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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나 Oct 09. 2022

하다보면 언젠가는 되더라고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6시간 돌다가

운전 연수의 세계에서 유명한 법칙이 하나 있다. '남편에게 운전을 배우지 말 것.' 나 역시 남편에게 운전을 배우려다가 운전연습 딱 하루 만에 포기했으니 이 법칙 앞에 무릎을 꿇은 셈이다. 아무래도 운전을 가르치는 남편의 마음 속에서는 두 가지 마음이 싸우는 것 같다. 아내를 향한 사랑과 그에 버금가는 자동차를 향한 사랑. 이 둘이 만나 충돌하면 결국 운전 실력이 서툰 아내에게 짜증을 낸다.


그래서 장롱면허 탈출을 결심하고 운전 연수를 알아봤다. 운전 연수를 차일피일 이룬 이유 중에 하나는 낯선 사람, 특히 잘 모르는 남성과 무려 10시간이나 좁은 차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었다. 운전면허학원을 다닐 때 30분 남짓 연습장을 돌며 강사들과 있는 것도 영 불편한 나였다. 그런데 2시간씩이나 붙어 있어야 한다니 내향적인 나에게는 끔찍한 일이었다. 그러다 우리 지역에 소문난 여자 선생님이 있다는 정보를 맘카페에서 발견했다. 유레카다. 맘카페에서 선생님에 대한 각종 칭찬과 간증이 쏟아지는 여자 강사라면 안심하고 나의 10시간을 맡길 수 있겠다 싶었다.


맘카페의 위력은 대단했다. 11월, 선생님께 처음 연락 했을 때는 3월이 되어야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마음에 불이 붙은 지금 당장 수업을 듣고 싶었던 나는 3개월을 기다리라는 말에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어찌나 냄비 같은 마음을 가졌는지, 성질은 급하고 의욕만 앞서서 지금 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싶었다. 연말이라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다가 연초 결심효과에 힙입어 1월에 다시 연락을 했다. 선생님은 이번엔 5월이 되어야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진작에 줄을 섰어야 했구나. 


겨울에 첫 통화를 한 선생님과 따뜻한 봄이 되어서야 우리집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커다란 SUV의 핸들을 한 손으로 잡고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가슴 앞에서 두 손을 모았다. "그래, 나도 운전 연수 받으면 저렇게 되는거야. 내 운전 실력을 걱정하던 남편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겠어." 하고 희망찬 미래를 마음 속에 그렸다. 나는 운전 기능 시험도 한 번에 통과했고 주행 시험도 거의 만점에 가까웠으니, 운전 연수 선생님에게 스킬만 좀 배우고 나면 금방 도로를 누빌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만한 생각이었다. 운전 연수 10시간 중 6시간 동안 나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주행의 기본인인 좌회전의 감각을 익히는 데만 2시간을 썼다. 그리고 나머지 2시간은 우회전 감각을 익혔다. 그래도 나는 핸들을 제대로 감고 풀지도 못했다. 지하 주차장 바닥에 구멍이 나지는 않을까 걱정될만큼 같은 길을 돌고 또 돌았다. 선생님의 입에서는 감정을 일체 싣지 않은 동일한 톤의 '다시', '다시' 라는 말만 반복됐다. 그녀가 인기 강사인 이유는 남다른 운전 스킬을 가지고 있어서도, 뛰어난 강의력을 가지고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녀는 될 때까지 화내지 않고 참고 또 참아주었다. 단언컨대 나는 운전 연수비를 내고 그녀의 인내심을 산 것이 확실했다.


자존심이 상했다. 운전은 도로에서 해야하거늘, 지하주차장만 돌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남편이 오늘 뭘 배웠느냐고 물어보면 3주 째 지하주차장에 있었다고 말해야 하는게 싫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급하게 핸들을 꺾고, 잘 안되면 표정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승용차 내부는 이런 감정이 전해질만큼 충분히 좁은 곳이었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알아채고 한 마디 건넨다.


하다보면 언젠가는 되더라고요.

3주 내내 지하 주차장에 있던 나를 나도 믿지 못했지만 선생님은 알고 계셨나보다. 그냥 이렇게 다시, 또 다시 하다보면 언젠가는 익히게 된다는 것을. 이렇게 같은 길을 돌고 또 돌다보면 언젠가는 갑자기 제대로 돌게 되니,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다시, 다시만 외치며 그저 연습하게 했던거였다. 돌아보면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는 늘 그랬다.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도 넘어져도 계속 바퀴를 돌리려고 하다보면 언젠가는 페달을 아무렇지도 밟고 있었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를 볼때면 그 누구도 걱정하지 않는다. 저러다가 걷게 되니까.


직장 생활에도 익숙해지고, 일상에서 뭔가를 모르겠다고 느껴지지 않는 30대 중반. 처음 배우는 마음을 다시 깨닫는다. 처음이라 겪는 어색함, 모를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한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더 해보는 것을 모두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운전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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