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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나 Oct 29. 2022

시속 50km/h의 스포츠카

초보 운전자, 벤츠를 타다

친한 친구와 제주도를 가게 됐다. 친구 한 녀석이 제주도에서 결혼식을 하기 때문이었다. 진심으로 결혼을 축하해주러 가려고 3개월 전부터 미리 항공권을 끊었다. 같이 가기로 한 친구와 함께 묵을 감성 넘치는 민박집도 잡았다. 숙소를 잡았으니 인근 흑돼지집과 카페도 찾아놨다. 제주도에 놀러 가서 신나는 것 같아 보일 수 있는데 네 맞습니다.


함께 제주도 여행 아니 결혼식에 가기로 한 친구는 7개월 전에 쌍둥이를 낳은 엄마였다. 아이를 낳고 처음 떠나는 휴가 아닌 휴가였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는가. 친구의 남편은 첫 휴가를 축하하며 선물로 자동차를 렌트해줬다. 마침 회사 복지로 렌터카 할인 혜택이 있다고 했다. 


벤츠 까브리올레로 빌렸어
까불이라고? 
아니 벤츠 까브리올레. 스포츠카.
벤츠 까브리올레

친구는 남편 찬스로 제주도에서 뚜껑 열리는 스포츠카를 타보자고 했다. 뚜껑 열린 자동차엔 사람들 시선이 꽂히기 마련인데 내가 그 차에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 부끄러웠다. 하지만 육아 스트레스가 쌓인 친구가 행복할 수 있다면 기꺼이 곁에 있어주기로 했다. 대신 꼭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인적 드문 해안도로에서만 뚜껑을 열게 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그저 부끄럽다는 생각만 하고 있던 나와 달리 옆에 있던 남편은 나를 부러워했다. 운전 경력이 10년이 넘은 나도 아직 못 타봤는데.. 하면서 부러워했다. 벤츠니까 얼마나 빠르고 가볍게 잘 달리겠냐며 나보다 더 신난 모습이었다. 귀가 팔랑였다. 까불이가 그렇게 좋은 자동차였구나. 그럼 앞으로 여행까지 3개월 남았으니 조금 열심히 운전 연습을 해볼까 싶어졌다. 친구는 너도 운전자 등록을 해둘 테니 꼭 같이 운전해 보자고 했다.


겉으로는 티를 안 냈지만 그때부터 운전 연습에 속도가 붙었다. 목표가 확실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스포츠카 운전하기. 은근슬쩍 조수석으로 가던 평소와 달리 먼저 차키를 잡았다. 마트 가는 길에는 은근슬쩍 속도를 올려보기도 했다. 나한테 맞는 내비게이션을 찾아야 한다며 T맵, 네이버 지도 등등 이것저것 써보기도 했다. 실력을 올리는데 단기 목표를 여러 개 세우는 게 좋다더니 사실인 것 같았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드디어 제주도에 도착했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우리가 나이를 먹으니까 스포츠카도 타본다 얘 하면서 공항을 가득 채울 만큼 깔깔댔다. 렌터카 업체에 도착하고 우리에게 배정받은 회색 스포츠카를 조우했다. 3일 동안 빌린 차일뿐인데 어쩐지 나의 첫 차를 만난 것 마냥 설렜다. 


우선 제주도 시내에서는 운전이 능숙한 친구가 먼저 운전대를 잡기로 했다. 친구도 벤츠를 운전하는 건 처음이었다. 브레이크가 다르네, 조금만 밟아도 잘 나가네. 하면서 나름의 감상평이 이어졌다. 친구는 워낙 스피드를 즐기는 아이라 한적한 도로에서는 120km/h도 가볍게 밟았다. 수시로 밟는 것으로 보아 친구가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던 것 같았다. 차 한잔 하자며 들린 카페에서 주차하고 내리는 우리의 모습이 어쩐지 멋져 보였다. 사람들이 우리만 보는 것 같은데? 나 좀 성공한 사람 같은데? 하는 생각에 취했다. 아 이런 게 하차감인가 보다.


민박집 앞 스포츠카


저녁에 용기를 내서 나도 운전대를 잡아보기로 했다. 작은 민박집 앞에 어색하게 주차해 두었던 벤츠가 혹여나 긁힐까 천천히 몰고 나왔다. 인적이 드문 길에 들어서고 나서 슬쩍 액셀을 밟았다. 부와ㅏ아앙앙. 차가 가볍게 쭉 나갔다. 무엇보다 좋은 건 속도를 줄일 때 브레이크의 반응이 아주 빨랐다는 거였다. 아직 스피드는 무섭고 혹여나 사고낼까 조심스러운 나에게 이만큼 좋은 기능이 없었다. 뚜껑을 열고 제주도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이라니. 태어나서 내가 벤츠 스포츠카 운전대를 잡았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고, 이렇게 운전하고 있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았다. 운전 배우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입꼬리가 슬쩍 올라간다.


옆에 있던 친구는 자아도취한 나를 보더니 더 밟아보라고 했다. 사실 시속 50Km/h 였기 때문이다. 친구는 답답했겠지만 난 이 정도가 내 속도인 것 같았다. 딱 괜찮았다. 더 빨리 가다간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할 것 같아. 너랑 이야기하면서 이 정도로 달려도 너무 좋아. 하면서 순간을 즐겼다.


여행하고 얼마 후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제주도에서 속도위반 딱지가 날아왔다고 했다. 혹시 그거 나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돈을 같이 내는 거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친구는 그럴 일이 없다고 했다. 사실 그런 것 같다. 내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준 스피드광 친구에게, 벤츠를 사고 싶다는 욕망을 심어준 친구한테 다음에 맛있는 걸로 보답해야겠다.


한껏 당겨 앉은 의자.. 꽉 쥔 핸들... 그래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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