행>이라고 치면 시험 보는 코스들을 어떻게 운전하는지 영상이 싹 다 나옵니다요. 그걸 밤새 틀어놓고 외웠다. 자동차로 주행 연습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 눈을 감고 도로를 그리며 트레이닝한 결과. 합격.
서른 살이 뭐길래. 운전면허학원 봉고차에 타는 내가 부끄러웠다. 서른 살 먹도록 일만 해서 번 내 돈은 아까웠다. 가끔은 부끄러움과 돈이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한다. 한 번에 합격한 운전면허의 영광은 조수석에 태워준 구 남친 현 남편에게 돌린다. 슬프지만 이렇게 운전면허를 따고도 나는 도로로 나가지 못했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다. 그래도 아무튼 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