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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나 Oct 30. 2022

나를 찾을 용기에 바퀴를 달다

글쓰기 수업에 가다

결혼을 하고, 30 중반이 되고, 신도시로 이사  뒤로 내가 향하는 목적지는 대개 둘로 나뉘었다. 서울이거나  앞이거나.  앞에 가장 많이 오는 버스가 강남역으로 가기 때문이었다. 교통편이 아직 발달하지 않아서  지역으로 가는 시간이나 서울로 가는 시간이나 모두 비슷했다. 그만큼 가까운 지역으로 가는 길이 멀고 험했다.


어느 날 인스타그램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님이 글쓰기 수업을 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분이 쓴 글은 유쾌해서 좋아했다. 작가님과 내가 비슷한 부분이 매우 많아서 내 이야기를 하는 건가? 싶을 때도 많았다. 그분이 쓴 책은 두세 번 읽는 것은 기본이고 신간이 아닌 예전 작품까지 찾아봤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으니 그분을 동경하는 게 확실했다. 그런 작가님이 수업을 하신다니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매주 일요일 저녁에 두 시간씩 하는 3주 간의 짧은 과정에 무료라 부담도 없었다.


문제는 위치였다. 차로는 40분 거리지만 버스를 타면 2시간은 족히 가야 하는 곳이었다. 오가는 길에 지쳐서 작가님을 원망하지는 않을까 걱정될 지경이었다. 답은 하나였다. 운전해야지 뭐. 글쓰기 수업이 열리는 수원의 작은 서점까지 가는 길을 집중 훈련을 하기로 했다.


글쓰기 수업 시작 D-7

핸드폰 지도 앱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내비게이션이 실행된다. 경로 안내를 시작하고 어느 길로 가는지를 숙지한다. 차선을 어디서 바꿔야 하는지, 몇 번째 차선을 타야 하는지도 살펴본다. 여러 경로 중에서 가장 무리 없이 갈 수 있는 길을 하나 선택했다. 고속도로 진입을 안 하는 곳, 차선을 많이 바꾸지 않아도 되는 곳, 그리고 나에게 그나마 익숙한 길이어야 했다.


수업 일주일을 남기고 조수석에 남편을 태우고 선택한 경로를 따라 운전해봤. 주말 저녁이라 그런지 예상했던 것보다 길이 복잡하고 차가 았다. 게다가 차가 막히는  대신  막히는 길을 알려주겠다며 갑자기 경로를 바꾸는 내비의 오지랖에 예상치 못한 길로 들어서는 바람에 당황했


돌아오는 길에는 조수석에 앉아 같이 와준 남편에게 보답으로 치킨을 사줬다. 술을 좋아하지만 그동안 운전을 하느라 마음껏 치맥을 하지 못했던 남편이 맥주를 벌컥벌컥 마신다. 별게  뿌듯했다. 


내가 운전할게 많이 먹으렴


글쓰기 수업 시작 D-1

일주일 전에 연습을 했지만 아무래도 걱정이다. 내일 정말 혼자 갈 수 있을까. 벌써 겨드랑이에 땀이 나는 것만 같다. 남편과 한번 더 연습을 해볼까 싶었지만 기름값이 너무 올라 선뜻 가자는 말이 안 나왔다. 지도를 켜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글쓰기 수업 첫날

어제 지도 앱에서 눈을 못 뗀 나를 봤던 걸까. 남편이 오늘까지만 조수석에 앉아 같이 가겠다고 했다. 주말에 할 일이 많다고 했던 남편의 제안을 차마 거절을 못했다. 미안하기도 하고 눈치가 보이지만 딱 오늘까지만 배우고 다음부터는 혼자 다니겠다고 다짐한다. 다행히 이번에 선택한 경로는 혼자 다닐만했다. 내가 싫어하는 영동고속도로나 경부고속도로를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었다. 남편의 잔소리 아니 가르침을 외우다시피 하며 목적지에 도착했다. 운전해서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만으로 어찌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글쓰기 수업은 시작도 안 했는데 작가님 얼굴을 보기 전부터 이미 마음에는 뿌듯함이 차오른다. 더 이상의 행복은 없을 것 같았는데 작가님이 오시자 이번에는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연예인을 본 것보다 더 큰 사건이다. 작가님이 ‘미나님은 계속 눈이 웃고 계시네요’ 하며 한마디 건네신다. 작가님은 모르시겠죠. 제가 왜 이렇게 행복한지. 뿌듯함에 설렘까지 느낀 건 30대가 되고 처음인 것 같다. 운전을 하니 이렇게 좋다.


글쓰기 수업 둘째 날

오늘은 진짜 혼자서 운전하는 날이다. 그런데 하필 오늘 비 소식이 있다. 엄청난 폭우라고 한다. 운전을 하니까 쫄딱 젖을 일은 없겠다 싶어 다행이었지만 오고 가는 길이 걱정이다.


늦으면 마음이 급해져서 사고 칠까 봐 일찌감치 출발했다. 가는 길에는 비가 잠시 그쳤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몇 번을 되새겼다. 남편의 잔소리 아니 가르침을 기억하며,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귀를 기울이며 운전했다. 


동네 서점의 주차장은 협소했다. 게다가 자리까지 없어서 평행 주차를 해야 하는데 각이 잘 안 나왔다. 혼자 이리저리 차를 움직이는데 뒤에 따라 들어온 운전자 아저씨가 핸들을 어떻게 꺾어야 하는지 알려주셨다. 길에서 나에게 빵을 먹이던 (=클락션을 울리던) 운전자들을 볼 땐 무섭기만 했는데 이렇게 좋은 분들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글쓰기 수업을 들은 건 물론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의 수업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글을 쓰다 보면 허례허식 없는 진짜 나의 이야기를 쓰게 된다. 식상하지만 '나 다운 게 뭔가'를 가장 쉽고 빠르게 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글쓰기다. 나도 작가님처럼 나다운 글을 써보고 싶었다. 취업에 이직에 회사 성과에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잠시 잊고 있었다. 운전을 시작했기 때문에 나를 다시 찾아볼까 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글쓰기 수업 마지막 날

3회짜리 수업은 너무 짧았다. 함께 수업을 듣던 분들과 조금 친해졌다~ 싶을 즈음에 글쓰기 수업이 끝이 났다. 3회짜리 수업이지만 그 시간 동안 나는 혼자서 운전할 용기를 냈고,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글쓰기에 대한 꿈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고, 오가는 길에는 차선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러 가는 길에는 다 이겨낼 수 있었다. 


3회 차 수업이 끝나고 남편에게 말했다.

나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지금은 아니어도 언젠간.

다시 글을 써볼 용기가 생겼다. 항상 우물쭈물하던 나의 용기에 엑셀을 밟을 수 있었던 건 내가 운전을 하기 때문이었다.


수업 마지막 날 나눠먹은 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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