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엄마가 운전면허를 딴 사연
운전면허시험을 처음 안 건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는 홀로 나와 오빠를 키웠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 되고, 오빠가 고등학교에 입학한지 얼마되지 않아 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전부터 엄마는 식당에서 일을 하긴 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는 식당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일했다. 아침 8시 즈음부터 저녁 8시까지, 처음에는 설거지로 시작했다가 경력이 쌓이면서 반찬을 담당하는 찬모(주방에서는 제법 중요한 직책이라고 한다.)까지 커리어를 쭉쭉 쌓아올렸다. 중간에는 한 가게를 아예 혼자 관리하면서 반찬, 메인 요리까지 만들기도 했다. 조리원으로 능력을 인정 받은 셈이다.
엄마는 경상도 산골 마을 출신이다. 엄마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진짜 '산 속'에서 살다가 학교에 들어갈 무렵에 마을로 내려왔다고 했다. 선비였던 증조할아버지가 산에 사시는 것을 고집하셨다나. 아무튼 그래서인지 엄마는 섬세하기보다는 우직하고, 다정하기 보다는 거칠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남달리 컸다. 게다가 홀로 중,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이 둘을 키워야 하니.. 엄마의 삶은 도시에 살고 있어도 산골에서의 삶과 다를 바 없었을거다. 수풀을 헤쳐 산에서도 먹을 것을 찾아내던 산에서의 삶과 다를 바 없이 치열했을것이다. 그래도 엄마가 연약한 사람이 아니라 강인한 사람이라 다행인 시절이었다.
엄마 운전 면허 딸거야
오빠가 고3이 되어 수능 공부를 하던 어느 날, 엄마는 운전면허 필기시험 책자를 들고 퇴근했다. 운전면허를 따겠다고 했다. 엄마에게는 나름 계획이 있었는데, 1종 운전 면허를 따서 트럭으로 시장에서 장사를 해봐야겠다고 말했다. 그때 마침 이모와 이모부가 트럭을 몰고 5일장을 다니며 장사를 시작했는데 엄마도 그런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중학교 3학년에 엄마 속 사정도 모르던 나는 우리 집에 드디어 자동차가 생기는건가? 하는 생각에 마냥 신이났다.
그 해 우리집은 (엄마는 교회 집사였지만) 절간과 다름없었다. 오빠는 집에 돌아오면 예전처럼 과자를 한 봉지 뜯어 먹으며 나와 TV를 보거나 컴퓨터 게임도 하지 않았다. 스탠드 불이 켜진 방에 조용히 앉아있는 뒷모습을 방문 너머로 슬쩍 볼 수 있었다. 저녁 늦게 퇴근하는 엄마는 방에 있던 두 다리로 고정한 작은 쓰레기통을 책상 삼아 운전면허 필기 문제집을 펴놓고 공부를 했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내가 물어보는 수학 문제가 뭔지도 모르겠다며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라고 했었다. 엄마가 성경을 그렇게 열심히 읽는 것도 본 적이 없다. 엄마는 그만큼 공부나 독서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렇게 저녁이면 오빠는 수능을 공부했고, 엄마는 운전 면허 시험을 공부했다. 갑자기 우리 집에 수험생이 두명이나 생겼다. 오빠의 시험지 상황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엄마의 문제집에는 빨간 비가 자주 내렸다. 그리고 엄마의 눈꺼풀은 자주 감겼다. 문제를 풀던 엄마는 내가 다른 일을 하다가 돌아오면 금새 졸고 있었다. 하루 12시간을 꼬박 서서 일하고 와서 글자를 보는 일이 어디 쉬운가. 엄마는 그렇게 아주 조금씩 공부를 하다가 결국 침대에서 쓰러져 잠들곤 했다.
엄마는 슬프게도 1종 면허를 따지는 못했다. 필기는 60점을 아슬아슬하게 넘겨 합격했는데 기능시험에서 계속 탈락하다가 운전면허 강사와 큰 목소리로 몇번 싸우고는 결국 2종으로 바꿨다고 했다. 그렇게 트럭으로 자영업을 하겠다던 엄마의 꿈은 소리없이 사라졌다. 이후로 엄마가 학원을 몇번이나 재등록하고 나서야 엄마의 운전면허증을 내 두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원섭섭한 표정으로 1종이 아닌 2종 면허증을 자랑하는 엄마에게 트럭을 몰지 못하는데 괜찮은가 물었다.
오빠도 공부하고 하니까 겸사겸사 한거지 뭐
거칠고 투박한 산골 출신 엄마는 그렇다. 절대 자신의 입으로 사랑하는 아들의 수험 생활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시작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실 엄마가 오빠 때문에 운전 면허를 도전했다는 것도 내가 고3이 되어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오빠가 고3일때는 같이 공부했으면서 왜 지금은 안하냐고 투정을 부리며 슬쩍 물어봤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제 50살이 가까워져서 이제 다시는 그렇게 못하겠다고 고백했다. 수험생의 엄마는 처음인데다 든든하게 경제적 지원도 못해주는 엄마에게는 그 노력이 최선이었던거다. 엄마의 운전 면허 도전은 아들을 향한 사랑을 투박하게 전하는 경상도식 표현이었다.
공부도 길게 하지 않았고, 혼자 부양해야 할 아이는 둘에, 식당일만 해왔던 엄마가 도전할 수 있는 일이 세상에 얼마나 있었을까. 나이만 차면 운전은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도전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에게, 주변에 뿌듯함을 전할 수도 있다. 기계치에 자전거도 타지 못하는, 40대 중반의 우리 엄마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