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나 Oct 10. 2022

서두르면 나만 손해

그럴거면 어제 나오지

운전 연수 4주차가 되어서야 지하 주차장을 벗어났다. 총 10시간, 2시간 씩 5주 동안 배우기로 했으니 이제 남은 수업은 딱 두 번이다. 6시간의 하드 트레이닝을 거쳐서야 좌회전, 우회전을 겨우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앞으로 도로 위에서는 어떻게 살아 남아야 하나 걱정이 앞선다. 남은 두 번의 수업 시간 동안 길 위에서 알아야 할 운전 스킬을 선생님께 다 배워가기로 다짐했다.


길 위로 나서기 전 선생님은 운전 연수용으로 쓰고 있던 남편의 차 뒤에 굵은 글씨로 '주행 연습'이라고 적힌 종이를 코팅해다가 갈색 테이프로 붙여주었다. 저도 제가 무서워요, 양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운보초, 왼쪽이 엑셀입니까? 등 운전이 미숙함을 뒷차에 알리는 안내판 문구가 많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것은 정직하고 비장하게 적힌 문구라고 했다. 디자인도 필요없고 멀리 있는 차도 보이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그래, 목숨이 달린 문제인데 웃길 틈이 있나.


운전을 시작하면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어디일지 생각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마트 쪽으로 가보기로 한다. 최고 속도 60km/h로 주행을 시작한다. 무리하지 않고 내 속도로 가자고 마음 속으로 되뇌이며 천천히 달리며 안정을 찾는 듯 했다. 그러다 큰 도로로 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뒤에서 가깝게 달라 붙어대는 차들, 2차선에서 달리는 내가 답답한지 1차선으로 빠졌다가 갑자기 내 앞으로 다시 추월하는 차들을 보면 마음이 급해진다. 빵이라도 한번 먹고나면 (=클락션을 누가 울리기라도 하면) 도로 위의 대역 죄인이 된 것만 같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너무 느려서 그런가보다 하고 자기 검열을 하며 80km/h, 100km/h.. 조금씩 올리기 시작한다. 


서두르는 사람만 손해 보는 곳이 도로에요


빨라진 속도에 겁이 난 나를 보며 늘 차분하던 선생님이 다그친다. 선생님은 더 빠르게 달리라는 말 대신 내가 감당 할 수 정도의 속도로만 가면 된다고 했다. 주행 연습 스티커도 크게 붙여놨는데 왜그리 눈치를 보냐고 한다. 빠르게 달리다가 갑자기 겁이 나서 속도를 줄이는 것이 더 큰 문제라며, 뒷차가 예측할 수 있게 사인만 제대로 주고 일정한 속도로 가는 편이 차라리 낫다고 한다. 괜히 서두르는 사람이 손해 보는 곳이 바로 도로 위라며, 차라리 느리게 가면서 욕 먹는 편을 택하라고 한다.


운전을 시작하고 교통사고 블랙박스를 보여주는 한문철TV를 눈여겨 보고 있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으로 사고가 나는 경우도 많지만, 대다수는 무리해서 서둘러 가려는 차들이 제 속도를 못 이기는 경우다. 아무리 빨리 가고 싶어도 우리에겐 지켜야 할 속도가 있고, 모두를 위해 맞춰야 하는 신호가 있는데 말이다. 무엇보다 각자의 운전 실력에 맞는 속도라는게 있다. 서둘러서 좋은 순간이 있었나? 곰곰히 생각하다가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말이 생각난다. 빠르게 움직이고 싶으면 진작에 일찍 나왔어야 하는거였다.


나를 급하게 추월해서 앞서 나가던 차 한대가 신호등에 걸려 내 앞에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선생님은 급하게 움직여서 저기 있을거면 뭣하러 그리 빨리갔냐며, 그럴거면 어제 나오지? 하고 추월 차량을 놀려댄다. 












이전 07화 하다보면 언젠가는 되더라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