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가 될 용기가 필요해
운전을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마음을 먹기까지 5년이 걸렸다. 운전면허를 따고도 운전대를 잡지 않았던 시간 동안 변명과 두려움만 늘어갔다. 운전하다가 사고가 나서 갑자기 큰돈을 쓰게 되면 어쩌지? 나도 도로 위로 나가면 김여사라고 손가락질받는 거 아닐까? 어두운 밤길을 달리다가 갑자기 고라니가 도로로 뛰어나와서 내가 치면 어떡하지? 정말 걱정을 사서 한다는 말이 딱 맞았다.
5년 간 차곡차곡 적립해 두었던 막연한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운전을 시작하면 이 황무지 같은 신도시에서의 삶이 한결 편리해질 것이라는 것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데도 쉽게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 운전 연습을 하겠다고 주차장으로 가다가도 오늘은 기분이 안 좋아서 사고가 날 것 같다며, 지금 신고 나온 운동화는 아무래도 운전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둥 각종 핑계를 대며 조수석으로 향했다.
초보가 되기 싫었다. 초보라는 말에는 ‘실수’가 짝꿍처럼 붙어 다닌다. 미숙하니 실수할 수밖에 없었다. 실수를 하면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게 되고 나는 이해를 구하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내 마음속에서는 내가 실수를 해서 사과를 해도 사람들은 쉽게 이해해 줄 것 같지 않았다. 속으로는 나를 비난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마음에 여유 없는 나부터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것 같다. 내 생각을 기준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법이다.
그렇게 운전 연습을 미루고 미루던 어느 날. 영어 스터디 모임에서 만난 한 오빠가 결혼 소식을 전해왔다. 그 스터디 모임은 나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대학 시절 내내 동아리 활동이라고는 모르던 일명 '아싸'였던 내가 대학 졸업 후 들어간 스터디 모임에서 동아리 활동 부럽지 않은 재밌는 생활을 즐겼기 때문이다. 열심히 공부를 하다가도 좋은 계절엔 MT도 갔다. 여름엔 강가에 갔고 겨울엔 다 함께 스키장을 갔다.
강원도 출신의 오빠는 스키를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나를 강하게 가르쳤다. 단 하루 만에 혼자 스키를 탈 수 있게 한 스키 스승이었다. 여유와 낭만, 사랑이 넘치는 스키장에서 콧물과 침을 흘리며 스키를 배우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면 아마도 그건 나다. 빠르게 움직이는 게 무섭고 다리가 후들린다는 나의 하소연도 듣지 않던 오빠는 내가 눈밭에 넘어져도 눈 깜빡 않고 다시 일어나게 했다. 겨우 초보자 코스를 내려가고 나면 쉴 틈 없이 바로 리프트를 타고 다시 올라가고 연습하고. 그렇게 하드 트레이닝받기를 3시간. 오빠의 가르침이 무서웠던 건지, 실력이 수직 상승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초보자 코스 정도는 혼자 다니는 수준으로 나는 급성장했다. 이후로 어디 가서 스키 탈 줄 안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무서워도 부딪치고 눈물이 날 것 같아도 가끔은 흘리면서 시도해 보는 것. 가르치는 사람의 호통이 무서워도 눈물 닦고 다시 배우는 것. 그래야만 지금의 나를 극복하고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경험이 생각났다. 콧물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침이 흐르는지도 모르고, 변명할 틈도 없이 슬로프에 나서던 그때가 있었기에 겨울이면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운전도 비슷하겠지. 눈물 콧물 나는 초보의 시절을 지나고 나면 나는 운전을 즐기는 사람이 되겠지. 누구에게나 초보 시절은 있었고, 우리는 그 시간을 잘 보내서 지금 능숙하게 하는 일이 이렇게 만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누구나 초보 시절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