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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나 Oct 23. 2022

포기만 하지 말고 꾸준히

직장인이 운전을 연습하는 방법

5주 간의 운전연수가 끝이 났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운전연수 선생님을 옆 자리에 태울 수 없다. 보조 브레이크를 밟아주는 사람도 없고, 도로 위에서 패닉이 된 나의 정신을 잡아 줄 사람도 없다. 날개 치는 연습을 시키기 위해 둥지 밖으로 억지로 나선 아기새처럼 나는 이제 혼자 도로 위로 나서야 한다. 선생님은 마지막 수업이 끝나자 스타벅스 기프티콘과 자동차 뒤에 붙이는 초보운전 스티커를 선물로 주셨다. 메신저로 전해 주신 커피 쿠폰에는 ‘이번 주말엔 운전해서 스타벅스 드라이브 스루에 꼭 다녀오세요’라는 과제가 적혀있었다.


하지만 나는 평일엔 광역버스만 3시간을 타고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이다. 운전대를 잡을 일도, 잡을 시간도, 잡을 힘도 없다. 평일 내내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주말엔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운전 연습을 위해 주말에 드라이빙 스케줄을 하나씩 만들었다. 5주 동안 익힌 운전의 감을 잊지 않기 위해 갈 곳이 없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운전대를 잡으라는 선생님의 마지막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운전을 배우면 하고 싶었던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이뤄보기로 한다.


운전을 하면 해보고 싶었던 일


1. 춘천에 닭갈비 먹으러 가기 : 집 앞에도 춘천 닭갈비 음식점이 있지만, 라멘 먹으러 일본에 잠시 다녀오는 듯한 허세로 진짜 춘천에 닭갈비를 먹으러 가고 싶다. 고속도로는 아직 무서우니까 우선 남편이 운전을 하다가 차가 없는 강원도 쪽에서 내가 운전을 해야겠다.


2. 코스트코, 이마트 가기 : 나는 마트를 사랑한다. 마트에 들어갔을 때 느껴지는 창고 냄새, 두둑한 내 주머니, 시원한 공기가 너무 좋다. 마트가 클수록 나의 행복감도 커진다. 그동안은 마트에 가고 싶을 때마다 사야 하는 품목 리스트를 만들고 남편을 설득해야 했지만 이제 분위기를 느끼러 그냥 가봐야겠다.


3. 괜히 옆 옆 동네에 있는 카페 가보기 : 나는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를 좋아한다. 그동안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에 갔지만 이제 옆 옆 동네에 새로 생긴 신상 카페에도 가봐야겠다. 한참을 걷느라 땀에 젖은 채가 아닌 방금 차에서 내려서 뽀송한 상태로 말이다.


4. 살 것도 없지만 아웃렛 가기 : 아웃렛은 주차장이 넓다. 주차 실력을 뽐내러 가고 싶다.


5. 친구 만나러 가기 : 인근 지역에 사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가야겠다. 교통이  좋아서 대중교통으로 가면 1시간 30분이 걸리는데 차로 가면 35분밖에  걸린다.


가보고 싶은 곳을 적어보면서 오랜만에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이 이렇게 많았구나? 무슨 버스를 타야 할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이 이렇게 많았구나 하고 나의 취향이 선명해졌다. 운전대 하나 잡았을 뿐인데, 가는 길이 조금 쉬워졌을 뿐인데.


이제 운전대를 잡기 시작했다. 아직 도로 위가 무섭지만 가고 싶은 곳과 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 용기를 내야 한다. 이제 목표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운전대에게 내가 잊히지 않을 만큼만, 욕심 내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 운전대를 잡기로 한다.


길 위의 초보자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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