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징하다. 징하다는 표현 말고 다른 말이 없을까 고민하게 될 정도다. 징하다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초대 노조위원장이 사무실 수뇌부를 상대로 차별 시정을 요구하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게 언제인데... 수뇌부는 아직도 인권위에 진술서를 내지 않았다. 인권위에서 공문 온 게 작년 12월 중순이니 한 달도 넘게 지난 거다. 참고로 진술서는 공문 받은 날로부터 14일 이내 제출해야 한다. 또 정신이 없었으려나... 만약 직원들이 정신이 없었다거나 너무 바빴다고 변명한다면 씨알도 안 먹힐 거다. 정신이 없었고 너무 바빴다는 변명은 오로지 수뇌부 한정으로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무실 국룰(?)이다.
인권위 진정이 기사를 통해 처음 알려졌을 때, 수뇌부는 곧바로 딱 잘라 말했다.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노조위원장이라는 이유로 한 업무차별은 없었다고 말이다. 아, 사실관계가 좀 잘못돼 정정하고 가야겠다. ‘곧바로’ 딱 잘라 말했다는 거 말이다. 곧바로 말하진 않았다. 기사가 나오고 4일이나 지나서 딱 잘라 말했다. 그때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정신이 없고 너무 바빴던 건지 아니면 중차대한 문제라 너무 신중했던 건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런데 저렇게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길지도 않은 입장을 내는 데 왜 4일이나 걸린 건지 지금도 의문이다.
아무개 이사는 누구일까
의문은 또 있다.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 중 한 명이 수뇌부한테 ‘사무처가 뭐하러 한 층 전체를 이렇게 넓게 쓰냐’고 불만을 제기했다는 것. 불만을 제기한 이사는 누구일까. 이사들이 사무처 근무환경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아서 그런 불만을 제기한 걸까. 이사들이 사무실을 제대로 둘러본 건 코로나 때문에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적게 열린 분기별 이사회 정도였을 텐데 말이다. 그조차도 사무공간이 있는 층이 아니라 다른 층에서 진행됐다. 물론 이사회가 열리지 않아도 사무처 근무환경을 잘 파악할 수 있는 이사가 있긴 하다. 수뇌부는 사무실 수뇌부이기도 하지만 이사회를 구성하는 이사이기도 하다.
수뇌부가 예전 사무실을 떠날 때 굳이 현 사무실로 오기로 한 이유는 하나다. 사무공간과 행사공간이 있어야 하니 최소 2개 층이 필요하다는 것. 임대료 내던 신세에서 졸지에 건물주로 탈바꿈했으니 걱정하는 시선도 많았다. 재정은 괜찮겠냐. 그때마나 수뇌부는 임대료 내던 과거보다 건물주인 지금, 예산이 훨씬 절감되고 있다 말하며 그런 시선들을 잠재웠다.
그런데 입장이 확 달라졌다. 정확히 어느 때라고 콕 짚을 순 없지만, 작년 하반기쯤이었던 것 같다. 임금협약 체결은커녕 단체협약 체결도 요원해 보이던 때. 공교롭게도 2개 층 세입자들 계약 만료가 가까워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사무처가 뭐하러 한 층 전체를 다 쓰느냐는 아무개 이사의 불만도 이때쯤 우리에게 전달됐다. 아무개 이사가 불만을 제기하는 바람에 졸지에 사무공간은 절반으로(사실은 그보다 좀 더 작게) 줄어버렸다.
우리도 에어팟을 끼고 일해야 능률이 오른다
쿠팡플레이<SNL 코리아 시즌3>에서 ‘MZ오피스’가 인기다. 배우 김아영이 신입사원으로 분해 던지는 대사(“저는 에어팟을 끼고 일해야 능률이 올라가는 편입니다”)는 재미와 동시에 논란도 낳았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난 그 코너를 별 생각 없이 무척 재미있게 봤고, 배우 김아영이 땡그란(!) 눈으로 연기하는 ‘맑은 눈의 광인’ 신입사원 캐릭터가 너무나 흥미로웠다.
사무공간 줄어든 얘기를 하다가 왜 뜬금없이 MZ오피스를 시작으로 에어팟을 끼고 일해야 능률이 오르는 신입사원 얘기를 하느냐. 우리 사무실에도 이어폰을 끼고 일해야 능률이 오르는 직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수뇌부에게는 업무와 응대 목적으로 이뤄지는 전화통화가 일상이다(솔직히 모든 전화가 업무 목적과 응대 목적인지는 모르겠다.). 직원 대다수에게 선명하게 들리는, 그래서 혼잣말인지 모르겠지만 내용상 혼잣말이 분명해 보이는 수많은 말들도 일상이다. 한숨은 덤이다. 수뇌부의 통화 소리와 혼잣말 때문에 많은 직원들에게 이어폰은 필수가 됐다. 좁아진 사무공간 때문에 이어폰 볼륨은 더욱 높아졌다. 우리 사무실에서 ‘이어폰을 끼고 일해야 능률이 오른다’는 말은 맑은 눈의 광인이어야만 던질 수 있는 핑계가 아니라 참으로 진실이다.
얼마 전 상반기 워크숍이 있었고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수뇌부가 날마다 부르짖는 ‘재정적자’를 해소하는 데 워크숍이 과연 도움이 될까 싶었다. 워크숍 기간 중 장소 대여과 식사, 숙박까지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근무를 위해 워크숍이 특효약이 맞으면 또 모르겠지만, 애초에 수뇌부가 아니라 수뇌부의 수뇌부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지시한 워크숍이었다. 그래서 지난 워크숍에서도 주옥같은 발언이 많이 나왔지만 수뇌부가 수용하거나 개선의 의지를 보이지 않아 그저 ‘워크숍’으로만 남았다. 이번에도 의미 있는 시간이긴 했지만 그저 ‘워크숍’으로만 남을 것 같다. 애석하게도.
글이 너무 길어졌고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직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로 급하게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이어폰을 끼고 일해야 그나마 능률이 오르고, 워크숍은 워크숍으로만 남는 현실이지만, 나는 우리 직원들과 오래오래 함께 일하고 싶다. 2023년이 된 지도 한 달이 다 지났는데 수뇌부의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핑계로 2월이 돼서야 싹을 틔우려 하는 임금협상도 잘 되길 바란다. 부디.